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과 창의성 그리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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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과 창의성 그리고 미술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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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창의성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재미'

▲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참으로 진지하고, 순수하다. 아이들은 모두 장인이다. ⓒ 뉴스피크

미래의 기술, 창의성

서울에서 남태령고개를 넘어 과천을 넘어오면 높이 솟은 우주선이 보인다. 과천과학관이 거기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가끔 체험이 아쉽기도 하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는 지하철로 오갈 수 있는 곳에 그리 넓고도 다채로운 과학시설이 있다는 게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다. 
그 규모만큼 큰 과학관 로비 왼편으로 들어서면 발명 관과 로봇 관이 있다. 그곳에는 인사를 하는 로봇과 예약을 하고서야 볼 수 있는 로봇 공연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저 그런 춤을 추는 조립식 로봇의 공연은 그리 권할만하지는 않다. 그래도 조금 유치하기는 해도 몇 가지 발명에 대한 소소한 설명은 아이들에게는 몰라도 어른들에게는 솔깃한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초등학생이 발견했다는 예측 신호등은 놀랍기 그지없다. 항상 건널목에서 한 칸씩 줄어드는 표시에 쫓겨 오가며 감탄하곤 했었는데, 그 신기한 발명을 서대웅이라는 초등학생 어린이가 해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과천과학관에 전시된 서대웅 어린이의 예측신호등. ⓒ 뉴스피크

그 옆으로도 몇 가지 발명의 소품이 늘어서 있다. 귀가 시렸던 소년의 지혜에서 시작되었던 체스터 그린우드의 귀마개와 아들 장난감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롤러스케이트 등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발명이 아주 우연하고도, 사소한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됨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생각을 조그만 바꾸면 위대한 ‘발명가’나 ‘천재’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것만 같다. 그렇게 과학관에서 우리 부모들은 세상이 변했음을 느끼게 된다.

▲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만들어진 귀마개 발명품. ⓒ 뉴스피크

정보의 가치와 소통 방식이 변했음을 가까이에 있는 소품, 즉 애플 스마트 폰을 통해 느끼게 된다. ‘애플’은 자신들이 창조하기 보다 창조된 것을 모아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전혀 다른 가치를 생산해내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정보의 양보다 정보의 활용이 더욱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과학관은 그것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 아들의 바퀴 달린 장난감에서 힌트를 얻어 발명한 롤러 스케이트. ⓒ 뉴스피크

잡스가 해낸 일의 다른 모습을 우리 주변의 초등학생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로서는 마음이 급해지고, 아이를 붙잡은 손에 불쑥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쉼 없이 되뇌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아이는 특별할 수 있다.
그럼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아마 그건 뭔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창의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 끈으로 만든 도형은 이내 기차로 변해 즐거운 놀이가 된다. ⓒ 뉴스피크

아이들은 모두 창의적이다

오늘은 ‘미술로 생각하기’ 4세 반의 수업이 있다. 바닥에는 비닐이 깔렸고,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처음에는 어색한지 호들갑스러운 선생님의 질문에도 대답이 띄엄띄엄 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호기심이 쑥스러움을 이기고, 아이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재준이와 정민이 그리고 이제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먼저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기!” 하고 소리를 치자, 아이들의 눈이 정말 놀랍게 커진다.
그리고 선생님이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 줄게요.” 하면서 동그라미 모양을 꺼낸다.
“뭐가 생각나요?”
이제 아이들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시간이다. 어른들은 이런 시간이 어색하고, 어린이들도 점차 자유로운 생각이 딱딱해지지만 3, 4세의 아이들은 아직 자유분방하다.
“달걀이요!”, “사탕!”, “시계!”, “달이요!” 큰소리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리치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천진난만해지고 또 그만큼 화려하고 즐겁게 변한다.

▲ 각기 다른 도형은 일상에 만난 다양한 소품이나 발명품으로 변한다. 놀이는 점차 생활에 대한 이해가 된다. ⓒ 뉴스피크

점차 아이들은 그 공간과 이야기에 빠져든다. 아이들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어도, 그 세상, 그 상상에 자유롭게 빠져든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면 아이들의 집중력과 섬세한 감정에 놀랄 때가 잣다. 그 감성과 집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다. 마치 연극배우처럼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웃음과 함께 이야기에 참여하게 된다.
동그라미에 이어 다시 네모 모양이 나온다.
이번에는 의자, 버스, 우체통 등이 나오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직사각형!” 하고 소리친다. 선생님이 놀라면서 “어떻게 직사각형을 알았어요?” 하고 묻자, 자신만만하게 “유치원에서 배웠어요!” 하고 소리친다. 이제 그 아이는 직사각형은 안 잊어버릴 듯하다.
뒤이어 세모가 나왔다. 수박, 아이스크림 등 역시 관심 있는 것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자, 이제 선생님은 모양을 만들어볼 거다.” 하면서 선생님이 다시 긴 줄을 가지고 나온다.
아이들이 줄 안에 들어가더니 금세 큰 네모가 되고, 정사각형이 되었다가 다시 세모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그게 다시 기차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간단한 줄로 자신들이 만드는 모양과 대상, 그리고 세상과 놀이가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마치 연료처럼 선생님의 칭찬이 이어진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답도 좀 더 구체적이고 빨라진다. 아이들은 칭찬과 재미를 바탕으로 좀 더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점차 자신들이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간다.
이제 놀이는 벽으로 이어진다.
각가지 모양을 벽에 붙여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 단순한 모양으로 시작했고, 모양보다는 붙이는 데 더욱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정민이가 가만히 직사각형을 쳐다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모양을 모아 “물방울 같아요!” 하면서 모양을 만든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만드는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삼각형이 모여 원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이 모여 안경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은 자동차를 만들고, 재준은 여우를, 정민이는 머리띠를, 이제는 나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부족한 게 있으면, 다른 친구가 빌려줘 모양을 완성한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다른 친구가 만든 것을 보고, 아이들은 더욱 힘을 낸다. 
이제 무질서하던 벽은 새로운 세상이 되어간다. 그 세상이 정민이한테는 바닷속 같다고 한다. 
“뭐가 있어요?”
“상어요!” 
그 상상이 재미있어 보이는지, 재준까지 참여한다. 그새 정민이는 새로운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다.
색종이를 모아 눈으로 만들어 날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로 발전해간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의 반응과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빨라진다.

