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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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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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8)

헌책방에 가면 다소 안타까울 때가 있다. 으레 헌책방이니까 예전에 나온 필요한 책을 찾는다든가 또는 싼 값으로 최근에 간행된 읽고 싶은 책을 만난다든가 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개 그러한 연유로 가끔 들르는 고객이 많을 줄 안다. 나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그런데 서가에 꽂힌 책 가운데 남달리 시선을 사로잡는 색다른 멋쟁이들이 전시되어 있으면, 이런 친구들과 오래 만나고 싶어서 타인과의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그냥 하세월하는 게 다반사니까 말이다.

진정 안타까운 건 좋은 친구를 만나서라기보다는 모두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 때문이다. 헌책방은 보물창고이면서 만물박사를 자처하는 곳이다. 나이어린 아이들은 각기 수준에 맞는 만화나 동화책부터 부모의 동의를 얻어 소유권을 지니게 된다. 그 시간부터 신나는 삶의 연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어른들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가끔 짝이 맞지 않는 책이 있으면 그걸 찾기 위해서 여럿이 동원되기도 한다. 세트가 있으면 금상첨화인 곳이다. 상대적으로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것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인지 몰라도, 우연히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권이(卷二)라고 기재되어 있어서, 이는 분명 한 질(秩)을 이루는 책임을 알아서 주변의 서가를 두리번거리면서 찾기 시작하였다. 주인장에게도 다른 책의 소재를 확인하였으나, 못 봤다는 얘기만 들려줄 뿐이었다. 과연 몇 권짜리 책인지도 궁금하고, 다른 책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가는 헌책방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 책은 참 아담하게 장정이 되어 있어서 손에 쥐기도 좋았다. 그래서 더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아직도 다른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찾습니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권이며, 1966년에 서울대학교에서 고전총서로 간행이 되었다고 한다.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서유구(徐有榘)이며, 『임원경제지』의 다른 이름임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장서인이 하나가 크게 찍혀 있다. ‘보성전문학교 장서인’이라고 선명하게 보인다. 어찌된 연유인가 살펴보기 위해서 한참 다른 항목을 찾아보니, 거기에는 ‘서울대학교 도서’라고 날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좀 궁금했다. 연유를 찾아야겠다.

『임원경제지』 또는 『임원십육지』는 현재 서울대 도서관에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고, 광복 이전에 전사(轉寫)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사본이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소장한 이 한 권의 책에 찍혀 있는 도장이 다른 것은, 이 책을 만들면서 고려대 소장의 전사본과 서울대 소장의 유일본을 저본으로 하여 고전총서로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때 발간한 이 책의 친구들은 그런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것임에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당시 괘지(罫紙)에 쓴 저자의 가장원본(家藏原本)이 일본의 오사카 부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를 하게 된다. 환수운동을 하면 될까?

이를 위해서라도 이 책에 대한 개관은 필요할 듯싶다. 이 책의 저자 서유구는 달성 서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그 또한 큰 업적을 남겼다. 할아버지 서명응은 대제학을 지냈으며, 아버지 서호수는 이조판서를 지냈다. 풍석 서유구(1764∼1845)는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다산과 풍석은 과거 합격도 1년 선후로 이어지며,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자산 또한 그 카테고리만 다를 뿐, 방대한 저서는 셀 수 없을 지경이다. 특히 『임원경제지』를 번역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내세운 표어가 실행되었으면 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 공감하고 싶다.

『임원경제지』가 담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 컨텐츠가 모두 16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하여 16지(志)이다. 예전에 소개한 빙허각이씨의 『규합총서』를 기억하시나요. 서유구의 형수라고 했는데, 이들 집안에서 만들어낸 조선시대 백과사전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그 목차를 대충이라도 설명해서 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만, 먼 후손으로서 그 값에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요한 부분은 각자 찾아가서 만나보자.

『임원경제지』에서 서유구는 「본리지」라 하여 봄에 밭 가는 것을 본(本)으로, 가을에 수확하는 것을 리(利)라 하여 농업 일반을 다루었으며, 「관휴지」에서 채소, 「예원지」에서 꽃을 다루고, 「만학지」에서 열매를 주로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전공지」에서 의생활에 필요한 농잠, 직조, 염색에 대해 알아보고, 「위선지」에서 농사에 가장 중요한 날씨와 절후를 다루고 있다. 「전어지」에서는 축산과 수렵, 어업에 대해 알아보고, 「정조지」에서는 요리법과 조미료, 술 담그는 법을 살피고 있다. 「섬용지」에서 집짓기, 집짓는 재료와 공구, 세간 살이, 조명기구, 출입에 필요한 말, 가마, 배 등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몸을 보신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보양법」에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살피고, 「인제지」에서 의약의 처방과 치료에 관해 조목조목 논하고 있다. 향촌에서의 삶은 여러 예법을 필요로 하므로, 「향례지」에서 관혼상제, 향음주례, 향사례, 향약을 다루었으며, 개인의 정신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에 주목하여 「유예지」에서는 취미 활동을 다루고, 「이운지」에서는 문방사우와 창작활동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상택지」에서는 살 곳을 고르는 방법, 살 터전을 마련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예규지」에서는 경제활동과 상업의 사항을 다루고 있다.

고전총서 이후에 다른 영인본이 이미 간행되었다. 보기 좋게 큰 책으로 만들었다. 필요해서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해서 활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작은 책이면서 짝이 맞지 않는 그 책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이것은 단순히 한 질의 책을 소장하고픈 욕심보다는 작은 책, 작은 글씨지만 손 가까이 두면서 필요할 때 그저 무의식적으로 만져보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망이지 싶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가진 한 책의 나머지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같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 요원하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난 오늘도 헌책방을 찾아서 나다니고 싶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책을 찾습니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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