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체험의 자유와 조건
상태바
창의적 체험의 자유와 조건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의성과 사교육의 줄타기 2

▲ 검은 도화지에 하얀 손도장을 찍어본다. 그 촉감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저 신기하다. ⓒ 뉴스피크

창의적인 체험은 어떻게 가능한가?

요즘은 내년 유치원 입학이 결정되는 시기이다. 제도도 새롭게 바뀌고, 보내려는 엄마들은 많아지고, 정보는 넘쳐나니 그 어느 때보다 어린아이를 둔 집이 분주한 때이기도 하다.

각자 다 다르겠지만, 두루뭉술하게 나눠보면 대략 엄마들은 세 가지 정도 선택의 기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많이 가르쳐주는 유치원을 선호하는 엄마들이고, 다른 하나는 잘 노는 유치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별 상관없이 가까우면 좋다는 엄마들이다. 마지막 부모 말고는 이리저리 따지고, 자기 아이와 맞는 곳을 찾아 추첨과 선착순의 분주한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일단 많이 가르쳐준다는 곳과 잘 놀 수 있는 유치원은 그 기준이 체험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또 창의성이라는 것의 종류도 무척 다채롭기에 잘 관찰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법이다. 그걸 위해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찰될 수 있도록 해야 정말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색을 섞어보니 다른 색이 만들어진다. 그 미묘한 색의 변화를 작은 손으로 느껴본다. ⓒ 뉴스피크

수업을 쫓아가보자.
09년 11월, 12월 생 아이들, 이제 4살이 갓 된 아이들의 물감 놀이이다.
다양한 색을 만져보고, 섞어보고, 다양한 촉감, 재질의 재료로 그걸 칠해보는 놀이다. 간단한 놀이이지만 물감을 범벅으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기에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신기하고도 재미난 놀이이자, 시각과 촉감으로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먼저 물감을 손에 칠해본다. 아이들은 다른 색으로 물든 손이 신기한 지 한참 자기 손을 쳐다보더니, 그 손을 벽에 붙여진 커다란 도화지에 문지르고 자기 손이 만든 무늬와 그림에 즐거워한다.

40분이면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은 아닌데, 그 짧지 않은 시간이 분주하게 지나간다. 쉴 새 없이 색과 도화지 그리고 칠하는 재료와 방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흰 도화지 다음에는 검은 색 도화지가 나오고, 거기에는 흰색 물감이 먼저 칠해진 후 파란색 등 검은 색에 어울릴만한 다른 색이 다시 더해지고, 기묘하지만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때쯤 아이들의 기질과 특성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벽의 도화지에 덤빌 듯 다가서서 칠하는 아이가 있고, 주저하며 쳐다보는 시간이 긴 아이도 있다. 또 어떤 아이는 칠하는 것보다 물감을 섞는 데 더욱 재미를 느끼기 것처럼 보이는 한다. 

▲ 하얀 도화지에 물감 묻은 공을 던져본다. 또다른 그림이 된다. 집이나 유치원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내는 자유로운 활동이고, 이는 아이의 정서를 안정되게 해줄 것이다. ⓒ 뉴스피크

이때쯤 선생님이 추임새를 넣어준다.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 아이 참 재미있다!”
선생님을 보는 아이도 있고, 자기 놀이에만 푹 빠진 아이도 있다. 선생님이 하는 행동을 비슷하게 따라 하기도 하고, 발을 쓰는 것처럼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이도 있다.

여기서 선생님의 역할은 도와주며 같이 놀며 북돋아 주는 사람이다. ‘예술’과 체험은 결국 스스로 행해야 즐거운 법, 전달자가 아닌 조언자로서의 선생의 역할과 위치는 참으로 중요하다. 아이들과의 적절한 거리, 그리고 관찰과 반응이 사소하지만 예민하게 이루어져야 아이의 성격과 특성이 제대로 나타나는 법이다.

어느새 색은 무척 다채로워져 있고, 그 무작위의 그림은 의외로 아름다워져 있었다.
잠깐 숨을 돌리며, 오순도순 모여 앉아 손을 같이 씻고 아주 조금 깨끗해진 손에 다시 접시와 공이 하나씩 들린다.

