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언론이 될 때, 세상은 좀 더 생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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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언론이 될 때, 세상은 좀 더 생생해진다
  • 윤민 기자
  • 승인 2024.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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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코의 ‘저널리즘’ 다시 읽기

[뉴스피크] 

▲ 조 사코 '저널리즘' 책 표지. ⓒ 뉴스피크
▲ 조 사코 '저널리즘' 책 표지. ⓒ 뉴스피크

저널리즘 

조 사코 지음, 이승선·정원식 외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조 사코는 ‘만화 저널리즘(Comic Journalism)’이라는 새로운 언론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취재해 그린 ‘팔레스타인’으로 신문이나 TV와는 다른 생생하고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만화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받았다.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안전지대 고라즈데’는 2001년 매해 최고의 그래픽노블에 주어지는 윌 아이스너 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책’, ‘타임’의 ‘최고의 만화책’으로 선정되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그래픽노블로는 최초로, ‘진실을 말하는 기자들’에게 주는 리덴아워 상을 수상했으며, 윌 아이스너 상을 받았다.  

이 책 ‘저널리즘’은 지난 10여 년간 ‘타임’ ‘가디건’ 등에 실린 단편 만화 기사 11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진행된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 재판 과정을 그린 ‘헤이그’ 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담은 ‘코카서스’ 편, 러시아와의 분쟁 속에서 갈 곳을 잃은 체첸 난민들 이야기인 ‘코카서스’ 편 등 6개의 지역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각 편마다 조 사코의 짧은 취재기와 함께 현역 기자들인 6명의 역자 후기가 달려있어 색다른 재미와 이해를 돕는다. 가장 현실적이고 고민을 통해 만화의 무엇을 보는가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색다른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책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묻고 그 물음에 응답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존을 위협받고 인권을 유린당하면서도 어디에 호소할 길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와 그들을 그러한 조건 속에 밀어 넣거나 방치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참혹한지를 직접 확인하게 해준다.

 

이 책을 잡는 가장 큰 이유이자 물음은 결국 “코믹이 언론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게 아닐까? 

물론 될 수 있다. 

사진도 될 수 있고, 만화도 될 수 있고, 일러스트나 만평도 섬세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현할 수 있다. 조 사코의 서문은 그 부분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세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서문 ‘정책 공약 낼 사람 없나요?’ 

 

그림이 어떻게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객관적 진실이 결국 언론의 전부 아닌가? 그림이란 그 본성 자체만으로 주관적이지 않은가? ...

실제 순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사진을 그대로 따라서 그린다고 하더라도, 그림엔 여전히 작가의 해석이 들어가 있다. 

...

자기가 원하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정도로 운이 좋은 사진작가는 없다. 만화가는 자기가 ‘포착’하고자 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린다. 자기가 원하는 순간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림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매체이다. 

만화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마음속에 생각하는 근본적인 진실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사실 우리 물음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고 진정 궁금한 것은 결국 요즘 세대는 길고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스낵컬처가 유행하고, 숏폼이 대세이며, 유튜브나 웹툰이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우리가 보는 지금 세상일 듯하다.  그렇지만, 또는 그렇기에 만화나 웹툰은 언론이 될 수 있고, 웹툰작가는 저널리즘을 실현할 수 있다. 

 

‘만화가 우습게 보여?’ 오래 전 한 신문에 올라온 기사이다.  

그렇다. 우습다. 그리고 즐겁다. 그렇기에 만화를 본다. 

아무리 쥐어 터지고, 슬픔의 막장과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비난과 오해, 그리고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둔 부끄러운 기억과 치부도 만화는 가볍게 툭 내던지듯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몰입하고, 환호하고,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언제나 따뜻하고,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언론이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특히 요즘 우리의 눈과 귀를 모이는 세상은 너무 불합리하고, 억울하기만 하다. 나 자신마저 비참하게 만드는 이 현실을 히히거리며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툭 던져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는 바로 만화이고, 디지털시대에는 웹툰이 될 수 있다. 

▲'저널리즘' 헤이그 편. ⓒ 뉴스피크
▲'저널리즘' 헤이그 편. ⓒ 뉴스피크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를 본적이 있는가? 

쉴 새 없이 터지는 액션, 액션보다 더욱 재미있는 농담과 말장난들.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시간을 꽉 채운 영화로 기억된다. 단지 유일하게 지루했던 점은, 그리고 보는 이들을 분노하게 했던 것은 그렇게 많은 증거를 내보여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판결을 미루던 전범재판소 뿐이었다. 조 사코는 만화로 그 지루했던, 논리적이기에 더욱 불합리했던 그 재판이 현실이었음을, 아니 영화보다 더욱 코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 사코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진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보스니아 내전 전범 재판을 직접 관찰하고 취재한 내용인 헤이그 편을 번역했던 기자는 “그가 전달하는 내용은 하나같이 끔찍하다. 하나같이 불편한 진실들이다. 조 사코는 실망한 듯 보였다. 전범 재판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 ‘인종 학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고 후기를 정리하였다. 

