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도지사 “어머니의 웃는 모습 차곡차곡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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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도지사 “어머니의 웃는 모습 차곡차곡 마음에”
  • 이민우 기자
  • 승인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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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모처럼 짬을 내 어머니와 점심 나누고, ‘어머니의 웃음’에 얽힌 애절한 사연 SNS 통해 소개
▲ 사진 : 김동연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피크
▲ 사진 : 김동연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피크

[경기도=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어머니의 웃음’에 얽힌 사연을 공개했다. ‘가슴으로 쓰는 사모곡’이라는 11년 전 심금을 울리는 글도 소개했다.

12일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어머니의 웃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보통 주말에도 일정이 많지만, 이번 주말에는 짬을 내서 모처럼 안양 평촌에 사시는 어머니와 점심을 같이했다”고 적었다.

이어 “서른셋에 혼자 되신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다 하셨다”며 “그런 어머니께서 벌써 여든여덟이 되셨다”고 어머니에 삶의 간단히 표현했다.

김동연 지사는 “아버지와는 고작 12년 밖에 못 사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저와 55년을 함께 사셨다”며 “모처럼 동생 가족들까지 다 모이니 어머니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고 즐거운 시간이었음을 알렸다.

특히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막내 여동생은 제가 11년 전에 일간지에 썼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찾아 읽어주기도 했다”며 “여전히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차곡차곡 제 마음에 쌓고 있다”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 사진 : 김동연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피크
▲ 사진 : 김동연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피크

또한 김동연 지사는 “식사 후에 카페에서 초등학교 3학년 김연수 어린이 가족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특히 연수 학생의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며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막내 여동생이 읽어줬다는 11일전 글은 <중앙일보> ‘오피니언’란에 실린 ‘가슴으로 쓰는 사모곡’인데, 링크(https://naver.me/xXDE9DeF)를 걸어놨다.

이 글은 “살면서 감성을 가장 쉽게 자극하는 단어를 하나만 고른다면 그건 ‘아버지’다”라고 시작한다.

‘서른넷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김동연 지사는 “이제는 어떤 사진 속의 아버지도 나보다는 20년 이상 젊은 아버지”라며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끔 글로 쓰면서 눈에 안개가 서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추억했다.

이어 “어머니에 대해선 조금 달랐다. 아버지와는 12년밖에 못 사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와는 44년을 함께 사신 어머니”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찌감치 직장생활과 가장 노릇을 했던 내게 아버지 역할에 대한 생각은 절절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어머니에 대해서는 덤덤했던 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몇 달 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혼자가 편하다’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시는 어머니께 반찬을 갖다 드리게 되었다. 늘 집사람과 함께 갔는데 그날따라 혼자 가게 됐다”며 평소 집사람(부인 정우영 여사)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는 어머니와 모처럼 둘이서 대화를 나눈 사연을 아래와 같이 전했다.

“무심코 물었다. 쌀은 떨어지기 전에 늘 사다 놓으시죠? 응, 항상 20㎏짜리 사다 놔. 20㎏ 사 갖고 오려면 무거울 텐데 10㎏짜리 사다 드시지요. 그것도 한참 드실 텐데. 쌀독에다 부으려면 힘드시잖아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셨다. 10㎏짜리 사다 쌀독에 부으면 반도 안 차. 쌀독이 비어 있으면 너희 어렸을 때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싫어. 그래서 항상 20㎏짜리 사다 쌀독이 차게끔 부어 놔. 그러다 쌀독 웬만큼 비기 전에 다시 사다 채워놓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나는 어머니의 대답에 그냥 무너져 내렸다. 태연하게 어머니와 더 이야기하다 나왔지만 주차장 차 안에서 한참을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며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기 힘들었던 시절,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많이 못 들이고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 그 시절의 어머니를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고 했다.

특히 김 지사는 “살며 얻은 내 작은 성취의 모든 뒤안길에는 자신의 삶이라곤 거의 없었던 어머니의 희생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며 “서른셋에 혼자 되시고는 열두 살 장남인 나부터 다섯 살 막내까지 자식 넷을 기른 어머니.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산에 올라 나물 캐서 길에서 좌판을 벌이기도 했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는 철인(鐵人) 같았다”고 기억했다.

김동연 지사는 “나와 동생들 앞에서 거의 눈물을 보이시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내가 채 스물도 되기 전 가장으로 생계를 떠맡은 뒤에는 자주 눈물을 보이시곤 했다. 하지만 눈물로도 표현하지 못하고 삭인 힘겨움은 또 얼마나 많으셨을지”라며 “지금은 곁에 계시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보다 더 그리워할 분, 보고 싶을 때면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볼 수 있게 될 분”이라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밝혔다.

이어 “며칠 뒤면 어버이날이다.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꽃 구경을 꼭 시켜드려야겠다”며 “꽃을 보면 늘 천진스럽게 웃으시던 늙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젊은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통장에 잔돈 저금하듯이 지금부터라도 그 웃는 모습을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아야겠다. 그러고는 훗날, 눈을 감아야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때 그 통장에서 하나씩 인출해 써야겠다”면서 소설 ‘레 미제라블’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맺었다.

“어머니와 대화 나누던 날, 2000쪽에 달하는 『레 미제라블』 완역판 마지막 쪽이 생각났다. 장 발장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생명처럼 아끼며 키웠던 코제트에게 생모(生母)의 이름을 알려주며 유언처럼 이야기한다. “이제 네 어머니 이름을 말해줄 때가 된 것 같구나. 이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라. 이 이름을 입에 올릴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나도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다. 어머니, 아아 나의 어머니.”

기고글 말미 글쓴이인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재정건전화를 주도했다.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행정·입법고시에 합격했다”고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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