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사교육의 줄타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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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사교육의 줄타기 1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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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나쁜 건가요?

▲ 아이들이 그린 아이들의 얼굴이 그곳에 있다. 경계가 없는 자유로운 체험의 결과이다. ⓒ 뉴스피크

사교육은 나쁜건가요?

토요일 오전이었다.
‘미술로 생각하기’ 교육원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 주중에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던 엄마와 아빠가 쉴새없이 문을 열고 있었고, 다른 때보다 기세등등하 아이들이 호기롭게 선생님과 친구 이름을 외치면서 그 사이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소란과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가면 이제 부모들은 더없이 한가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두런두런 편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이 뭐를 하나 잠깐씩 들여다보던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을 사진에 담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며 농담을 던진다.

“어머, 사교육도 취재하네요!”
가벼운 마음, 즐거운 기분으로 부담없이 오지만, 사교육이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편한 말은 아니다. ‘사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가 가지는 공포심이 너무도 크고, 또 그게 가지는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그렇지만 성장이라는 게 곧 교육과 같듯이 사교육, 공교육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하거나 거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의, 식, 주를 찾듯이 일상에서 필요한 배움들이 바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고, 그중 없으면 안된다고 사회에서 생각하는 게 공교육이라는 것으로 모이는 것이리라. 그리니 공교육이 담는 것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고, 또 교육이라는 이름에 맞게 사회와 문화에 맞게 성장을 해야 정상인게다. 

사회에 필요한 절실함의 정도에서 교육에 대한 잣대를 들이대야지 처음부터 ‘공’과 ‘사’라는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면 교육의 의미는 협소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엄마와 아이가 왜 이곳을 오는가 하는 것이다.  

▲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아이들이 편하게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유로운 소통과 체험은 아이들의 성장에서 꼭 필요한 공적 영역이 아닐까? ⓒ 뉴스피크

지금 8살인 준형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4세 때 1년 정도 ‘미술로 생각하기’를 다니다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그만두었다. 어릴 때의 체험 놀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보기에 아이가 또래보다 책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표현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어렸을 때 각기 다른 성장이야 그리 큰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미술로 생각하기’를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그림 실력이 좋아지고 보는 사람이 ‘우와~!’하는 결과물이 나오면서 준형이도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 준형이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이제 준형이는 미술이 즐겁다. ⓒ 뉴스피크

목적이 분명한 상태에서 ‘미술로’를 찾은 것이지만, 엄마나 준형이가 당장 효과가 보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마지막 과정인‘프레바’단계를 거치면서 준형이의 집중력과 표현력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무’를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도 달라지고, 또 그걸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친구와 같이 표현도 해보고, 대비도 해보면서 더욱 좋아지는 것 같고, 그래서 상호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는 게 엄마가 생각한 나름의 이유이다.

아무래도 생각과 표현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어떤 변화를 보이기에는 아이들은 어리고, 감각이라는 것은 너무 모호하며, 세상은 복잡하다. 그리고 가끔씩 나타나는 아이들의 변화는 너무 섬세하고, 순간적이며, 또 담담하기만 하다. 그러니 아이의 표현과 생각을 관찰하고, 조율하고, 그에 호응을 해줄 때만이 그런 변화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고, 그건 작은 단위의 수업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준형이의 재능이 그런 상호관계와 발전시켜 나갈 시간과 가능성을 갖지 못한 것이다. 

▲ 준형이가 그려준 선생님의 초상화. 미술수업은 선생님에게는 즐거움을, 준형이에게는 다양한 소통의 수단을 주었다. ⓒ 뉴스피크

준형이와 같이 수업을 하는 종선이는 네 살 때부터 미술로를 했다. 남자아이인데도 꼼꼼하고, 무언가를 모아놓는 습관이 있었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쩌면 ‘미술로 생각하기’가 아이의 적성에 딱 맞았을 수도 있겠다. 아빠의 말로는 아이는 번잡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많은데, 이곳의 다채로운 활동이 그것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아빠는 다른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가 즐거워하고, 목요일을 기다리기에 그걸로 만족을 한다. 사실 기대를 하려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미술로 때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아이가 즐거우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아빠다운 생각이거나, 굉장히 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현명함과 뚝심은 다른 사람들처럼 몇 개월 해보다 전문미술학원으로 옮기는 가벼움을 보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여기 미술로라는 곳은 단지 미술만 가리키는 곳이 아니라 요리, 조각 등 다채로운 교육이나 체험이 진행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충족감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게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래서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아빠가 필요하다 하는가 보다. 무딘 듯하면서 나름의 날카로움과 뚝심이 있기에. 

▲ 종선이는 항상 아빠랑 함께 온다. 그 모습이 다른 부모에게 참 좋아 보인다고 한다. ⓒ 뉴스피크

이제 다섯 살인 유주는 표현이나 다른 무엇을 위한 것보다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 환경을 찾아온 경우이다. 이런저런 센터를 다니고 있는데, 대부분 앉아서 하는 것들이라 엄마로서는 활달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 다양한 체험을 해보는 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집에서 밀가루와 쌀 같은 것으로 놀아보게끔 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묻히면 안돼, 이래선 안돼 하다보니 노는 게 노는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더란다. 그래서 신나게 한번 놀아보라는 생각에 ‘미술로 생각하기’를 오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도 무척 좋아한다.
“행복해요!” 라고 말한다니 기대처럼 마음껏 놀기는 하는 듯하다. 

