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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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을 기억하자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5.03.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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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려순감옥에서 순국. 105년 전 바로 오늘이다
▲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뉴스피크] “탕! 탕! 탕!···.”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한국(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피를 쏟으며 썩은 고목처럼 거꾸러졌다.

일본 하얼빈 주재 총영사관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일본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타이치로, 만철 이사 다나까 세이지로도 총격에 쓰러졌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安重根) 장군은 당당하게 외쳤다.
“코레아 우레!(대한 만세!)”

그리곤 순순히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다. 이 사건은 한반도 침략에 이어 중국 대륙까지 넘보던 외적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인 안중근 장군이 동지들과 함께 성사시킨 위대한 군사 작전이었다.

폐와 복부에 3발의 맹관총상을 입은 이토 히로부미는 급히 전용 열차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소생 가망이 없었고,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죄 많은 생을 마감했다. 오전 10시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고, 중국에 까지 침략의 마수를 뻗어대던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이었다. 초대 한국 통감으로 침략을 지휘했으며, 일본 내각 수상도 네 번이나 지낸 일본제국주의 정계의 우두머리였다.

대한제국의 군대는 이미 1907년 해산된 상태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변변한 무기를 갖추지 못했던 의병들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일본군의 무력 앞에 무참히 죽어갔다.

안중근 장군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한 전투에 앞서 1908년 6월 3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두만강 건너 함경도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인 바 있다. 안중근 부대의 국내 진격 작전은 50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는 등 일본제국주의 세력에게 타격을 가했다. 하지만, 5천명이 넘는 일본군의 포위 공격에 결려 많은 동지들을 잃고 작전은 실패했다.

안중근 장군은 러시아 검찰에게 초동수사를 받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숨졌다는 얘길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인이다. 동포들을 대신해 원수를 갚았다. 불행한 우리 동포들을 대신해 원수를 갚은 것이다. 나는 정말 기쁘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가 추진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동해 쪽에 있던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와 이어주는 요충지였다.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군의 대규모 기지가 있던 곳이다. 러시아가 관할하던 곳에서 일본제국주의 침략자의 두목을 처단한 것이다.

안중근 장군은 국적이 한국이었고,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이었기에 재판관할권은 러시아에게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측은 경비에 대한 실책을 면해 보려는 듯 초동수사만 진행한 뒤, 사건이 발생한 날 밤 10시 30분께 안중근 장군의 신병을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이튿날인 10월 27일 일본 외상 고무라 주타로는 안중근 장군의 재판 관할을 관동도독부로 결정했다고 하얼빈 총영사 카와카미 도시히코에게 통보했다.

안중근 장군은 일본 검사의 심문과 재판 과정에서도 안중근 장군은 당당하고 조리정연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밝혔다. 특히 안중근 장군은 자신이 전쟁 포로임을 강조했다.

“나는 개인 명의로 모살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중임을 맡아 하얼빈에 와서 전쟁하는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포로가 됐다.”

전쟁 중 벌어진 전투 과정에서 적을 사살했고, 포로가 된 것이란 얘기다. 즉 일본법에 따른 재판은 받을 수 없으니, 국제법에 따라 포로로 예우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안중근 장군에 대한 이른바 ‘재판’을 강행해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했다.

침략국 일본의 우두머리를 전투에서 사살한 안중근 장군은 결국 1910년 3월 26일 려순감옥에서 순국했다. 105년 전 바로 오늘이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후예들은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침략 역사를 왜곡 미화하고, ‘자위대’의 군대 전환을 획책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노골적인 침략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뉴스피크>는 창간 3주년을 맞아 앞으로 안중근 장군이 감옥에서 남긴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를 비롯해 다양한 글들을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다. 안중근 장군이 활약했던 시대의 배경을 물론 오늘날 고민해야 할 문제까지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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