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세계, 술로 통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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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세계, 술로 통하다 1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0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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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오세아니아 소믈리에와 금산 인삼주의 만남

 

     
▲ 밀가루로 이음새를 막고 있다. 증기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뉴스피크

 봄은 누가 뭐래도 축제의 계절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꽃과 자연이 먼저 움직이니 사람이 그를 쫓지 않을 수 없다. 그리 쫓는 중 가장 으뜸이 음식인 것은 당연할 듯하고, 한반도의 중심 자리에서 세계 조리사 대회*를 개최하는 건 또 너무나도 익숙한 듯하다.

그 요리와 조리의 한바탕 축제를 더욱 향기롭게 가다듬는 게 바로 '국제소믈리에협회'와 그들의 경연대회*이다.

    * '한국인의 손 맛! 세계인의 입 맛!'이라는 주제로 201251일부터 12일까지 열린 2012대전세계조리사대회.

    * ASI(국제소믈리에협회) 총회와 제2회 아시아 오세아니아 소믈리에 경기대회가 주요 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사실 어느 순간 우리의 주변에 와인 샵과 바가 하나둘씩 늘어가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동호회와 책 그리고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백화점이나 마트를 가도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게 와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막걸리가 대유행이라고 하지만, 그 종류의 다양함이 비교가 안되니 공간의 크기가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세계 각지에서 모인 소믈리에의 한판 재주 겨룸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그보다 더욱 눈과 발을 끄는 게 그들이 막간을 이용해 찾는 전통주투어이다.

저 아득한 시간, 굳이 국사교과서를 흝어보지 않아도 ‘쇄국’과 ‘개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아니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주제였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금발의 소믈리에들이 전통주를 찾아 들어선 금산의 거리에도 농민의 입장을 외면한 FTA협상을 질타하는 플랭카드가 한가로이 바람에 날리고 있으니 이 위태로운 주제를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과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의 균형은 항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의 모든 노동이 하나로 연결된 이때, 우리의 장점을 바깥으로 퍼트리는 게 중요하게 된 시점에 다른 이들의 요구를 막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균형일 것이고, 적절한 합의와 소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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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 소믈리에를 맞이하다

대전조리사대회의 막간에, 국제 소믈리에 협회(ASI) 소믈리에 경기대회 참가자에게 우리나라 전통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재미난 음주여행이 마련되었다. 그저 즐거운 유람이겠거니 했지만, ASI총회에 참가한 신야타사키 ASI 회장, 주세페 바카리니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장, 1971년 세계소믈리에대회 우승자 '피에로 사타니노' 등 약 25개 나라 소믈리에 97명에 대회 관계자까지 움직이니 버스 세 대의 대규모 시음단이 되어 버렸다.

첫날은 국순당에서 거나하게 마련하였고, 뒷날은 금산 인삼주에서 옹골차게 준비되었다.

행사장인 ()금산 인삼주 너른 마당의 한쪽에 흰천이 깔린 자리가 마련되고, 그뒤로 옹기그릇이 아궁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흰 천 위에는 인삼과 홍삼, 누룩 그리고 쌀이 잘게 부서진 것들과 함께 소반 위에 담겨 있다. 모두 인삼주를 만드는 뼈이자 살이었다.

그 앞에는 정갈한 개량한복을 차려입은 김창수 명인이 시음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남 금산에서 20여년간 양조장을 운영하며 전통 인삼주 재연에 애써온 김창수 명인(名人)은 조선시대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 문기(1399-1456) 가문의 18대 손이자 금산 토박이로서 대대로 백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인삼주를 계승해 오고 있는 이였다. 어려서부터 술 빚는 광경을 보면서 술과 인연을 맺었고 자연스럽게 조모와 모친으로부터 그 기술을 전수받게 되면서 19902월 충남무형문화재 제19호 지정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주이자 명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이제 색 다른 소믈리에들을 위해 그의 인삼주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1,500여년을 이어온 역사를 말하고, 전통적인 주조의 방법을 여기서 간단하게 보여줄 것임을, 지금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과 함께 설명해주었다.

명인이 말하는 동안 그 뒤의 한 명은 아궁이에 불을 쉴새없이 높이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옹기의 이음새를 밀가루로 길게 붙여 막고 있었다. 그렇게 옹기가 김을 뿜어내며 밥을 만드는 동안 잠시 인삼주를 시음하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현대적인 설비를 둘러보기로 했다. 유명 와인 만화처럼 말이나 설명보다 한번 맛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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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세계와 통하다

공장의 한편에 있는 시음실에는 43도의 증류주와 인삼주가 마련되어 있었다.

먼저 탁자 위 도자기에 있는 증류주를 한 잔씩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벽안, 금발의 외국인이 조심스레 술을 따르는 모습이 의외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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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아진 그들의 품평은 아마도 우리 술의 경쟁력과 소통 그리고 균형을 위한 무형의 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보다 길어진 시음을 마친 후 그 옆의 공장으로 견학이 이어졌다. 작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거대한 스테인레스 통으로 채워진 그리 작지 않은 공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술이 만들어지는 첫번째 공간이자 인삼주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전통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쌀이다. 그리고 그 쌀을 인삼 그리고 누룩과 섞어서 발효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과정인데, 바로 이곳에서 그 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인삼은 곰팡이를 잡아먹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삼으로는 발효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한 비법이 필요하고, 진정한 인삼주는 전세계에서 오직 여기서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안내인이 자랑스럽게 덧붙인다. 그의 자랑스러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단지 맛으로, 특산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과학과 정성으로 만든 술임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층에서 고두밥을 만들어 인삼과 누룩을 섞어 밑에 있는 증류실로 내려보내 술로 만든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마치는 동안, 설명이 한마디 끝날 때마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질문이 쏟아진다.

