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박물관 그리고 금융과 근대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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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박물관 그리고 금융과 근대의 도시
  • 윤민 기자
  • 승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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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만난 세계 01

[뉴스피크] 매년 10월, 전 세계의 출판인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든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영국 히드로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분주한 공항이고, 프랑크푸르트는 일 년 열두 달 전시회(메쎄, Messe)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빼곡한 전시회에서도 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의 자랑이다. 문자와 출판이 바로 인간을 대표하는 문화적 표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매년 규모가 축소되고, 위기라는 말이 들리는 와중에도 글과 종이로 만드는 문화의 세계에 빠져 사는 놀라운 열정의 사람들이 숙소 구하기도 힘든 이때의 프랑크푸르트를 찾는다. 다만, 금년은 코로나19로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도서전을 준비 중이라면서, 함께 힘내자는 메시지를 보내오던 사무국이 이제는 조용하기만 하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도 문을 열지 않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인간의 이성이 만든 문화의 힘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 이성의 인쇄물이 모인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희망과 기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도서전을 둘러싼 아고라 광장. 다양한 행사와 간편한 음식 그리고 맛있는 맥주가 항시 준비되어 있다. ⓒ 뉴스피크
도서전을 둘러싼 아고라 광장. 다양한 행사와 간편한 음식 그리고 맛있는 맥주가 항시 준비되어 있다. ⓒ 뉴스피크

 

국제도서전의 꾸준한 발걸음 

 

15세기 초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직후인 1564년부터 인쇄업자들과 작가들이 모여 ‘북메쎄’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개최됐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지금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 되었다. 매년 도서전은 새로운 주제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데, 재작년의 경우  도서전 70주년과 더불어 UN인권 선언 7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세상을 주는 아이디어’라는 주제로 열렸다. 

하나의 건물은 하나의 번호와 테마가 있고, 각 층은 별도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와 예술 도서가 중심인 3관의 외벽. 1층인 3-1관은 만화관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만화와 동화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 뉴스피크
하나의 건물은 하나의 번호와 테마가 있고, 각 층은 별도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와 예술 도서가 중심인 3관의 외벽. 1층인 3-1관은 만화관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만화와 동화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 뉴스피크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은 프랑크푸르트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걸어서 15~20분 정도의 거리에 있고, 독일 전철인 S반이나 U반은 타면 한두 정거장이면 도착한다. 도서전은 3일간은 출판인을 위한 전시와 상담을 진행하고, 2일은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인 전시로 진행된다. 

당일 아침 부지런을 떨며 서둘러 전시장 입구로 가보지만, 전철에서 내리는 순간 이미 사람의 물결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게 된다. 

