대학가의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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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의 헌책방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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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11)

며칠 전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의 동쪽편인 산동성 일대였다. 산동성은 중국의 여러 지역 가운데 한반도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 동쪽 해안가에서는 한반도 서해안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지척(咫尺)에 있다. 해상왕 장보고 유적지 관련 답사였다. 3년째 가는데 부분적으로 코스가 약간씩 변한다.

이번 일정을 보면 유공도, 태산, 곡부, 제나라박물관, 고차박물관, 적산법화원, 장보고기념관 등 다양한 체험의 현장이 망라되었다. 빡빡한 일정 탓에 힘들어하지만,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공자와 연관이 있는 태산과 곡부, 그리고 장보고 관련 유적지 등이 포함되어 있어 모두들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갑자기 중국 답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들 일정을 말하려는 뜻이 아니다. 첫날 코스에 들어 있는 유공도(劉公島)라 하는 곳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에 관광지로 개발해서 선보이고 있는 유공도를 다녀왔거나, 또는 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자세히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작년에 처음 가봤던 곳으로 그 여운은 짙게 남는다. 그것은 동아시아 삼국의 정치 · 경제 · 사회 · 외교 · 전쟁 등이 하나로 결집하여 나타난 장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은 청일전쟁 중 일본 연합함대와 청나라의 북양함대가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결국 청이 패배하여 시모노세키조약의 치욕을 당한 그 원인 제공지이다.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가 갑오년임을 강조하여, 중국에 가기 전부터 120년 전인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등의 특집 기사를 유공도와 시모노세키를 중심으로 언론사에서 앞 다투어 싣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띈 것은 답사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유공도 소개 기사였다. 그런데 각 신문에 소개한 “물망국상(勿忘國殤) 해양강국(海洋强國)”이라는 광고판에 대한 해석이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신문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를 잊지 말고, 해양강국을 건설하자’라고 한 반면, 다른 한 신문은 ‘나라 잃은 치욕을 잊지 말고 해양강국을 이루자’라고 하여,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뉘앙스는 알 것 같았지만,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달리 찾을 수 없어서 답사 내내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찾아가는 헌책방이 있다. 대학가의 헌책방이다. 이곳에 가면 최신 대학생들의 책 선호도도 알 수 있으며, 그들이 내다판 책들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게 된다. 날씨가 무더운 날이었다. 이열치열하면서 혹시나 하고 찾아갔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방학이라 그런지 별로 눈을 자극하는 책이 없었다. 주섬주섬 담아온 책은 『간제백석화(看齊白石畵)』, 『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 『작가와 신화』, 『한국외교사』 Ⅰ,Ⅱ,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등이었다.

그런데 얇은 책 가운데 『초사굴원부주(楚辭屈原賦註)』가 눈에 띄었다. 예전 『시경』을 언급하면서 북방의 노래가 『시경』이라면, 남방의 노래가 바로 『초사』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대학가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看齊白石畵』, 『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 『작가와 신화』, 『한국외교사』 Ⅰ,Ⅱ,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중국문학에서 『시경』과 더불어 양대 기둥의 하나로 취급하는 『초사』가 비교적 주석과 인용에서 소외되고 있단다. 그것은 『시경』이 유가(儒家)의 경전이었고 공자의 시교(詩敎)의 모본이었던데 반해, 『초사』는 지역적으로 초나라에 국한되고 또한 작가로도 굴원(屈原)을 비롯해 송옥 · 경차 · 엄기 등 한정된 인적 구성 때문이기도 하단다.

또한 이 책이 도선(道仙)적인 신화와 전통고사, 그리고 비현실적인 환상과 초탈적인 은둔의식이 주된 내용이며, 더욱이 문학성은 있을지라도 통치수단으로서의 활용성이 미약하여, 오히려 민심을 이산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이러한 요인들이 『초사』의 중요성을 배제시키고, 나아가 존재가치조차 망각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내용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사실 굴원과 『초사』에 대해서는 아주 관심이 없지 않았다. 특히, 굴원은 26세에 당시 회왕의 신임을 얻어 헌령(憲令)이라는 벼슬을 하였으나, 주변의 시기와 비방으로 1차 귀양을 가게 되고, 32세에 다시 등용되었으나 진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는데 극구 반대하다가 2차 귀양을 가게 되고, 다시 왕의 아들인 자란이 굴원을 참소하여 3차 귀양을 강남으로 가게 된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았던 굴원은 음력 5월 5일에 멱라수에 몸을 던져서 자결을 하게 된다. 이 애달픈 운명의 당사자가 바로 굴원이며, 그의 목소리가 『초사』에 담겨져 있으니, 어찌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단 말인가?

대학가의 헌책방에서 사온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초사』에 달려 있는 목차와 주석을 곰곰이 살펴보게 되었다. 낯선 단어들 투성인지라 더욱 촉각을 세워서 주목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낯설지 않은 단어는 굴원의 대표적 서사시인 ‘이소(離騷)’와 고악곡명(古樂曲名)인 구가(九歌) 정도였으며, 나머지 내용, 즉 천문(天問), 구장(九章), 원유(遠遊), 복거(卜居), 어부(漁父), 초혼(招魂), 대초(大超) 등은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우 낯설었다.

그런데 앞부분에 위치한 구가의 목차를 보다보니, 국상(國殤)이라는 단어가 큰 글씨로 보였다. 어허! 이 단어는 중국의  바로 그 유공도에서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채지 못한 채 돌아와서 잊힌 그 단어가 아닌가. 구입한 책에 보이는 간단한 설명을 들어본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국상 : 나라를 위해 전사한 영혼이다. 상(殤)은 외지에서 싸우다가 죽은 귀신, 임자 없는 귀신이다. 전쟁터의 참상과 군인의 용감성을 묘사하였다. 전편이 전선의 참상과 용사의 장렬하고 비장한 희생을 그려놓았다. 글자마다 칼 같고 어구마다 창 같다.

이 해설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모모 신문의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를 잊지 말고’라는 기사와 ‘나라 잃은 치욕을 잊지 말고’라는 기사에서 어느 것이 보다 적확한 표현인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결론은 대동소이할 수는 있겠지만, 보다 개념에 맞는 표현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혼’, 곧 임자 없는 귀신을 잊지 말자는 표어였던 것이다.

중국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이 비록 15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적은 책이지만, 그동안 이 글귀에 고민했을 많은 구독자와 나를 비롯한 여러 답사객에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었으며, 이것이 바로 책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대학가 주변의 책방이 서서히 종적을 감추고 있다. 물론 대학가뿐 아니라 여기저기 보이던 서점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이는 예전보다 각 대학의 장서가 많이 확보되어서 학생들이 서점을 굳이 찾을 필요성이 없어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새 책을 사고 그것의 유효 기간이 끝날 즈음 헌책방에 그 책이 찾아와 노크를 한다.

주인장은 책의 수요에 따라서 값을 책정하고, 서가에 꽂아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유통구조가 원활하면 헌책방도 활기를 띠게 될 텐데 여의치 않은 것 같다. 대학가의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대학생의 몫일까,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 독자의 탓일까? 나는 오늘도 헌책방을 배회한다. 오묘한 진리가 어디에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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