누룩과 인삼과 쌀은 따로 넣는지, 같이 넣는지, 증류와 입국의 시간은 얼마나 필요한지, 숙성이 오래되면 어떤 특성이 생기는지 등 각자 살았던 곳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덕분에 전문적인 용어를 옮겨야했던 통역이 제일 분주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되었다

시음과 마찬가지조금 다르고 깊고도 실질적인 것들을 담고 있음이 느껴지기에, 그들이 단지 관광객이 아님을, 여기는 단지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소통하는 자리임을 다시 한번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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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삼주가 만들어지는 100일간의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친 후 아래에 있는 증류실로 내려갔다. 깊지는 않으나 위태해보이는 계단을 내려서니 거대한 스테인레스 통이 줄지어 서있고, 방 가운데는 위층과 연결된 연통이 보인다. 그곳에서 쌀과 누룩과 인삼이 섞여서 내려오면 여기서 발효가 진행되는 것이다. 조금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안내인이 지금은 18일 정도가 지나서 괜찮고 처음 5일간은 가스가 너무 지독해 들어오기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은 그때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균의 세상이다. 그들이 활개치고 살 수 있도록 하루 세 차례 교반 작업을 위해서만 들어오는 곳이라 한다. 지금 여기에 들어온 이들은 철저한 이방인이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렇게 누렇게 변한 묘한 액체의 통을 둘러싸고 또 한바탕 질의응답이 펼쳐진다.

통에 있는 발효의 액체를 지금 꺼내서 먹으면 막걸리가 되고, 3일 정도 후에 걸러서 먹으면 청주가 된다. 그리고 그 이틀 후에는 약주가, 맨 마지막에 끓여서 도수를 맞춰 증류를 한 후 100일이 되면 인삼주가 된다고 하는데, 실제 100 30만이 증류주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사서 먹는 인삼주가 사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우리 곁에 오는 귀하고 귀한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의 전통 증류인 인삼주서양의 증류주인 위스키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안내인의 말에 의하면 위스키는 랜딩을 하는데, 우리의 전통주는 순수하게 증류한, 섞지 않은 술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맛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순수함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왠지 우리 민족의 풍류와 어울리는 듯하다.

 


인삼이 들어간 것은 인삼주가 아니다

 

참관과 교육을 통해 계속 드는 생각은 인삼주는 균형과 절제의 술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인삼주에서 중요한 것은 인삼이 균을 죽이지 않고 술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 점이다. 그래서 적절한 양과 적절한 환경이 중요한 것이고, 양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인삼을 10퍼센트 이상 첨가하는 실험을 해봤는데, 술이 망가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인삼이 들어가 있는 술은 단지 인삼에 소주를 부어서 만든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인삼주는 아니라는 사실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아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공장 견학을 마치고 다시 옹기가 끓고 있는 마당으로 향하는데, 어떤 일본인 기자가 왜 인삼 밭에 검은 색 가림막을 해놓느냐고 물어본다.

명인이 대답을 한다.

인삼이 참 묘해서, 해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해요. 햇볕을 좋아하지만 직사광선을 쬐면 썪어 버려요. 그래서 해가막을 해주는 거에요. 겨울에는 해가림막이 필요없어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

참으로 절묘하다. 인삼의 성질이 술의 성질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화덕에는 벌써 밥이 되었다


이제 전통적인 방법을 구경할 차례이다.

드디어 밥이 하얀 멍석 위로 펼쳐졌다. 쌀을 식히지 않으면 균을 모두 죽인다며 국자로 밥을 휘적으며 식히기 시작한다. 옆에서 구경하던 한 참가자가 냉큼 집어 먹어보더니 한두사람씩 맛을 본다. 그냥 구수한 밥맛이다.

누룩이 섞이고, 인삼이 섞인다. 너른 마당에 인삼 향기가 은근히 퍼져나간다. 그렇게 보기 좋게 버무려진 다음 옆에 기다리고 있던 모양 좋은 옹기로 차곡차곡 들어간다. 그리고 그 위로 물이 부어진다.

이제 이렇게 항아리에 넣어두면 15일 정도 지나면 끓기 시작하고, 술이 되기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짧지 않았던 명인의 시연과 설명이 마무리 되었다.

 

정성이 만든 술이고, 지혜로 빚은 술이다. 단지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충분히 향기롭고, 감칠 맛있게 느껴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지금 주변을 둘러보자.

인삼주가, 전통주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지를, 만약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술잔 기울이듯 한번쯤 생각해보자

▲ 밥을 식히고, 다시 누룩과 인삼과 섞는다. ⓒ 뉴스피크

 

▲ 한참을 섞은 후 기다리던 항아리로 들어간다. 이제 15일 뒤면 이 안은 발효의 마법이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가 된다. ⓒ 뉴스피크

▲ (주)금산 인삼주 전경. ⓒ 뉴스피크

<금산 인삼주>

금산인삼주는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2호와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돼있고, 약효가 가장 좋다는 5년 이상된 금산 인삼만 골라 쌀과 누룩을 함께 저온 발효시켜 빚은 발효술로서 은은한 향과 동양적 멋이 특징이다.
(주)금산인삼주의 품질은 이미 지난 2000년 ASEM 정상회의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 정상들에게 대한민국 인삼주의 위상을 알린바 있다. 또 최근에는 전통주 진흥협회 주최 2010 제1회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부문(인삼주) 대상을 수상하는 등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금산인삼주는 금산읍내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금산읍내는 인삼시장과 약초시장 등이 입구부터 길게 이어져 있고, 삼계탕 등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읍사무소에 가면 한우촌 지도와 함께 할인쿠폰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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