▲ 아이의 상상력은 가끔 놀라움이 되고, 더없는 즐거움이 된다. 이럴 때는 서로 하이파이브! ⓒ 뉴스피크

미술은 재미다  

다시 발명으로 돌아가 보자.
유명한 발명가가 있다. 그 사람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명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 물어보면 발명가에게도 그들만의 매커니즘이 있다고 한다.
“발명할 때 순서가 있어요. 관찰력, 두뇌 활동, 상상력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한다. 먼저 ‘왜’라는 의문을 갖고 원인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실력이 늘어나면서 점점 창의적 활동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재미’이다. 먼저 아이가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않으면 어떤 교육도 의미가 없어진다. 창의성에 앞서 ‘미술’을 만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부모들이 아이의 성장을 위해 미술학원 앞을 서성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놀이는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친구와의 관계, 놀이의 방법을 통해 다양한 생각의 방법을 배워가고, 그게 또다른 재미가 된다. ⓒ 뉴스피크

미술에는 만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의 표현과 놀이 중에 미술이 빠진 것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쩌면 아이들의 놀이와 생활뿐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표현과 생활의 도구를 보면 미술적인 수단을 쓰지 않은 게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이다.
사람들의 생각, 사고에는 개인적인 특징 또는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특징과 패턴을 아이는 놀이를 통해 가장 많이 배우고, 또 다채로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아동기의 놀이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실 창의성 교육과 가장 가까운 것이 미술, 예술교육임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한, 디자인은 현대의 생존기술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전성수 부천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20세기는 좌뇌의 시대였고, 가치를 강조했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감성과 직관의 시대라고 말한다.
감성과 직관의 시대는 ‘예술’의 시대를 도래케 한다. 그건 예술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표현이자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징에 대한 이해는 정보의 처리 능력, 또는 통합 능력을 높여준다. 결국, 예술은 현대의 생존능력이기도 한 창의성과 가장 근접한 분야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창의성을 위한 예술교육을 선호하면서도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빼놓는 경우가 많다. ‘미술’을 왜 하는가?

▲ 꼭 정해진 것은 없다.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는 것, 그게 바로 즐거움이자 교육이다. ⓒ 뉴스피크

손재주와 관찰력을 기르기 위해서인가? 사실 미술로 생각하기 학원에서 만난 많은 6, 7세 아이의 엄마는 선행학습을 위해 그곳을 찾는다고 했다. 막연한 창의성보다는 당장 수업 준비가 더욱 급한 게 우리의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미술로의 선생님은 그게 수업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미술 학원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미술 그리고 놀이와 퍼포먼스는 하나의 도구이다. 사물과 재료 그리고 체험을 통해 아이에게 느낌과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체험과 오감을 통해 두뇌가 자극되고, 두뇌의 기초회로가 발달하는데, 이게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참여해서, 몰입해서 자발적으로 하다 보니 재미를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면서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진행이 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다음 ‘미술로 생각하기’ 수업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단지 아이가 놀기만 하는 것일까? 그 작은 방에서 원 없이 놀면서 아이는 결국 생각의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자극의 과정에, 놀이의 과정에 표현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하게 되니 마지막으로 미술적인 표현을 형성하게 되고 결국 표현력과 그림 역시 달라지는 것이 미술을 통한 아이의 성장이고, 창의성의 성장이라는 목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단순해도 아이가 스스로 참여해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
만약 이 단순한 명제가 빠진다면 모든 교육은, 그것이 어떤 놀이교육이 되었든 그것은 선생님의 원맨쇼가 된다.

▲ 단순한 도형들이 모여 무언가가 되어간다. 아이들이 사뭇 진지해진다. ⓒ 뉴스피크

예전에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아이 엄마가 있었다. 그 집 아이가 4살 무렵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애 엄마가 한소리를 했다.
“얘, 좀 창의적으로 생각해!”
그러면서 이렇게 해보라고 놀이에 끼어들고, 저렇게 해보라고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하나의 재료로 다르게 놀기 시작했다면, 아이의 창의성이 길러진 것일까?
다중지능이론을 설파한 하워드 가드너가 말했듯, 창의성을 억압하는 것이 창의성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쉬운 법이다. 우리 부모들은 조급한 마음에 그것을 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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