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자식이 귀했다. 왕비 청풍 김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의빈 성씨 소생인 문효세자는 요절했다. 늦게 수빈 박씨에게서 순조를 낳았지만, 『규장전운』 완성 당시 일곱 살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 순조를 지나 손자 헌종 대에서 정조의 대는 끊겼다. 이름까지 바꿔 후손이 많기를 바란 정조의 꿈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임금 이름을 채워 넣었다. 왜냐하면 ‘성’(渻)자는 서약봉(徐藥峯·1558~1631)의 이름으로 자손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약봉, 즉 서성은 조선후기 명문가 대구 서씨의 중흥조다. 후손이 번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 교수에 따르면, 『규장전운』이 인쇄되기 직전 정조는 ‘성(渻)’자를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인 ‘祘’를 집어넣었고, 이후 임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성(渻)’자는 다른 문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