접시에 다시 각자 원하는 색의 물감이 듬뿍 뿌려지고, 아이들은 색으로 범벅한 공을 벽지에 쾅, 쾅 찍기 시작한다. 이때쯤 아이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발상은 어른이 보기에도 신선하고 놀라운 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점점이 찍는 것에만 시작했는데, 한 아이가 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아이로서는 아주 새로운 발견이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언뜻 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별 같기도 하다. 갑자기 아이들이 바빠진다. 후다닥 자기 접시로 달려가 다른 색을 찾거나 색을 더해 다시 범벅을 만들어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본다.

한 아이가 공을 던져본다. 그것도 하나의 표현방법이 되는 걸 깨닫는다. 그 아이는 잭슨 폴락을 모르지만, 결국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는 것은 어차피 같은 경로와 경험이라 해도 될 듯하다.

그 와중에 그리기 위한 도구가 부드러운 공에서 딱딱한 공으로, 다시 별 모양의 스펀지와 붓 등으로 바뀌고, 아이들은 그걸로 찍고, 그리고, 칠하고, 던진다.

자기만의 표현, 자기가 제일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아 꼼꼼하게 시도해본다. 아이들은 모두 장인과 같다고 했던가.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이해될 때까지 비슷한 동작을 계속 되풀이해보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시도와 발견을 보면서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다!’ 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자유롭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과 표현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은 그걸 표현할 때와 공간이 없을 뿐이다.
자신만의 흥미에 집착하고, 그 변화를 꼼꼼히  관찰하는 아이의 눈빛과 집중력이 놀랍고, 신기하고, 또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쥐어진 도구는 붓이었다. 어른들은 그림은 붓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붓 역시 그림, 놀이, 퍼포먼스의 한 도구일 뿐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붓을 활용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들이 아이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건 이렇게 써야 돼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단지 표현의 소재이자 놀이의 도구일 뿐이다.

▲ 공이 어느새 붓이 되었다. 무언가를 그리는데, 어느덧 산이 되고 풍경이 된다. 아이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는 그림이다. 무언가 주어졌을 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욕구와 자세만큼 이때 소중한 것은 없다. ⓒ 뉴스피크

자유로운 체험의 조건

수업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그건 자유로운 체험일 것이다.
만족할 때까지 마음껏 물감을 만지고, 온 손과 몸에 바르고, 뿌리고, 던진다. 그리고 공과 붓과 스펀지를 이용해 찍고 그리고 칠한다.

그저 그렇게 경험할 뿐이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육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담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구성 내용이 좋다고 해도 아동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재료와 수단 그리고 주제는 다양하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생활과 잘 닿아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고, 즐겁게 그 교육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마음껏 써본다. 마음껏 쓸 수 있는 재료, 만질 수 있는 도구는 그것만으로도 좋은 교육이 된다. ⓒ 뉴스피크

그렇게 참여하는 놀이와 체험이 왜 중요한가?
일단 미술에는 손동작이 많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표현력과 함께 자연스럽게 두뇌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이유이자 근거이다.

그리고 좋은 교육은 성장과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선생님과의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우고, 두 번째 단계는 경험과 체험을 위한 퍼포먼스가 중심이 되어 대근육을 발달시킨다. 그리고 조형 활동을 통해 손을 발달시키고, 시지각과 협력활동도 발달시킨다.

이런 일반적인 흐름에 더해 성장이 다른 아이들에 따라 수업은 약간씩 변화를 주어야 한다. 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은 그에 맞는 수업과 선생님의 관찰과 조언이 더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세심한 프로그램과 관찰 그리고 체험은 현재 공교육에서는 제공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제공해야 할 몫임에도 아직까지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는 게 ‘공公’과 ‘사私’라는 거대한 이분법이 생겨난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현재 아이들이 체험하는 ‘사교육’의 목표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원대하고, 절대적인 목표가 있는 교육과 체험이라면 아무래도 프로그램은 톱니바퀴처럼 짜여 있기 마련이고, 그건 우려하던 ‘사’교육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교육원의 원장이 ‘미술로 생각하기’를 통해 아이가 감각 또는 센스Sense가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사실 감각이라는 것은, 마치 언어와 같은 것이라 어렸을 때부터 계속 접하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로’와 같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감각을 발전시킴으로써 센스 있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가 자라나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떤 차이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 원장님의 생각이자 기대이며, 일반적인 부모의 소망이 아닐까 싶다.