전시장은 전철역과 지하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1층에 올라가면 쉼터와 카페가 있고, 위로 올라가면 매표소와 출입구가 있다. 사실 표를 당일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출입카드를 미리 발급받기 때문이다. (출입카드를 가지면 도서전 기간 동안 프랑크푸르트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입구를 통과하면 긴 통로가 있고, 천천히 움직이던 사람의 물결은 줄이 되어 있다. 간단하게 짐과 소지품을 검사하는 검색대가 있기 때문이다. 검색을 통과하면 이제 본격적인 전시장이지만, 전시장을 만나라면 한참을 더 걸어야만 한다. 거대한 6개관이 아고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곳이 바로 전시장인데, 이제 입구를 통과한 것이다. 건물의 각층은 대륙관, 테마관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중에 자기가 원하는 테마와 지역을 찾아서 움직여야 한다. 하나의 테마 전시장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보통 반나절에서 하루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 대부분 자기가 목적으로 하는 관을 사전에 조사한 후 그곳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하나의 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거대한 출판사의 다채로운 책들, 발로 뛴 저자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책들, 독특한 상상력과 예술로 만들어진 책까지. 책을 사랑하고, 문자를 숭배하는 이들의 땀과 아이디어가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사이로 다양한 색과 나이의 사람들이 구경하고, 상담하고, 토론하면서 그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각 층은 출판사의 부스로 빼곡하고, 그 사이의 통로는 전세계의 출판인과 작가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가득찬다. ⓒ 뉴스피크
각 층은 출판사의 부스로 빼곡하고, 그 사이의 통로는 전세계의 출판인과 작가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가득찬다. ⓒ 뉴스피크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만든 사상과 철학 그리고 그 언어를 사랑한다. 책은 그 집요하고도 탄탄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 사랑 안에는 희생하고, 절제하고, 존중하고, 위로하고, 찬탄하며 함께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역사와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매년 도서전에서 만난 출판인들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 인간은 탐구와 존중을 멈추지 않기에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그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위기이기는 하다. 출판산업 전체가 위기이고, 코로나19로 드러난 인간의 이성과 믿음이 위기이다. 그렇지만 위기에 대한 출판업계의 반응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책을 보고, 편집자와 작가와 함께 열띤 토론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곳은 조용한 열정이 가득하다. ⓒ 뉴스피크
사람들은 진지하게 책을 보고, 편집자와 작가와 함께 열띤 토론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곳은 조용한 열정이 가득하다. ⓒ 뉴스피크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도 과묵하면서도, 진지한 성찰을 멈추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문화기술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art+ 행사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오디오북 전시 등이다. 

매년 새로운 문화기술과 변화를 출판인의 시선에서 소개하는 art+와 같은 행사는 3일간에 걸친 오픈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다. 예술전시관 중간에 무대가 있고 그곳에서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내용보다도 그 진지한 탐구가 가슴에 다가왔고, 이런 진지한 탐구와 책의 결합이 미래에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가상현실과 게임 그리고 블록체인에 관한 세미나의 풍경. ⓒ 뉴스피크
가장 관심을 끌었던 가상현실과 게임 그리고 블록체인에 관한 세미나의 풍경. ⓒ 뉴스피크

결국 고민은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기술과 시대의 변화에도 꼭 필요한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확인해주는 현장이 오디오북 전시장이었다.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오디오북 전시장에서 아마존의 자회사인 오디블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독일에서의 오디오북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오디오북과 오디오극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으며, 그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독일에서 2018년 동안 오디오북과 오디오플레이를 즐긴 사람들의 숫자는 1천8백만 명에 달한다. 이는 2017년 대비 2백만, 2016년 대비 4백만 명 늘어난 숫자다. 해당 통계는 독일의 대표적 청취문화(listening culture) 설문조사 “Audible Hörkompass 2018”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여기서 독일 국민의 과반수(54%)는 SNS보다 오디오북이 더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활동이라고 응답했다. 

부스의 선반을 가득 채운 오디오북들. 첨단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 뉴스피크
부스의 선반을 가득 채운 오디오북들. 첨단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 뉴스피크

또한 44%의 독일 국민은 스마트 폰 및 태플릿 PC로 오디오북 및 오디오극을 청취한다고 밝혀는데, The Audible Hörkompass 2018 조사에 따르면 다른 일을 하며 동시에 콘텐츠를 듣는 소비 형태가 특히 많다고 한다. 53%는 대중교통 이용 중, 51%는 여가활동 중, 50%는 운전 중에 듣는다는 수치는 21세기 시민들의 일상과 직장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중요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2018년에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오락 및 휴식 수단으로서 오디오북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영화나 TV쇼를 보는 것 보다 오디오북을 듣는 것이 더 많은 감정 이입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자율주행차나 5G시대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때로는 편승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게 방어하면서 책의 변화는 느리지만 점진적이고, 탐구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도서전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디오북 현장에서 만난 아마존의 자회사인 오디블Audible의 관계자. 25만 개 이상의 오디오 프로그램을 보유한 미디어 기업 Audible은 디지털 구술 콘텐츠(오디오북, 오디오극, 팟캐스트)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 뉴스피크
오디오북 현장에서 만난 아마존의 자회사인 오디블Audible의 관계자. 25만 개 이상의 오디오 프로그램을 보유한 미디어 기업 Audible은 디지털 구술 콘텐츠(오디오북, 오디오극, 팟캐스트)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 뉴스피크

