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知] 전주로의 막걸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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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知] 전주로의 막걸리 여행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3.0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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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맛과 전라도 인심을 만끽하다!

▲ 전주에서 한 상을 받고, 맑은 술 한 잔을 따른다. ⓒ 뉴스피크

전통의 맛과 막걸리 열풍

전통의 도시 전주를 찾는 이유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한옥마을의 고즈넉함을 즐기기 위해서거나, 생생한 세계의 영화를 만나기 위해 찾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다양한 전통의 멋과 맛을 만끽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그중 젊은 여행객을 사로잡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막걸리가 아닌가 싶다. 이제 제법 유명 블로거와 신문 등을 통해 알려진 전주의 막걸리 골목은 서울의 피맛골을 제치고 도심에서 가장 유명한 막걸리 골목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시대의 추억을 간직한 서울 피맛골이 재개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번화가로 변하였지만, 전주의 막걸리 골목은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더니 이제는 도시 곳곳으로 점차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되살아난 전통과 문화라고 할만하다.

사실 막걸리의 열풍은 조금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한국과 주변 국가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듯이, 유행에는 그만한 이유와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전통술박물관. 전시 관람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뉴스피크

먼저 2000년대에 들어 풀리기 시작한 막걸리에 대한 규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본 강점기 때 시행된 술에 관한 규제로 움츠러들었던 전통적인 맛과 과학이 규제가 풀리면서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한 셈이다. 먼저 판매 구역 제한 규정이 사라졌고, 종전에 6% 이상으로 한정 지었던 알코올 도수를 3% 이상도 가능하도록 완화했으며, 과실 원액도 20%까지 넣을 수 있도록 해 다양한 맛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막 거른 거친 술 막걸리이지만 손과 지역의 맛이 더해지니 나름 사람들에게 구수한 정취와 즐거움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러니 찾는 손과 발이 많아지고, 소위 막걸리의 부활, 막걸리의 열풍이라 불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투표 때만 중요하게 다가오는 정치와 행정이 우리 맛과 문화에 참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한옥마을에 있는 양조장. 술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 뉴스피크

어쨌든 바람이 부니, 동네에 머물던 양조장들은 이제 전국을 무대로 자신의 술을 뽐내기 시작했고, 찾는 이들이 많아지니 지역의 도시들도 자신만의 막걸리 문화로 전국, 아니 바다 건너의 사람들까지 왁자지껄하고, 허름한 동네 술판으로 끌어모으게 된 것이다. 이 술판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그 옛날처럼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고 그것을 가족,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막걸리 열풍은 우리의 문화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채로운 문화의 막걸리

전주에 왔음을 알리는 인사차 한옥마을 주변에서 점심과 한 잔의 차로 시간을 보내고, 조금 이른 오후에 막걸리 골목으로 향한다. 그런데 참 여행객을 곤란하게 하는 게 전주시에서 제공하는 여행지도에 나와 있는 막걸리 골목이 다섯 군데나 되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이 다 유혹 어린 특징이 있으니, 여기서 생활하면서 두루두루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에서 참으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막걸리 골목에 들어서면 줄지은 간판과 마음을 얼큰하게 만드는 그림이 반긴다. ⓒ 뉴스피크

그러다 그래도 처음이니 원조 격인 곳을 찾아야지 하고 삼천동 막걸리 골목으로 택시를 잡고 달린다. 도심과 떨어져 있는, 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막걸리 골목을 찾아다니기는 외지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고민과 불편함을 친절한 택시가 해결해준다.

택시 기사는 골목 안으로 안내를 해주지 못함을 몇 번씩 사과하더니, 막걸리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 입구에 내려주면서 그곳의 지형까지 친절히 설명해주고 떠난다. 들은 바로는 이곳에는 삼천2동 우체국 골목에 20여 곳, 큰길 건너편에 10여 곳이 모여 있다고 한다.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촌스러운 간판들에 기분 좋게 골목을 들어섰으나 좋은 기분이 오래가지 못한다. 마침 쉬는 주말이다.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쌀쌀하게 내려진 셔터만이 반긴다. 

