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여행의 오랜 만남에 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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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여행의 오랜 만남에 관한 추억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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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여행

 사진가 14인의 매혹의 세계 여행
사진가의 여행
정진국
PHOTONET 발행

▲ 나다라의 모습이 그려진 '사진가의 여행' 책 표지. 책의 깊은 시선과 조밀한 이야기에 비해 표지는 조금 아쉽다. ⓒ 뉴스피크

사진과 여행은 세상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함께 가는 부부와 같은 단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기술이 막 생활에 스며들 때, 여행은 도전이었고, 사진은 놀라움이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누리는 것은 사람에게 말 그대로 ‘로망’이었다.
너무 편리하고, 넘치는 세상에서 사실 가끔 그런 긴장과 감동이 무척 그립기도 하다. 예전의 두근거림과 알 수 없음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냄으로써 무미건조한 일상의 활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로망 이전의 도전이었던 시기의 마지막 언저리를, 넘쳐나는 이미지에 갈 곳 잃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자 하던 예술이 고민되던 시기를 그림으로써 그런 그리움으로 가는 좋은 안내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책의 목차에 새겨진 화려한 작가의 빼곡한 여행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진국'이라는 이름의 저자이다.
지금이야 디지털이 대세다보니 누구나 편하고 쉽게 카메라를 접하고 만지며, 필요한 정보나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찾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 먼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재료를 찾게 되고, 그게 조금 익숙해지면 사진의 역사와 의미 등에 대한 나름의 지식을 힘들게 쌓아나가는 과정을 겪었었다.
그때 자주 접하던 이름이 '정진국'이라는 이름이다. 단지 사진을 기술이나 소모품이 아니라 시각예술이자 역사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과 저술을 적지 않게 풀어놓은 이가 바로 그이다.
이 책에서도 사진과 역사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장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마치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듯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 그리고 낯선 세계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 그 시대가 안겨준 내적 갈등과 개인적 고민까지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만만치 않은 지적 정보는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문체와 어우러지면서 쉽게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 사진과 행간을 꼼꼼히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사진 책이라는 게, 여행 책이라는 게 단지 쓱 보고 지나가는 가벼운 것만이 아님을, 사진이 가지는 기록이라는 것의 가치를, 그리고 다른 문화와 여행하는 이들이 가지는 깊고 맑은 시선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사진 거장들,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들의 귀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집트와 중국, 사하라, 페르시아, 지중해, 인도차이나와 한반도의 각기 다른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기록했나를 보면 사진과 여행이 가지는 매력을 좀 더 무겁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 듯하다. 그건 또한 저자가 단지 그들의 여정을 스케치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시선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끝없이 묻기 때문이다.

 

▲ 보그지의 모델이었던 '리'의 사진이 실린 본문의 페이지. 작지 않은 양이지만 재미있기에 빨리 넘겨지는 책이며, 또 스쳐가는 일정에 비해 그 의미의 되새김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 뉴스피크

책머리에 저자는 말한다.
“사진가는 아마나 가기 어려운 곳을 찾아다녔다. 거의 갈 수 없는 곳까지 탐했다. 누구보다 한 발 먼저 찾아가 그 이미지를 전하려 했다.
… 불을 켜고 볼만한 이미지를 찾아다녔다. … 눈이 맑고 깊어진다.”
“사진은 말과 글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들춰낸다.”
그게 좋고, 또 아쉽다.
그 들춰냄이 새로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가리고 싶은 것이나 간직하고 싶은 꿈을 걷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차피 보는 이의 몫이다.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있다. … 눈이 있어야만 나타나는 길이다. 그런 길을 찾아다니며 사진가들은 사진으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거나 들려줄 수 없어 아쉬워했다.”
과연 이 편리하고도 가까운 세상에서 우리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보는 게 다르고, 기록하는 게 다르다.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질문이 멋들어지고, 가볍게 들어온다.

질문은 계속 된다.
맨 처음은 나온 것은 막심의 이집트 여행이다.
프랑스 혁명의 진압군이었던, 낭만주의를 비판했던 이의 기록여행이었다. 그는 낭만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비웃었고, 객관적인 기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려 하였고, 그래서 선택한 게 당시로서는 희귀하고 불편했던 카메라와 사진이었다. 어쩌면 그는 사진의 목적과 장점을 잘 파악한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과 여행에 찬사를 보내면서 '거리'를 잊지 않는다.
그들 낭만주의자들이 “순진하게 개꿈이나” 꾸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럽인은 ‘이성의 도시’에 산다는 기분으로 다른 세계에 가서 발굴하고 탐사하는 것을 인간 탐구로 여겨 뿌듯해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기록 뒤편에 있는 주관적인 시선을 짚어낸다.
당시 그들 서양은, “다른 문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했”지만, “그런데 사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날까? 문명은 기껏해야 물건이거나 아니면 조금 세련된 물건이 많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세련된 물건이 많아졌다고 정신도 그만큼 세련될까?”라고 묻는다.

