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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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보다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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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7)

어느덧 한 해의 절반 무렵에 다가서고 있다. 새로운 계획과 실천이 반복되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항상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만들어간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인간이다. 인간사가 만들어 놓은 글의 향연을 만끽해보고 싶어서 한 권의 책을 빼서 다시 읽어 본다.

헌책방에 꽂혀 있는 많은 친구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 일단 한 번 이상 미팅 장소에 나갔다가 온 경험이 있다. 그만큼 인기가 있는 친구들이다. 어떤 책방에는 이러한 팔방미인들이 다수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상대방의 애프터 신청이 쇄도한 결과인 것이다. 그 가운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나 ‘다산문선’ 같은 친구들은 헌책방이나 새 책방 어디를 가도 아직까지 환영 받는 존재라고 하겠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하면 누구나 아는 인물이다. 특히, 조선후기를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재조명이 다산과 정조 임금을 우리에게 친근하게 하고 있다. 다산은 정조 임금의 승하와 함께 유배지로 떠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그와 관련된 편지글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이 시점에서 다산과 만나보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우선 다산이 맞이한 새해를 찾아가보자.

새해가 밝았구나. 사나이는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젊은 날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 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계획해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 하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왕왕 몇 개월 못가서 사고가 발생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옛 위인이 경험한 새해를 몰래 엿보니 그와 우리네 인생사가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계획을 세워놓고 이를 실천하지 못함이 어찌 소인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나 마음이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소양이 필요할 듯하다. 소양을 어떻게 길러야 할 것인가?

송나라 학자 육자정(陸子靜)이 말하기를, “우주(宇宙)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 안의 일이요,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 대장부라면 하루라도 이러한 생각이 없어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의 본분이란 역시 그냥 허둥지둥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사대부의 마음은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이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기는 것이다. 만일 포목 몇 자, 동전 몇 닢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도록 하라.

다음으로는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가 모두 완전하더라도 구멍 하나가 새면 이는 바로 깨진 옹기그릇일 뿐이요, 백 마디가 모두 신뢰할 만하더라도 한마디의 거짓이 있다면 이건 바로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말을 과장하여 떠벌리는 사람은 일반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법이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일수록 더욱 말을 참아야 한다.

인용문이 좀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를 부분이 찾아지지 않는다. 소양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양해를 바란다. 이를 정리해보면 첫째,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생긴다고 한다. 둘째, 말을 과장하여 떠벌리면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문장의 후렴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거나 아주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의 너희들이란 두 아들을 지칭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부끄럽고 시끄럽게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새겨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들리는 경고의 메시지다. 한 번 더 주의하고 조심하자.

한 구절을 더 만나보자.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날들에서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구절은 매일 들어도 좋은 명언이다. 같이 큰 소리로 읽어보자.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외운다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천하의 재화와 우환이나 천지를 흔들며 몸을 죽이고 가문을 뒤엎는 죄악은 모두 비밀리에 하는 일에서 빚어지는 것이니, 일을 할 때는 부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 두 구절은 말과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모두 비밀리에 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밝게 살려고 해야 한다. 우리 주변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또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자성(自省)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즈음 날씨가 봄이런가 했더니 벌써 여름을 달리고 있다. 기후 온난화 덕분(?)이라니, 춘하추동의 묘미가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이다. 봄과 가을이 우리와 만나기를 꺼려한다. 여름과 겨울이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계절의 순환이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고 한다. 옛날 다산이 스케치한 이 계절을 만나보러 가보자.

때는 바야흐로 봄과 여름이 교차되는 때였다. 초목의 어린잎이 막 돋아나서, 빛이 짙은 것은 초록색이고 옅은 것은 노란색이었다. 연못의 물빛도 혹은 짙은 흑색이거나 혹은 밝은 녹색이었다. 물가에는 대체로 흰 자갈과 깨끗한 모래가 있었다. 어떤 곳은 물살이 세고 어떤 곳은 연못이 되어 배가 빨리 달리기도 하고 혹은 천천히 떠가기도 하였다. 봉우리들이 가려서 안 보이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여, 그 경치가 가지가지로 기묘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시절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 때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묘사이기도 하거니와 삶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풍경이다. 약 200년 전의 모습을 실제 광경으로 보는 듯하다. 봄은 봄이고, 여름은 또 여름이다. 왜 우리의 봄은 여름과 뒤섞여 나타나는 것인가.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원인은 물론 인간이다.

다산이 우리에게 남긴 책이 참으로 많다. 대표적으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마괴회통』 등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구의 저작인지 쉬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훌륭한 서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쉽게 접하지는 못한다.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다산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 주변에 있는 책방에 가면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놓여 있을 것이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맛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울먹이게 하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이 결국 위대한 인물을 탄생시킨 비결이다. 우리의 인생도 한 번 정리해보자. 책과 함께 말이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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