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이름을 채워 넣었다. 왜냐하면 ‘성’(渻)자는 서약봉(徐藥峯·1558~1631)의 이름으로 자손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약봉, 즉 서성은 조선후기 명문가 대구 서씨의 중흥조다. 후손이 번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 교수에 따르면, 『규장전운』이 인쇄되기 직전 정조는 ‘성(渻)’자를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인 ‘祘’를 집어넣었고, 이후 임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성(渻)’자는 다른 문헌에
이번 안 교수의 논문은 2년 전 남씨의 주장을 일부 반박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한 것이다. 안 교수는 ‘비연외초(斐然外抄)’라는 글을 새롭게 발굴했다. ‘비연외초’는 19세기 저명한 중인 문사인 장지완(1806~?)의 글이다. 장지완은 “정조의 이름은 본래 ‘산(算)’으로 읽었지만 『규장전운』 발간을 계기로 ‘성’으로 바로잡았다”며 “계란(界欄·인쇄의 판식)이 벌써 정해졌기 때문에 ‘성(渻)’자를 삭제하고
정조는 자식이 귀했다. 왕비 청풍 김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의빈 성씨 소생인 문효세자는 요절했다. 늦게 수빈 박씨에게서 순조를 낳았지만, 『규장전운』 완성 당시 일곱 살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 순조를 지나 손자 헌종 대에서 정조의 대는 끊겼다. 이름까지 바꿔 후손이 많기를 바란 정조의 꿈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서약봉, 즉 서성은 조선후기 명문가 대구 서씨의 중흥조다. 후손이 번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 교수에 따르면, 『규장전운』이 인쇄되기 직전 정조는 ‘성(渻)’자를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인 ‘祘’를 집어넣었고, 이후 임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성(渻)’자는 다른 문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