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치매 상태인 길원옥 할머니를 상대로 기부하게 하는 등 준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윤미향 의원을 기소한 데 대한 공판에서 길원옥 할머니의 양아들 부부가 (할머니는 치매지만) 본인들에게 한 행위는 온전한 정신으로 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해 논란이 예상된다.
6월 10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문병찬) 심리로 윤미향 국회의원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13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길원옥 할머니의 양아들과 며느리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서 길원옥 할머니의 건강 상태 등을 놓고 차례로 진술을 이어갔다.
먼저 증인석에 오른 양아들 A씨는 검찰 조사 당시 할머니가 ‘단기기억장애’로 ‘치매’라고 진술했지만, “(단기기억장애가 아니라) 깜빡깜빡한다고 말한 거로 안다. 치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똑똑한 분이라서 노환이니까 깜빡깜빡한다고만 알았다. 말씀도 다 알아들으셨다”며 “(대소변 못 가리는) 그런 적 없다. 밤에 (손영미) 소장님 고생하신다는 것만 들었다. 정신력이 강하셨다”고 증언했다.
A씨는 길원옥 할머니가 1998년 등록 이후 2004년 정대협이 운영하는 쉼터에 이주한 뒤 주 1회씩 방문하고 매일 2차례씩 전화로 안부를 물었는데, 당시에는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 증세는 없었다는 것. 다만, 2020년 6월 인천으로 모시고 간 뒤 병원 진단을 통해 치매라고 확인했다고 한다.
며느리 증언도 비슷했다. 그는 “치매증세라기보다는 단기기억문제라는 것은 들었다. 연세가 90살이 넘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며 “2020년 6월 인천에 모시고 온 뒤 병원 진단을 통해 치매 상태였다”고 말했다.
양아들·며느리의 그때그때 다른 치매 판단
결국 할머니의 양아들 부부 역시 할머니를 자주 찾아가고 연락을 했지만 치매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최근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경우 2020년 아들 A씨의 양자 입적 과정은 물론 길 할머니의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한 고발, 며느리 B씨의 할머니 국가지원금 관리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2020년 5월 이뤄진 양자입적 과정은 석연치 않았다. 길원옥 할머니가 실제 양자입적에 동의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양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가 동의했다고 했지만, 실제 입양서류에 할머니가 서명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양아들 A씨는 “어머니에게 서명받은 거로 기억한다”고 말했지만, 며느리 B씨는 “어머니가 직접 서명했다고요? 기억 안 난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서로 다른 답을 내놨다.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부당이익금 반환소송 원고가 길원옥 할머니인 것을 두고서도, B씨는 “어머니가 온전할 때 했다”면서도 “24시간 치매가 아니라서 알아는 듣고 의사 표현을 하지만 정상적 의사 표현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해 길 할머니의 자유의사에 따른 소송이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전망이다.
길원옥 할머니의 정부지원금, 상금 등 통장에 있는 돈을 두고도 며느리의 치매 여부 판단은 일관되지 않은 듯 보였다.
길원옥 할머니는 매주 쉼터를 방문하는 아들에게 적게는 5~10만 원, 많게는 50~60만 원을 용돈으로 줬지만, 며느리 B씨는 치매 상태가 아닌, 정신이 돌아왔을 때라고 했다.
또한, 현재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국가지원금을 며느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길 할머니가 이를 동의할 때는 “허락받았다”는 답변으로 온전한 정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길원옥 할머니 명의로 인터넷뱅킹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양아들 등 가족들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대협·정의연 쉼터 거주 당시 아들에게 용돈과 1천만 원을 준 것 이외의 모든 활동은 길 할머니의 치매 상태라는 주장을 펼쳤다.
길원옥 할머니는 2017년 정의기억재단이 시민모금으로 모아 여성인권상과 함께 받은 1억 원 중 5천만 원을 길원옥여성평화상으로 기부했는데, 이를 두고 B씨는 “치매라고 하는 게 24시간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순간순간 온전해질 수 있지만, 5천만 원 이상 기부하는 것은 어머니의 전적인 의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중 1천만 원을 양아들에게 줄 때는 제정신이었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는 말을 흐렸다.
판사가 입양과 민사소송 등에 대해 온전한 정신이었는지 거듭 확인하자, ‘정확한 판단은 의사가 할 거고 제가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며느리 B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국가지원금과 관련 “올해부터 간병비가 올랐다. 간병비가 4백여 만 원 들어온다. 대충 합쳐서 6백만 원 이상 들어온다”며 “간병비가 비싸서 5백만 원 이상 나간다. 일반 생활비로 1백만 원 들고 50~60만 원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양아들 며느리의 주장은 손영미 소장이 관리하였던 것은 치매 환자를 이용한 것이고, 자신의 관리는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길원옥 할머니, 유언으로 “배상금 나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히 일부 언론에서 논란이 된 길원옥 할머니의 유언 편지와 영상도 이날 공개됐다. 며느리 B씨는 검찰에서 “아들이 멀쩡히 있는데 저희도 모르게 유언이라니 너무 놀라서 영상을 틀어보니 저의 어머니와 윤미향 전 대표가 문답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내용은 저희 어머니 사후에 장례절차를 정대협에 일임하고 일본에서 배상금이 나오면 재일조선학교에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2019년 5월 4일 자 유언영상에는 B씨의 진술내용이 없었다. 길원옥 할머니와 윤미향 당시 정의연 이사장이 문답하는 영상에는 “(배상금 받으면) 우리나라에 없는 사람들한테 쓰죠. 없는 사람들은 항상 아쉬우니까”라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다만, 영상 촬영 전날인 5월 3일에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작성한 유언 편지에는 “제 장례를 진행하는 것, 나머지 저와 관련한 모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을 정대협 윤미향 대표에게 맡깁니다”라고 적혀있을 뿐, 재일조선학교를 지원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양아들·며느리, 길원옥 할머니의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 무관심·폄훼
길원옥 할머니의 가족으로 ‘사랑’을 강조한 아들과 며느리는 정작 할머니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 활동에는 무관심했다.
2017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머니 비밀을 알고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는 대목을 두고, 아들 A씨는 “피상적으로 한 말이다”라고 했고, ‘위안부’문제 관심여부 질문에는 “관심없다”고 답했다.
며느리 B씨는 길 할머니가 열의를 가지고 운동한 것 아니냐는 판사의 질문에 “24시간 (정대협에서) 돌봤다. 거기 젖어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 활동을 (정대협이) 설명하면 나 못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방청객에선 한숨과 탄식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한편, 재판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이라고 해도 법률상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암만 우겨봤자, 아니야. 안되는 걸 저희들이 아는걸. 억지 못 써. 되는 일을 억지를 써야지 안 될 일을 억지 써 봤자지. (할머니는 누가 끝까지 돌봐주면 좋겠어요?) 우리 소장 있잖아. 아들보다 백번 낫지요. 내가 마음이 편하니까. (아들이 막 할머니 모시고 싶다잖아) 아니야.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도 모시고 싶으면 여기 오기 전에 모시러 왔다고 했게. 아니야. 내가 나이가 먹어서 늙었으니까 이렇다 하면 이런 줄 알고 저렇다 하면 저런 줄 아는데 아들이 암만 데리러 가겠다고 해도 아니야. 나 여기서 살 거야 하면 그만이지 뭐. 가자 어쩌자 하면 꿈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좀 편히 살다 가게 내버려 두면 뭐. 여기는 마음이 편하지만, 저기는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게 되나.”
14차 공판은 6월 20일에 열릴 예정이다. [뉴스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