“그렇게 막심은 이미지를 통해 실물을 보았다.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눈이고 어디까지가 주관적인 눈일까? 모호하다. 막심은 낭만주의자의 주관적인 해석 대신 정학한 사진으로 겨루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실물이 아니라 이미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 사진은 여전히 원판 위에 작게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이미지는 실상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그 어두운 그림자였다.”  

 

▲ 최초의 항공사진을 만들었던 나다르의 기구. 매체가 놀라운 게 아니라 사람의 도전이 놀라운 법이다. ⓒ 뉴스피크

 

다재다능한 사진가였던 펠릭스 투르나숑 나다르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기구를 타고 항공사진을 찍었으며, 아무도 내려가지 않던 지하 공동묘지로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와 접근을 사진에 가져온 사람인 셈이다.
그렇지만 초상사진가로 잘 나가던 "펠릭스는 중요한 원칙 하나만은 지키려고 했다. 펠릭스는 극단적인 보수파와 왕당파 손님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원칙 없이 초상사진으로 명성과 부를 얻으려는 동생과의 즐겁지 않은 분쟁도 겪는다. 그는 동생의 얄팍한 속셈을 괘씸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동생뿐이랴.
“요즘도 거물급 인사나 명망가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거물 행세하는 사진가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대중의 ‘스타’에 접근해 초상을 찍은 것으로 스타를 멋대로 주무르며 또 다른 왕별처럼 우쭐해하는 사진가도 있다.”
지금 누군가가 떠올린다면 이 책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청나라의 황혼(1870-1871)을 찍은 스코틀랜드 사진가 존 톰슨이다.
그는 중국은 서양의 사진가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촬영하였다. 그건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피사체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따뜻한 사진이 나오기 힘들 것이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더라도 겉치레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찍은 중국의 탑은 그래서 아름답다.
“현대 도시의 방송탑이나 괴상한 전망대와 비교가 안 된다. 그냥 아름답기보다 고고하다.”

그가 청나라를 돌아다니며 기록하던 시절은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의 기억이 아직 뚜렷하던 시기였다.
“존은... 중국인에 대한 태도도 남달랐다. 존은 주민을 경계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거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들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그들과 사귀려 하고 그들의 문화를 감탄하며 배웠다. 1950년대에 스위스 사진가 베르너 비숍이 그 대륙의 매력을 작은 카메라에 담아 나오기 전까지, 존 톰슨의 시선 같은 것을 보여준 전례는 없다. 그때가지 중국의 이미지는 전쟁으로 얼룩지고 엽기적 퇴폐로 거덜 나고, 낡고 궁색한 문명, 빈곤과 핍박에 찌든 눈으로 이방인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사람뿐이었다.”
요즘 우리는 놀랍도록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그 기록을 셀 수 없이 많은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의 시선은 이 글과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미지가 만드는 편견은 놀라운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의 국제적 성공은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게 우리로서도 그게 우리 모습인지 알 수 없는 퇴폐적이고, 가학적이고, 너무도 전통적인 것들을 서양 사람들은 마치 한국적인 것으로 감탄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편견에 우리가 편승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기도 하다.

존은 베이징은 일반 주택의 안마당과 거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기록하고 있다.
“양 씨 집안의 정경은 품위 있고 태평하다. 그러나 골목은! 골목마다 삶의 활력과 마력마저 넘친다.”
그리고 존은 “영불 연합군이 남긴 만행의 자취를 눈으로 확인했다.”
베이징의 궁전과 정원은 그들의 기록으로 “약탈되고 파괴되지 않은 방이 없었다. 통제 불능 상태에서, 장교들은 수레 두 세 개씩에 노획물을 싣고서 팔러 이리저리 흩어졌다.”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 군인이 할 일이라 사족을 붙였다.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박물관이 훌륭한 것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존은 가는 곳마다 허물어진 석탑과 담장을 보았다. 아편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흉측하게 불거져 있었다. 그렇지만 존은 ‘보통 사람들의 몸가짐은 가난해도 단정하다’며 놀랐다.”
“‘19세기 중국에 품고 있던 서구인의 우월감이나 편견에서 벗어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평가를 받은 그의 사진에 딴소리할 여지는 없다.”