어쨌든 ‘위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고, 코로나19가 우리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킬 듯하지만, 인간으로서 새로운 세상과 문화에 대한 탐구는 이런 위기와 변화에 결코 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탐구와 지지이며 책은 이런 인간의 기록이라 하겠다. 코로나19 이후 민낯이 드러난 여러 국가와 정치 그리고 사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오래도록 이어져온 이런 노력의 기록들이 아닌가 싶다. 

도서전 주변에도 오래된 책부터 클래식한 도장까지 책과 관련된 다양한 노점상들이 자리한 채 각국의 출판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 뉴스피크
도서전 주변에도 오래된 책부터 클래식한 도장까지 책과 관련된 다양한 노점상들이 자리한 채 각국의 출판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 뉴스피크

 

달라진 역사 도시,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중앙역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고풍스럽기도 하고, 제법 웅장하기도 한 역은 여기가 유럽이고, 독일임을 알려주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며,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기 좋은 출발지이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독일 각지에서 IC, ICE 등의 특급열차가 끊임없이 발착하는 곳이다.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지하에는 U반(지하철)과 S반(도시 근교 열차)의 발착 홈이 있다. 독일에서는 중앙역 Hauptbahnhof을 약칭하여 Hbf.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 뉴스피크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독일 각지에서 IC, ICE 등의 특급열차가 끊임없이 발착하는 곳이다.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지하에는 U반(지하철)과 S반(도시 근교 열차)의 발착 홈이 있다. 독일에서는 중앙역 Hauptbahnhof을 약칭하여 Hbf.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 뉴스피크

역을 나서면 역 광장과 함께 쭉 뻗은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전시장을 만날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마인 강이 나온다. 길옆의 상가가 인상적인 정면의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오페라극장이 있는 공원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유럽 금융의 중심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빌딩과 은행을 연이어 만날 수 있다. 그 사이의 길을 잠시 벗어나면 괴테하우스가 있고, 다시 좀 더 가면 프랑크푸르트 옛 시청이 있는 뢰머 광장과 바울교회 그리고 대성당이 있다. 여기까지가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면서 한 번씩 스쳐가는 곳들이다. 

괴테하우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공간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게 특별함일지도 모르는 공간이다. ⓒ 뉴스피크
괴테하우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공간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게 특별함일지도 모르는 공간이다. ⓒ 뉴스피크

독일은 1870년 철혈재상이라 불리던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되기 전까지 약 850년간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던 곳이다. 지금은 제국의 이미지보다는 맥주와 전쟁 그리고 고성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으며, 한 세대 전에는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곳이다. 

괴테하우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12시 정각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괴테 가는 18세기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굴지의 명문가였다. ⓒ 뉴스피크
괴테하우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12시 정각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괴테 가는 18세기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굴지의 명문가였다. ⓒ 뉴스피크

사실 이런 이미지들은 하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르마니아에 무수히 존재했던 부족국가들은 사냥과 자급자족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맥주를 즐겨 마시던 종족이었다. 그들의 주량은 포도주 산업의 흥성과 이탈리아 상인들의 주머니를 가득 채워줄 정도였다고 하니 그 마시던 양이, 그렇게 즐겼을 문화가 어떠했을지 가히 상상이 된다. 

술은 자고로 사람의 감정을 담고 있는 음료이다. 술이 넘치는 곳에 예술도 있지만, 분쟁도 끊이지 않는 법이다. 거친 생활, 거친 문화의 게르만족은 전쟁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발휘하였고, 전쟁이란 공격과 수비가 만나는 것이니, 당연히 성이 많아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쟁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나가고, 결국 세계를 상대로 한 참혹한 두 번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가해자나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특히 주연이었던 독일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곳곳에 새겨놓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파괴되고, 버려진 것들은 다시 부활하고 세워지기 마련이다. 독일인들은 그런 면에서 세계 최고라 부를 만했다. 바로 ‘라인 강의 기적’이라고 건설과 복구사업을 이뤄낸 것이다. 