▲ 골목골목으로 이어지는 삼천동 막걸릿집의 간판들. ⓒ 뉴스피크

허탈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리 이른 오후라도 막걸리 골목답지 않게 한산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랜 되었다는 ‘용진집’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문득 맞은 편 막걸리 집에 한 떼의 사람들이 술잔을 높이 드는 게 보인다. 술집의 사람들만큼 좋은 홍보수단이 없음을 느끼면서 얼른 그 집으로 들어선다.

아마 등산을 하고 왔나 보다. 등산복을 걸친 한 무리의 중년들이 탁자 4개를 차지하고 따뜻한 김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그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역시 듣던 대로 안주 주문은 없고, 술만 맑은 술, 탁한 술만 고를 뿐이다. 그래도 해가 환한 시간이니 숙취가 적다는 맑은 술 한 주전자를 시키고 기다린다. 

▲ 전주 막걸리 골목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 중 하나인 용진집. 주말 저녁에는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한다. ⓒ 뉴스피크

안주들이 지체 없이 밀려와 탁자를 채운다. 좋아하는 꼬막부터 눈에 들어오고, 두부김치와 소라, 고등어조림, 새우, 부침개 등이 보인다. 그 옆으로 오랜만에 보는 번데기와 문어가 있고, 호박과 굴 그리고 옥수수와 콩 등이 가장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낡고 친근한 주전자가 딱 자리 잡으니, 12,000~13,000원 한 상으로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럽다.

이곳의 전주막걸리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한 상 차림이다. 손님이 자리를 잡으면 막걸리 세 병들이 한 주전자와 10여 가지의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고, 술을 다 비우고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또 다른 음식이 한 상 차려진다. 보통 네 주전자쯤 시킬 무렵이면 삼합이나 게장백반 같은 제법 유명한 요리와 음식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양과 질에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은 들 수밖에 없다. 전라도와 전주의 음식 인심이 가득 담긴 한 상이 차려지기 때문이다. 

▲ 막걸릿집에 자리잡고 앉으면 바로 한 상이자 첫 상을 내온다. ⓒ 뉴스피크

이곳에 삼천동에 막걸릿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IMF 시절인 1997년 즈음이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포장마차가 생겨났는데, 그중 ‘만덕 실내포장마차’라는 곳에서 손님의 권유로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던 게 그 출발이라고 한다. 아마 그곳에서 막걸리 장사가 제법 잘되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만덕 실내포장마차’는 없어졌지만, 그때부터 하나둘 막걸릿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0년 전만 해도 서너 곳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 전주시가 시행한 ‘막걸리 프로젝트’로 인해 그 수가 30여 곳으로 늘었다.

그렇게 가게가 늘어나 골목이 되고, 다시 이 동네 저 동네 골목에 단지가 형성되니 자연히 경쟁이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게들은 자신만의 특색과 장점을 만드는 것으로 그것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것 없이 계절 따라 제철 안주를 내놓는 용진집, 생선회 요리가 푸짐한 수산수막걸리, 중국요리와 막걸리를 함께 차려주는 한옥마을막걸리, 생선요리의 천국 일오삼막걸리, 그리고 술상 위에서 족발 등을 바로 잘라주는 옛골막걸리 등 다채롭고도 풍요로운 막걸리 문화가 여기 전주라는 도시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기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막걸릿집의 벽에는 다녀간 이들의 소감이 다채롭게 새겨져 있다. ⓒ 뉴스피크

전주라는 도시는 이제 한옥과 소리 등과 같은 전통이나 영화제만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지난 세월 동안 문화에 투자를 해왔던 것이 삶의 풍경에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던 풍경들도 여기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고 개성이 넘치는 것이 되어가는 듯하다. 맑은 술 한 주전자에 알딸딸해지면서 전주라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미래를 흐뭇하게 기대되기 시작한다. 

