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조문기 선생 회고록 <슬픈 조국의 노래>
상태바
[책] 조문기 선생 회고록 <슬픈 조국의 노래>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4.0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투사의 절절한 호소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이다”

1945년 7월 침략전쟁에 미쳐 날뛰던 일본제국주의에 편승해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들도 전쟁 동원에 기승을 부렸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우두머리격인 박춘금이 조작해낸 대의당이란 집단이 서울 부민관(현재의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라는 어용대회를 개최하려 했다.

이에 조문기 선생과 유만수 선생, 강윤국 선생은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행사장 단상 계단 밑과 무대 밑에 폭탄을 설치해 응징했다. 바로 독립운동사에서 ‘부민관 폭파사건’이나 ‘부민관 폭탄 의거’라고 일컫는 투쟁이다.

시한폭탄을 이용한 이 사건은 일제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물론이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쾌거였다.

69년의 세월의 흐른 2014년 7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매송초등학교 교정에서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조문기 선생은 1927년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으며, 2008년 2월 5일 새벽 5시께 서거했다. 조문기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이끌어 오던 지난 2006년 11월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자택이 있던 수원시 천천동에서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 슬픈조국의 노래 ⓒ 민족문제연구소
오늘 소개할 책은 생전에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이다”고 강조해 왔던 조문기 선생의 회고록 <슬픈 조국의 노래>(민족문제연구소 발행)다. 2005년 3월 24일 초판이 발행됐다.

<슬픈 조국의 노래>에는 진정한 해방을 위해 싸워온 선생의 생애와 연결된 곡절 많았던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선 이 책엔 조문기 선생이 직접 겪은 친일민족반역자 송병준 일가와의 악연과 남한만의 '단정(단독정부)'을 반대한 인민청년군 사건을 비롯해, 이승만 암살 정부 전복 음모 조작사건, 성시백 사건, 민족민주청년동맹사건 등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그 중 1948년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이 친일경찰들을 내세워 남북협상파들을 체포 고문하는 등 노골적으로 통일정부 수립을 방해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경고하려 했던 인민청년군 사건을 보자.

인민청년군 사건은 조문기 선생이 동지들을 모아 삼각산(흔히 북한산이란 함) 6개소에 사제 시한폭탄을 설치하는 동시에 봉화를 올리고 서울 시내 고층빌딩 수십 곳에 “통일정부 이룩하자”, “단일정부 수립반대”, “미군은 물러가라” 등의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친 후, 공중에 총 몇 발을 쏘는 평화적인(?) 무력시위를 하려 계획한 사건이었다.

단정수립을 반대하는 막강한 무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이승만과 미군정이 노골적으로 남북협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직에 숨어든 프락치에 의해 발각됐고, 체포된 조문기 선생은 경찰서 취조실에서 일제 때 악명 높았던 친일경찰 김종원에게 고문을 당했다. 해방됐다는 조국에서 악랄한 친일 경찰에게 대못이 박힌 각목으로 맞아 못이 몸 속으로 쑥쑥 들어오는 소름끼치는 고문을 당한 선생은 “분통 터지고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한다.

아울러 이 책엔 10대 중반 독립운동에 투신해 팔순이 다 된 나이에도 “진정한 독립을 위해 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는 선생의 친일파 청산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독립운동계에 대한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도 들어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광복절은 광복회원들이 기다리는 잔칫날이다. 대접받는 날, 민족해방을 경축하는 날, 얼마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날인가? 하지만 알고 보면 거짓 환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찬 날이다. 그래서 나는 안 간다.”

선생은 그 이유를 “1945년에 일제는 물러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제 치하에서 살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8.15이후 숙청된 것은 친일파들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운동자들과 민족운동 세력이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에 대해 선생은 “친일파들은 새로운 권력자 미국을 등에 업고 재빠르게 반공세력으로 변신해 독립운동세력을 무력화시켜놓고 이 나라의 주류로 등장”했고 “친일파들이 정관계, 문화, 예술, 언론,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주류로 행세했고, 인맥과 후예들을 길러 철옹성같이 굳건한 성벽을 쌓았다”며 울분을 토한다.

▲ 광복절이면 오히려 경축의 냄새가 안 나는 산이나 바다로, 펄럭이는 태극기와 경축 현수막이 안 보이는 곳을 찾아 ‘피신’한다고 했던 생전의 조문기 선생. ⓒ 뉴스피크
하지만 이 책이 현실에 대한 답답함만 담고 있진 않다. 독립운동가와 만나 평생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아내에 대한 애틋한 감정 표현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10대 중반 독립운동에 뛰어든 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상태로 오직 민족만을 생각”하면서 거칠고도 험난했던 삶으로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끔찍한 역경도 많이 체험”했던 선생은 당당하게 말한다. “후회는 없다”고.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이 노골화되고 있다. 더구나 일본군대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운운하며 다시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징후가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했던 국무총리 후보자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렇기에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의 동상 제막은 뜻 깊은 일이다. 친일파 청산이 왜, 얼마나 중요한 지 절절이 증언하는 <슬픈 조국의 노래>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