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재개통으로 수원역의 ‘역사성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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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재개통으로 수원역의 ‘역사성 복원’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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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은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인 1937년 8월 소래, 남동, 군자 등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할 목적으로 남인천~송도 구간으로 개통·운행이 개시됐다.

이후 일본제국주의가 중부 내륙지역의 미곡을 수탈할 목적으로 1931년 개통된 수려선(수원~여주간, 1972년 폐선)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수인선은 미곡운송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도로시설 확충(1977년 국도42호선-수인산업도로 개통) 등으로 쇠락을 거듭한 끝에 1995년 12월 31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수인선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협궤 철도로서 지금도 수원지역 주민들은 자전거만큼이나 느릿느릿하던 자그마한 열차를 타고 소래포구로 장을 보러가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인선이 다시 되살아나게 된 것은 현재의 경인선과 경부선 서울구간의 선로용량 포화로 인천항의 화물수요를 우회할 노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마침 철도부지로 남아있던 수인선을 이용하여 인천과 수원을 연결하고, 세류삼각선을 통해 경부선과 직결함으로서 수인선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수인선의 출발역인 수원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더불어 영업개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 중 하나로서 수원역의 역사는 바로 근대 수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수원역은 1930년 수려선(수원~여주), 1937년 수인선(수원~인천) 개통에서 보듯 철도 노선의 명칭에 있어서 서울(경부선, 경인선 등 노선의 명칭 앞부분을 차지하는 도시)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수도권 남부의 중심도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렇게 수원역은 역사적으로 남북축 경부선과 동서축 수려선, 수인선이 만나는 십자축의 중심부로서 많은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수도권 남부 최대의 번화가였다.

이후 1972년 수려선 폐지, 1996년 수인선 폐지 이후에도 수원 뿐 아니라 화성, 오산, 안산, 군포, 의왕 등 주변지역을 영향권역으로 아우르는 경부선 수도권 남부 최대역으로서 지위를 누렸다.

최근 2010년 KTX가 하루 8회 정차하기 시작하고, 이어 2013년 수원분당선이 왕십리에서 수원역까지 개통되었으며, 2016년에는 수인선이 다시 전구간 개통을 앞두고 있어 수원역은 다시 철도 십자축의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한국철도공사의 통계자료를 보면 수원역에서는 하루 평균 17만 5천명이 철도를 이용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 조사자료에 의하면 수원역 앞 버스정류장은 하루평균 14만여 명이 철도와 버스간 환승을 하여 사당역(10만), 야탑역(4만3천)을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역사로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이는 2013년 수원분당선의 개통 이전에 조사된 자료로서 수원분당선 이용객을 반영하고 2016년 수인선 완전 개통에 따른 효과를 더하면 수원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될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 하겠다.

수인선의 개통은 서수원지역 발전의 기폭제가 될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철도 십자축의 중심역으로서 수원역의 역사성이 되살아나고 이를 계기로 행정, 교육,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서 수원의 위상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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