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가번’ 시의원 후보의 오만함과 유권자 기만하는 ‘선거용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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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가번’ 시의원 후보의 오만함과 유권자 기만하는 ‘선거용 전화’
  • 이민우 기자
  • 승인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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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가’, ‘나’, ‘다’로 이어지는 순번은 후보의 능력이나 자질이 뛰어나다는 ‘성적표’가 결코 아니다
▲ 기호 ‘가번’ 시의원 후보 오만함과 유권자 기만하는 ‘선거용 전화’ 기자수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통해 만든 이미지.
▲ [기호 ‘가번’ 시의원 후보의 오만함과 유권자 기만하는 ‘선거용 전화’] 기자수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통해 만든 이미지.

[뉴스피크] 선거철만 다가오면 지역에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3인 이상 선거구에서 각 정당의 기호 ‘가번’ 공천을 받은 일부 기초의원(시의원, 군의원) 후보들은 마치 당선증을 미리 손에 쥔 듯한 태도다. 득표 능력과 개인적 자질에 대한 검증보다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공천이라는 ‘무적의 면허’를 앞세워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에서 지방자치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정당 공천제는 정당 정치를 통해 책임 있는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대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공천’은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충성심을 증명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꽃길’일 뿐이다. 특히 3인 이상 선거구에서 ‘가’번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당선을 보장받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유권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기호 ‘가’, ‘나’, ‘다’로 이어지는 순번은 후보의 능력이나 자질이 뛰어나다는 ‘성적표’가 결코 아니다. 이는 정치 신인이나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가산점 제도라는 배려의 산물일 뿐이다. 이 순번이 마치 우열을 가리는 척도인 양 포장돼 유권자의 눈을 가리는 현실은,  지방선거에서 표심을 왜곡하 고질적인 병폐다.

이른바 ‘공천 순번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일부 후보들은 유권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기보다, 자신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데 더 골몰한다. 그들에게 주권자인 시민은 ‘주인’이 아니라, 공천 순번을 통해 확보된 ‘표밭’으로 여겨진다.

더욱 가관인 것은 유권자와의 소통마저 ‘전시 행정’으로 치부하는 행태다. 일부 후보들은 선거 기간에만 반짝 사용하는 ‘선거용 임시 휴대전화’를 개통해 선거 명함에 올린다. 선거가 끝나면 바로 해지될 이 번호는, 당선 이후의 소통 의지는커녕 선거 기간 동안 쏟아질 유권자의 민원과 질문을 적당히 회피하겠다는 계산된 기만이다. 주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명함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선거라는 공간에서 형식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유권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일부 몰지각한 ‘가번’ 후보들의 자만심과 기만은 압도적인 표를 얻어 의회에 입성한 뒤 그 부작용이 더욱 증폭되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겸손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소속 정당의 깃발만 흔들면 된다는 식의 오만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유리한 순번을 공천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얻은 ‘시의원 뱃지’이기에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정당의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중앙 정치의 파벌 싸움을 지역 의회로 고스란히 끌어들이는 행태에 보이기도 했다.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조례 발의나 정책 개발보다는 자신에 대한 ‘의전’ 문제 등 사소한 일을 빌미로 공무원들에게 갑질을 일삼거나 지역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이런 얼치기 시의원들의 주된 업무는 다음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의원에게 얼마나 충실히 ‘줄을 섰는지’를 증명하는 데 집중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방의회가 거대 정당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가’번의 안락함에 취해, 그리고 임시 번호 뒤에 숨어 주민을 섬기는 법을 잊은 의원들이 있는 곳에 진정한 지방자치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는 유권자가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정당의 이름이나 공천 순번이라는 껍데기, 선거용으로 급조된 가짜 소통 창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후보가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가 보여준 태도가 과연 시민의 대리인으로서 합당한지를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기호 ‘가’번 공천을 받았다는 데서 오는 오만함과 임시 번호 뒤에 숨은 기만적 행태가 더 이상 지방의회를 잠식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후보들도 진정한 지방자치는 거대 정당의 공천장이 아니라, 주권자 시민의 신뢰라는 겸허한 심판대 위에서만 꽃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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