하다못해 비서를 한다 하더라도 찻잔이나 잔 받침을 고를 때도 차이를 보일 것이고, 그건 어쩌면 커다란 차이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은 삶의 소양에 대한 문제이며, 부모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당연히 제공해줘야 하는 기회이자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다만, 우리는 그런 선물보다는 아이에게서 받아내는 100점짜리 시험지에 더욱 안달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어떤 배움의 과정이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정서적인 안정이라는 것이다.
아동학자들은 유아기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으면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한다.

딱히 학자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이런 애정에 대한 아이들의 촉수가 놀랍도록 예민하다는 것이다. 쌍둥이나 형제가 다 같은 자식이자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있는 법이고, 아이들은 그 차이의 정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이는 그 부모님뿐일 때가 많다.

아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느끼면 당연히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정서적으로 불안해 할 것이다. 

▲ 이제 붓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똑같은 도구일 뿐이다. 다만 그게 만들어낸 이미지와 모양만을 신기하듯 쳐다본다. 그 차이가 쌓여 아이의 감각이 되기를 바란다. ⓒ 뉴스피크

하남 미술로 교육원 원장님의 이야기이다.
“어떤 아이가 공개수업을 왔었어요. 수업을 다 받고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밤 9시쯤에 전화가 온 거에요. 꼭 미술로 생각하기를 해야겠다고요.

그 엄마 말이 그날이 아이가 지금까지 중 가장 말을 잘 듣는 날이어서 물어봤더니, 아이가 기분이 너무 좋다고 대답을 했다네요. 공개수업에서 아이의 마음과 기분을 많이 풀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고, 엄마가 그걸 안거죠.”

아이들은 관심에 민감하고,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른들은 자신의 스트레스와 부족한 사랑을 보상할 다른 무엇을 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그게 첫 번째는 부모이고, 다음으로 항상 접하게 되는 선생님이다. 작은 단위의 편하고, 몰입할 수 있는 수업은 선생님과 아이, 아이와 아이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 간의 밀접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건 그만큼 소외되지 않게 해주고, 또 손잡고 있게 하며 사랑받는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 이때 ‘미술’이라는 건 더없이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
그건 선생님에 대한 문제이다.
어디 선생님이 더 좋은가 라는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의 문제일수도 있겠다. 대구 만촌점이 130여 개나 되는 미술로 생각하기의 교육원 중에서 그 이름이 난 것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아동미술교육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 실현과 적용을 위해 노력했던 2명의 원장에게 기인한 바가 크다.

그들 원장이 아동미술교육에 관한 책이나 자료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나마 아동미술학원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 몇 가지 고민을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품위 있던 원장님이 부드럽게 물어보시더란다.

“난화기*가 뭔가요?”
선생님에게도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게다.

 

▲ 손을 물감으로 범벅을 하고서, 그 미끈한 질감을 느끼면서 아이는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바로 교육의 목표가 아닐까?  ⓒ 뉴스피크

만약 이런 배움의 기준이 충족된다면 부모들의 유랑이나 구분 짓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사람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겠지만, 지금 열거한 사항은 사각형의 콘크리트 도심에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물론 현재의 ‘사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의 아쉬움을 통해 성장했지만, 얼치기 대안교육이나 무늬만 예술교육이 적지 않은 게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
우리 부모님들은 사교육과 조기교육에 대한 환상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사교육이 많은 이유는 공교육의 한계도 있지만, 사교육과 조기교육에 대한 터무니없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내용이다. 

부모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대학원생에게 3년간 공부를 시켰을 때 누가 더 영어를 잘 할 것 같냐고? 그랬더니 유치원생이 더 잘할 것 같다는 답이 더 높게 나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환상이자, 자신감이라 할 만하다.

당연히 더 어릴 때 더 많은 공부, 교육에 집착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창의적인 교육과 체험을 이야기 하고, 공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이의 즐거움을 위한 우리의 환경을 탓하고자 함이지, 결코 아이들에게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런 기대가 교육 안에 들어왔을 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교육이 되는 것이 아닐까?

▲ 손과 팔 그리고 발과 얼굴이 물감으로 범벅이 되지만 아이는 자신의 접시를 물감으로 칠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 뉴스피크

 

<참고자료>  
초등미술교육의 사교육분석을 통한 공교육 발전방안 연구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박소라 석사학위논문 2010년

<취재협조>  
미술로 생각하기 하남교육원
미술로 생각하기 서초교육원
미술로 생각하기 신내교육원

사진 김영민, 권순섭, 이철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