▲ 머리 아픔이 덜하다는 맑은 막걸리. 하지만 술은 술이다. ⓒ 뉴스피크

Tip. 막걸리 만들기

1. 쌀을 씻어 3~4시간가량 불린 뒤 소쿠리에 담아 1시간가량 물기를 뺀다.
2. 찜통이나 시루에 광목을 깔고 40~60분가량 찐 후 불을 끄고 20분 정도 뜸을 들인다.
3. 고두밥이 식으면 함지에 담고 누룩과 물을 섞어가며 치대어 술밥을 만든다.
4. 잘 비벼진 술밥을 소독된 항아리에 넣고 천이나 한지로 덮은 뒤 끈으로 묶어둔다.
5. 23~28℃의 온도를 유지하며 발효가 잘되도록 하루에 한 번씩 저어준다.
6. 이 상태로 5~7일간 발효시키는데, 더 거품이 올라오지 않고, 술독 안에서 성냥불을 켜 불이 꺼지지 않으면 발효가 완료된 것이다.
7. 술이 익으면 위쪽의 맑은 술을 떠내고 나머지는 자루에 담아 걸러 병에 담는다.
8. 술병을 일주일 정도 냉장고나 시원한 곳에 두면 맛이 순하고 깊어져 마시기에 좋다. 

▲ 막걸리에 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얼큰하니, 들어오는 햇살도 따뜻하다. ⓒ 뉴스피크

전주의 막걸리 골목 (전주시청 홈페이지)

<평화동 막걸리>

평화동 꽃밭정이 네거리 한편과 코오롱 아파트 뒤쪽에서 전주막걸리 술 문화를 맛볼 수 있다. 원조격인 삼천동과 인접해 있어, 두 곳의 분위기를 비교해가며 마시기에 발품이 아깝지 않다.
자동차로 5∼10분 거리에 모악산이 있어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한잔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손님으로 북적대더라도 넉넉한 인심이 있어 얼굴 붉힐 일 없으니, 거룩한 이름만큼 평화로움이야 이미 얼큰해진 마음속에 있다 할 것이다.

<삼천동 막걸리> 

전주 시내 대표적 막걸리타운이 형성된 곳이다. 전주식 안주, 즉 맛깔스럽고 푸짐한 코스 안주가 있게 한 원조 격 상차림이 특색이다. 가장 많은 막걸릿 집이 모여있어 맛집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어느집 문을 열고 들어가도 만족할 수 있다.
우체국골목 양옆 길가에 죽 늘어선 막걸릿집의 불빛이 장관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심 공원 건너편에 모여 앉은 맛집들까지 섭렵해야 가히 삼천동 막걸리를 즐기는 풍류 술꾼의 반열에 오른다 할 것이다.

<서신동 막걸리> 

삼계탕도 먹고 싶고 족발도 먹고 싶다면 서신동 막걸리타운을 찾아보면 어떨까.
서신동의 막걸리 집들은 기본안주로 삼계탕이 나오는 곳이 많다. 기존 막걸리전문점에서 만날 수 있는 안주와 서신동 막걸리 골목 안주와 비교하면서 맛보는 것도 또한 다른 즐거움이다. 비교적 젊은 단골들이 모여들어 전주식 퓨전 안주를 기대할 만한 곳이다.

<효자동 막걸리> 

효자1동 안쪽으로 막걸릿집이 모여있다.
거나해질 만큼 추가를 주문하면 안도현 시인이 추천하는 홍어 삼합을 곁들인 홍탁을 맛볼 수 있는 집도 이곳에 있다. 시인들의 예찬이 아니어도 이미 막걸리는 사람들을 이어 주는 음식이요, 여기에 푸짐한 정과 안주가 있으니 효자동은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을 나누는 안식처임이 분명해진 이유이다.

<경원동 막걸리> 

옛날식 정겨운 막걸릿집이 그립다면, 경원동 막걸리타운을 찾자, 경원동 막걸리타운은 한옥마을과 근접해 있다. 먼저 한옥마을을 둘러본 후 막걸릿집을 찾아 한잔 걸친다면 전주의 멋과 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아름답다 표현했던 작가의 고향 '화원동'이 이름을 갈아입은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콩나물국밥집이 단지를 이루고 헌책방 골목까지 돌아볼 수 있는 추억의 길목이다.

<인후/우이동 막걸리>    

▲ 한옥마을을 알리는 비석이 눈과 발이 별로 닿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다. ⓒ 뉴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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