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을 맞아 다시 광화문 광장에 섰습니다. 벌써 9차까지 이어지는 한겨울 시민촛불에 작은 촛불 하나 더 모아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이날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범국민서명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입장에서는 ‘참여’하러 간 것이 아니라, 저 또한 이 사건의 ‘당사자’로서 마땅히 제가 서야 할 자리에 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헌정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억될 2014년 12월 19일, 강제로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피의자로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3차 재판’입니다. 2013년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1차 재판에서 2년, 3년형을 선고받았던 사람들은 만기출소까지 하였으나, 동일한 사건에 대한 후속 재판들은 이후로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진행된 이날 서명에 저는 동화면세점 앞 서명대에 섰습니다. 오후 3시부터 3시간 가량 진행했는데, 제가 있었던 자리에서만 약 750명 정도의 시민이 동참해주셨습니다. 준비했던 서명판 5개가 부족할 지경이었고, 멀리서 서명대를 보고 일부러 찾아와주신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기까지 하면서 서명했습니다.
요즘 갑자기 일부 언론에서 매일 쏟아내고 있는 ‘이석기 석방요구에 촛불시민 눈살’이란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끔씩, 맞은편 청계광장에서 ‘탄핵반대집회’를 하고 돌아나온 보수단체 시민들이 뭐라고 하면서 지나갔던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마침 취재를 나왔던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길래 대화를 나누며 간곡하게 ‘있는 그대로 보도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나온 해당 언론사의 기사 제목에도 어김없이 ‘촛불 정신 왜곡하면 안된다’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무척 유감스러웠습니다.
‘순수한 촛불을 흐린다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드렸습니다.
“순수한 촛불을 운운하는 것 자체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라는 큰 목표에 동의하여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에게 과연 누가 어떤 자격으로 순수하고 말고의 요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이석기 석방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다’는 질문에도 답했습니다.
“당연하다. 저 역시 광화문광장에 나오는 모든 시민들께서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 퇴진’에 대한 각자의 이유와 근거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분노에서, 농민들은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끔찍한 현실에서, 또 학생들은 부모라는 배경도 실력이라며 공정한 경쟁을 조롱했던 정유라 사태를 보면서 이 자리에 섰을 수 있다. 저 또한 민주질서를 근본적으로 짓밟은 ‘이석기 내란사건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라는 행태에 대한 분노를 갖고 이 자리에 서 있다. 동의하든 안하든, 이런 다양한 목소리들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진정한 ‘촛불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퇴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첫 걸음이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는 2017년 1월 한 달을,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갖고 함께 토론해보자며 ‘국민 대토론 주간’으로 제안했습니다. 토론은 다양한 생각과 의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입을 틀어막겠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폭력이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위험한 행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느닷없이 ‘이석기 석방 요구가 촛불을 흐린다’면서 광화문 서명현장의 분위기마저 왜곡하며 보도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의 행태야말로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또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일부분입니다.
글 :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