구시청사, 뢰머. 맞배지붕(지붕의 완각이 수직이다.)이 아름다운 3채의 건물로, 중앙에 있는 것이 뢰머라고 불리는 구시청사다. 뢰머의 2층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새 황제 대관식 이후, 피로연이 벌어졌던 황제의 전당이 있어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견학할 수 있다고 한다. ⓒ 뉴스피크
구시청사, 뢰머. 맞배지붕(지붕의 완각이 수직이다.)이 아름다운 3채의 건물로, 중앙에 있는 것이 뢰머라고 불리는 구시청사다. 뢰머의 2층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새 황제 대관식 이후, 피로연이 벌어졌던 황제의 전당이 있어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견학할 수 있다고 한다. ⓒ 뉴스피크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 족이 건넌 여울목이란 이름처럼 처음 제국이 건설되고, 국민국가가 만들어지고, 다시 전쟁과 복구의 과정을 최전선에서 지켜보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대관식이 열리던 곳이 바로 뢰머광장 뒤쪽에 우뚝 솟은 대성당이며, 1848년에 처음으로 독일의 제1회 국회가 열렸던 곳이 바로 뢰머 광장 옆에 자리한 성 바울 교회이다. 이곳은 여전히 독일 통일과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며, 괴테상 수상 등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평화의 상징, 바울성당 Paulskirche. 1848년에 제1회 국민회의가 열린 장소로, 지금도 자유, 통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괴테상, 도서박람회에서 선발하는 평화상 등의 수상식장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 뉴스피크
평화의 상징, 바울성당 Paulskirche. 1848년에 제1회 국민회의가 열린 장소로, 지금도 자유, 통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괴테상, 도서박람회에서 선발하는 평화상 등의 수상식장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 뉴스피크

그곳에 닿기 전에 만나는 괴테하우스는 이 대문호를 독일인들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인간의 문화가 가지는 가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느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도시가 대부분 불타는 와중에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괴테의 세간살이를 다른 곳에 옮겨 놓았다가 전쟁 후 이곳을 다시 복원하였다. 괴테하우스 안의 오래됐지만 윤기 나는 가구와 주요 설비는 그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마인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대성당 Dom.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교회였기에 황제의 대성당 ‘카이저 돔’이라고도 불리며, 13-15세기에 걸쳐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높이 95m의 탑은 1415년에 건축되기 시작, 1877년에 완성되었다. ⓒ 뉴스피크
마인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대성당 Dom.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교회였기에 황제의 대성당 ‘카이저 돔’이라고도 불리며, 13-15세기에 걸쳐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높이 95m의 탑은 1415년에 건축되기 시작, 1877년에 완성되었다. ⓒ 뉴스피크

역사의 풍경을 만나는 여행은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그건 역사가 추억과 함께 지식과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유럽, 그리고 그 중심에서 있던 독일이기 때문에 사실 역사 유적이 제대로 남을 리가 없다. 거대한 빌딩의 숲 사이에 작게 자리 잡은 옛 흔적은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해준다. 

독일의 풍경이 의미 있는 것은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반성했고, 사죄했다. 물론 인정하지 못하는 못난 이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느 나라와 다르게 수차례 그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거기서부터 발전과 진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비록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번잡한 뢰머 광장 주변이지만 그래도 노상 카페에서 편안하게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반가움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잠시 휴식을 마친 후 대성당 옆 작은 문으로 들어선다. 두 사람이 동시에 오르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허덕이며 올라가면 대성당의 첨탑 지붕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현재의 프랑크푸르트와 마임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나온 빌딩숲도 인상적이지만, 마임강 건너편의 강변공원과 낮은 건물들의 단정함이 더욱 유혹적이다.  