 

참혹한 현실이지만, 만화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보는 이들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 사실과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제 현실은 공유된다. 바로 이게 만화의 놀라운 힘이 아닐까 싶다. 

조 사코 역시 마지막 인터뷰에서 만화저널리즘의 강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만화는 본능적인 매체다. 독자는 책을 펴는 순간 곧장 ‘그림 속에’ 있게 된다. 사진 저널리즘은 하나의 이미지로 상황을 요약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만화 저널리즘은 보다 완전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개 – 때로는 몇 백 개 –의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이러한 시각 정보는 별다른 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저널리즘' 체첸 전쟁' 편. ⓒ 뉴스피크
▲ '저널리즘' 체첸 전쟁' 편. ⓒ 뉴스피크

‘체첸 전쟁, 체첸의 여성들’ 편을 보면 조 사코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그들 모두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이 마주한 상황은 참혹한 현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이웃처럼 편하게 자리하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여인들의 참혹한 과거와 현재의 삶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 '저널리즘' 중 '체첸 전쟁' 편ⓒ 뉴스피크
▲ '저널리즘' 중 '체첸 전쟁' 편ⓒ 뉴스피크

거기에 조 사코 개인의 균형감이 더해진다. 그의 균형감은 ‘이민’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몰타의 사람들, 그곳에 온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가 마치 여행기처럼, 취재탐방기처럼 이어진다.  

▲'저널리즘' 중 '이민' 편. ⓒ 뉴스피크
▲'저널리즘' 중 '이민' 편. ⓒ 뉴스피크

극단적인 우익 정치가부터 오줌을 돌아서서 눴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몰타의 주민, 현재와 대안을 고민하는 시장과 공포스러운 소문을 전하는 버스기사, 그리고 수많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다 몰타에 온 아프리카 청년부터 분노하고 좌절하거나 아픈 이민자들까지. 

촘촘하고 빼곡하게 채워지는 이야기를 통해 어느 한 편이 아닌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게 하고,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놀라운 르포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현역 기자 역시 이렇게 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만화와 저널리즘의 완미한 결합을 통해, 만화나 저널리즘이 단독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문자 텍스트만으로는 역부족인 감정과 메시지의 전달에 그림 같은 시각 이미지가 매우 큰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 '저널리즘' 중 '이민'  편. ⓒ 뉴스피크
▲ '저널리즘' 중 '이민' 편. ⓒ 뉴스피크

그림과 텍스트가 아닌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이다. 

그럼 우리가 보는 이미지, 특히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기자가 원하는 순간과 장면을 촬영하고, 그것을 트리밍하고 또 편집함으로써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어떤 경우 순서를 바꿈으로써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생산하기도 하며, 가끔 소재를 조작하거나 연출해서 역사적인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결국 객관이란, 그리고 현실의 그대로 재현한다는 건 어찌 보면 환상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만화 저널리즘의 강점은, 그리고 조 사코 취재와 코믹 기사의 의미가 빛을 발한다. 그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상황을 그리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그려낸다. 그를 위해서는 단지 육하원칙에 의한 기사뿐만 아니라 그가 듣는 사건의 현장과 시간을 꼼꼼하게 그려내고 찾고 묘사해야 한다. 그러면서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감정과 분위기까지 창조해내야 한다. 

그게 주관적이라고? 

“문제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사전적 의미대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취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미국 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 활주로에 도착했다고 해서 곧바로 미국인으로서의 관점을 벗어 던져버리고 백지 상태가 돼 객관적인 눈으로 사물을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언론이 그들이 말한 것과 그들이 본 것‘에 대해 다루는 일인 만큼, ’나 스스로가 본 것‘에 대해서도 다뤄야 할 것이다. 기자는 동등한 시간이라는 미명하에 진실을 흐릴 것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 무슨 일인지를 파헤쳐낸 뒤 전달해야 한다.” 

조 사코의 답변은 가장 객관적인 답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 사코는 자신과 만화의 만남을 이렇게 말한다.  

 

“본질적으로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매체인 만화가 가지는 축복이라면, 내가 나 자신을 기존 언론의 틀에 가두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를 빼고는 장면을 그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는 공정함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아도 됐다. 좋든 나쁘든 만화라는 매체는 견고하고 나에게 선택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것이 만화가 주는 메시지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 사코에 대한 대부분의 소개 글은  분쟁 지역을 취재하는 코믹 저널리스트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그가 분쟁지역의 이야기를 만화로 표현했기 때문에 코믹 저널리즘의 선구자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 사코는 단지 말할 기회가 없는 이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만화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주된 관심은 발언 기회를 얻을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 있다.” _ 조 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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