▲ 유주는 집중력이 참 좋은 아이이다. 조금 어른스럽기도 하지만, 미술로에서는 아이의 발랄함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 뉴스피크

‘미술로 생각하기’신내교육원의 원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의 교실은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망가뜨려도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학원을 옵니다. 또 ‘미술로’는 정답이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사고를 보장하고, 용기를 줍니다.

정답을 몰라도 손을 들 수 있는 용기를. 창의력이란 나중에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게 공교육에서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교실이 담당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기 전까지는요.”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미술로’를 찾는 이유는 어찌보면 비숫하기만 하다. 어떤 커다란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라 아이의 만족을 위해, 그렇지만 그를 위한 마땅한 환경과 수업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선행학습을 위해 미술로 생각하기를 찾는 부모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유롭게 놀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 그를 통한 아이들의 즐거움과 안정을 위한 것이다.

그게 또 엄마의 안정이기도 하다. 이런 안정과 자유로움은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엄마 또는 아빠는 그런 작지만 꼭 필요한 것을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계

우리는 가끔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가령 아주 복지혜택이 좋은 공기업이 있다고 하자. 다른 사기업에서 그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그 좋은 기업의 혜택이 일반의 기준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면 왜 일반기업에서 그정도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느냐고 기업가의 정신과 사회구조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 공기업의 복지혜택을 일반기업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켜 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열정’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려도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인색한 이유이기도 하다.

▲ 수업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체험이지만, 그걸 개발하고 적응하는 선생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물감으로 하는 새로운 수업이 신기하다. ⓒ 뉴스피크

우리에게 ‘공’이나 ‘사’는 어쩌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보다 적절한 기준과 필요에 따라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를 묻는 게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게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미래이며, 국가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교육이 담고 있는 지향이 우리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꼭 필요한 것이면, 그 사교육을 담아내지 못하는 공교육과 사회복지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개정된 7차 교육과정에서 중시하는 것은 ‘개성’과 ‘창의성’이며, 그것의 실현을 위해 교사의 개방적인 자세와 융통성 있는 지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각반의 담임교사가 모든 교과를 담당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 1명의 정교사가 10명 내외의 학생을, 초등학교의 경우 20명에서 30명 내외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학교에 따라서 음악, 미술, 체육과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일부 교과에 한해 전공출신의 계약직 교사를 채용하거나 담임을 맞지 않은 교사 혹은 학부에서 심화전공으로 음악, 미술, 체육 등을 이수한 교사가 전담이 되어 수업을 맡기도 하지만 학생 수에서는 거의 변함이 없다. 게다가 기자재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미술실과 같은 공간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학교도 많은 게 현실이다.

10명에서 20명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체험학습이 가능할까? 그리고 교사는 개방적이고, 유통성 있게 그들 각각에게 적절한 지도가 가능할까? 더군다나 자기 전공도 아닌 ‘예술’을 그들에게 가르치면서.

어떤 조사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미술 또는 예술수업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의 예술적인 능력의 정도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체험이며 감성이다.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각 개인이 느끼는 과정이 단어 외우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않다. 점점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가 커지는 게 느껴진다. 사회는 요구하는데,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니, 그 해결은 개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사교육이 형성된다.

그럼 미술과 예술 그리고 퍼포먼스 사교육의 특징 또는 장점은 무엇일까? 이는 공교육에서 느끼는 아쉬움에 그대로 대응한다.

거기서는 일대일, 또는 2명에서 4명 이내의 적은 숫자의 학생과 전문적인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이며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공교육이 해줄 수 없는 부분을 충분히 보완해 줄 수 있다.

또 학교나 유치원에서 짧은 수업, 체험 시간으로 인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질적으로 풍부한 미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전문성을 지닌 교사는 교사의 능력에 따라 경험적이고 창의적인 미술교육을 학생의 능력에 제공해주기도 한다. 더불어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다른 아이와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정서와 오감을 두뇌와 함께 차근차근 발전시킬 기회를 가질 수 있기도 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는 게 우리 환경의 변화이다. 이 커다란 변화를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망각하고 만다.

미술로 생각하기 신내교육원

지금 부모세대와 이전세대는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과 접촉할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대문만 나서면 다양한 놀이를 통해 이런저런 걸 알려주던 형과 친구가 있었고, 돌봐주거나 보여줄 게 많은 동네 아저씨들도 적지 않았으며, 만지고 더럽힐 흙과 물 그리고 곤충이 지천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핵가족화가 되었고, 아이들이 놀 곳은 협소한 놀이터에 불과하고, 만지고 체험할 것은 스마트 폰이나 게임기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체험의 기획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이는 창의성의 문제 뿐만 아니라 건강과 정신적인 성장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다.

그렇게 모든 게 아쉬울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집과 유치원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정기적인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걸 만약 몇몇 재능 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회의 제공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의 불평등이자 ‘특권’이 될 것이고,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건‘교육현실의 낙후’와 개선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전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창의적인 인재를 더이상 바라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천재나, 부유하기에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몇몇 소수만이 창의적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협조

미술로 생각하기 대구만촌교육원

미술로 생각하기 서초교육원

미술로 생각하기 신내교육원

 

참고자료 

초등미술교육의 사교육분석을 통한 공교육 발전방안 연구 

2010년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박소라 석사학위 논문 

 

사진 김영민, 권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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