대성당의 첨탑에서 바라본 마인강과 프랑크푸르트의 전경. ⓒ 뉴스피크
대성당의 첨탑에서 바라본 마인강과 프랑크푸르트의 전경. ⓒ 뉴스피크

대성당을 내려와 마인 강을 지나 단정한 거리로 건너간다. 그곳은 아름다운 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이고, 또 사과주가 유명한 유흥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과주야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니, 걸음은 자연스럽게 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사실 박물관은 도시 여행을 위한 안내 책자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 항목을 차지하고 코스이지만, 잠깐 들린 여행객에게 반가운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그 박물관들은 그 풍경과 내부의 볼거리가 제법이다. 

일단 박물관이 자신의 테마에 따라 개성을 간직한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은 고풍스럽고, 문화박물관은 현대적이다. 건물들이 하나하나 특색이 있지만, 또 잘난 체하지도 않는 듯하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안에 소장된 작품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부족한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영화박물관의 다양한 볼거리들. ⓒ 뉴스피크
영화박물관의 다양한 볼거리들. ⓒ 뉴스피크

당연히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 그 안에 품고 있는 작품과 가치가 작지 않음이 들인 시간만큼 확인이 된다. 여기에 계획된 시간이 짧음이 서서히 아쉬워질 정도로 이 강변 건물들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이 된다. 특히 슈테델 미술관의 풍부함과 영화박물관의 다채로움은 꼭 한 번씩 둘러보기를 권해보고 싶다. 

박물관을 통해 이 도시가 시간을 도시에 간직하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보듬고 있음을 나름 깨닫게 된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은 도시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건설과 개발로 프랑크푸르트를 말해주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게 과연 올바른가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려한 현재를 말해주는 곳은 넘쳐나지만, 도시의 과거와 자신들의 역사가 공허해지면서 자손들이 이어나갈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프랑크푸르트는 단지 스쳐감의 도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도시가 좀 더 영속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머묾의 유혹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전통에서 피어나는 것이고, 도시에 좀 더 안정적인 미래를 약속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화려한 풍경이나 장터와 같은 활기는 그저 잠깐의 스침으로 끝날 것이고, 결국 다른 도시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마인 강변의 미술관 거리에서 바라본 풍경. 박물관의 거리에는 수공예 박물관, 민족학 박물관, 독일영화박물관, 독일건축박물관, 그리고 고대 이집트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는 조각의 명품들을 모아 놓은 리비크 하우스 등이 있다. ⓒ 뉴스피크
마인 강변의 미술관 거리에서 바라본 풍경. 박물관의 거리에는 수공예 박물관, 민족학 박물관, 독일영화박물관, 독일건축박물관, 그리고 고대 이집트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는 조각의 명품들을 모아 놓은 리비크 하우스 등이 있다. ⓒ 뉴스피크

지금 세계의 도시들은 무언가 화려함의 유혹만을 꿈꾼다. 그래서 갈아엎고, 새롭고 깔끔한 것들, 그리고 비슷한 것들로 채워놓는다. 과연 그 유혹을 바라고 다른 색과 문화의 사람들이 산 넘고, 물 건너 그 먼 길을 오는 것일까? 

프랑크푸르트는 도시가 간직해야 하는 이야기와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곳이기도 하다. 

중앙역 인근의 거리는 늦은 오후부터 장터가 된다. 맥주와 와인, 신선한 과일부터 바로 구워져 나오는 소세지까지.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는 풍성한 여유가 그곳에 열린다. ⓒ 뉴스피크
중앙역 인근의 거리는 늦은 오후부터 장터가 된다. 맥주와 와인, 신선한 과일부터 바로 구워져 나오는 소세지까지.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는 풍성한 여유가 그곳에 열린다. ⓒ 뉴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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