 

▲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폴이 여행길에 다시 찍은 한국의 어린이. ⓒ 뉴스피크

책에 나온 작가 중 가장 인상적이고, 또 이색적인 이가 <보그>지의 모델이기도 했다가, 사진가로 활동했던 '리 밀러'이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재능이 넘쳤지만, 남편과 집에 정착하지 못했다. 항상 파티와 즐거운 생활을 추구했으며, 결국 사랑의 도피행각까지 벌인다. 그런 철없는 그녀는 이혼 후 2차 세계대전을 종군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성숙해진다.
“리는 그토록 힘겨운 행군의 막바지에 진이 빠질 만도 했을 텐데,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부쩍 성숙했다. 성모의 눈길처럼 온화하게 폐허와 인간을 주시했다. 재미와 환상을 쫓아, 바람난 유부녀로서 치맛자락과 스카프를 펄럭이며 들떠 있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난의 행군에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포착했다. 강렬한 윤곽만 두드러지고 세부는 명암대비 속에 파묻혀 생략된다. 하지만 역광이 그 모든 것을 밝힌다. 전쟁에서 인간의 끔찍한 극단을 체험하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눈길은 이렇게 달라졌다.” 

 

▲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리'가 히틀러의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만큼 논란이 되었던 사진이라고 한다. ⓒ 뉴스피크

 

마지막으로 마르세유에서 서울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폴 뭇세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프랑스 문인, 사진가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등 주요 격전지에서 활동했고, 한국전쟁에 종군했다. 그가 일했던 그곳으로 다시 여행을 다니면서 기록을 한 것이다.
“지중해를 건너가는 것은 서곡일 뿐. 여행, 진짜 여행은 유럽의 바다를 벗어나야 시작된다. 누구든 어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는 지중해 아닌가.”
지중해뿐이겠나. 바다를 접한 모든 땅의 사람들은 그 바다를 건너, 다른 사람과 땅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그가 수에즈를 지나 홍해를 건너 스리랑카를 거쳐 베트남에 다다른다.
“‘베트남 사람은 해묵은 속담을 믿고, 관혼상제를 일생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삼은 채,’ 태평하게 살았다. 폴은 이 사람들 때문에 놀랐다. 그렇게 못된 짓을 많이 한 백인에게 앙심을 품거나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폴은 ‘그들의 눈길에서 적대적인 눈길을 맞추진 적이 거의 없다.’
폴이 이 사람들을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그 해 11월,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미국의 개입으로 20년 동안 가장 비열한 국제전이자 또 하나의 동족상잔 전쟁이 발발했다.”
기록은 조용한 항변이기도 하다. 

 

▲ 나다르는 초상사진으로 파리의 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고 실천했다는 것에서 더욱 오래된 명성을 얻은 듯하다. 나다르의 초상사진. ⓒ 뉴스피크

 

적지 않은 사진가들의 이야기와 사진들.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책이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다보니 그 뒤가 궁금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과 그들의 작업과 고민을 보여주기에는 사진이 양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접을 수 없다.

  

<목차> 


책머리에

1. 이집트 신전에서 베이징 궁전까지
나일강 상류에서, 1849 _ 막심 뒤 캉
프로방스의 바람을 가르며, 1852 _ 샤를 네그르
도망자의 길 오베르뉴, 1854 _ 에두아르 발뒤스
창공으로 올라간 ‘거인’, 1860 _ 펠릭스 투르나숑 나다르
청나라의 황혼, 1870-1871 _ 존 톰슨

2. 사하라 사막과 페르시아 고원
프랑스의 일하는 사람들, 1931 _ 프랑수아 콜라르
행복의 골짜기 이란 고원, 1933-1934 _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발칸 반도, 1938 _ 리 밀러
사하라 나무에서 물을 긷다, 1941 _ 조지 로저

3. 지중해 연안
신혼과 순례의 길목에서, 1951 _ 폴 스트랜드
가톨릭의 빛과 그림자, 1954 _ 장 디외제드
느린 발걸음으로 지중해안을, 1956 _ 앙리에트 그랭다

4. 인도차이나와 한반도
마르세유에서 서울까지, 1955 _ 폴 뭇세
베트남 천사의 언덕을 넘어, 1992 _ 레몽 드파르동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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