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교육 연극 ‘귀를 기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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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교육 연극 ‘귀를 기울이며’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2.0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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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과 극단 마실의 학교 폭력 교육 연극

 

▲ 친구의 슬픔에 귀를 기울여 봐! ⓒ 뉴스피크

사소한 이야기에 찾은 특별함

5월 16일, 종암동 오래된 골목길 끝에 자리한 성북창작예술센터의 4층 나눔 홀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이 후원하고, 극단 마실이 준비한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교육연극 시연회가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5시가 가까워지자 하나둘씩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서는데, 대부분이 교복차림이다. 행사를 총괄기획했던 박현숙 장학사는 입구에서 연극이 교육에 상당히 효과적이었음을, 더불어 가해자와 피해자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기획을 하게 되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을 하는데, 우리가, 우리의 자녀가, 또는 연극을 보는 이들이 피해자임을 미리 가정을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와 주변에 있는 이들이 진정 피해자들이라 진정 말할 수 있을까? 연극의 말미에 가해자로 나온 한 친구가 외치지 않았던가? 니들은 뭐 안그랬어?

▲ 센터장과 민영이 상담을 시작하고,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 뉴스피크
진정 학교 폭력이 어떤 특별한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어쩌면 이번 연극에서 진정 찾아야 할 것을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옛 마당극 자리처럼 편하게 자기 자리들을 찾아 앉았고, 이번 연극의 연출자이기도 한 건강한 학교 만들기 엄문영 지원센터장이 나와서 차분히 연극이자 학교폭력의 상담의 시작을 알린다.

이 연극이 단지 연극이 아님이 그의 진행의 특별함에서도 느껴진다. 그는 학생과 학생이 아닌 이들에게 학생시절의 기억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한다.

답답, 공부, 지겨움, 선배, 입시, 심심, 선생님, 매점 등의 대답 등이 돌아온다. 몇 가지 독특한 대답도 돌아온다. 현직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라 답하고, 전직 선생님은 아이들이 했던 선생님의 뒷 담화라 답한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긍정한다. 그리고 남학생들은 공부, 점심, 여고라고 답한다.

그리고 센터장은 그 많은 대답 중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집어낸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오래전에 학교 생활을 했던 이들은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기 보다는 ‘문제아’라는 단어가 더욱 익숙했다고 한다. 폭력이 없었던 적은 없었겠지만, 왠지 요즘이 조금 더 일상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던 연극의 세계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앉아있던 민경이 일어서서 나와 자신의 친구였던 현주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잔혹한 폭력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 가벼운 장난은 친구에게 가혹한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윤재의 질투는 현주에게 비참한 현실이 된다. ⓒ 뉴스피크

폭력은 사소하게 스며 든다

이야기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조금 덜렁대는 아이가 있고,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에 가고 싶은 아이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있고, 가정이 조금 불행한 아이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평범하게 생활하는 학급이었는데, 조그만 계기가 생겼다.

미술수행평가였다.
그때까지 연극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도 평화로웠고, 장난스러웠다. 그리고 자주 듣는 표현과 모습에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에서 조금씩 생활과 행동에 어긋남이 생기기 시작하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자 보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도 변하기 시작했다. 배우들과 함께 보는 아이들도 덩달아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누군가 말했던 게 생각난다.

▲ 가장 무서운 것은 누구도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고, 누구도 내 슬픔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현주는 혼자인 게 가장 아프고 괴롭다. ⓒ 뉴스피크
사실 연극에서 보면 시작은 그냥 부러움이었고, 질투였으며 스트레스였다. 그게 어느 순간 폭발했고,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는 외면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있던 일본 만화 중에 ‘기생수’라는 게 있었다. 거기에서는 끊임없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물이라는 존재와의 차이가 뭐냐고 묻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자신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따지기 전에 친구를 도울 수 있느냐 라는 물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기준이라면 인간이라는 존재로 포함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그것도 중학생이라는, 한참 성장하고 있는, 깨지기 쉬운,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 중에서?

결국 사소하게 비롯된 폭력은 스며 들고, 부풀어 오르고, 외면당하면서 다시 커지고, 그러다가 다시 거대한 파멸을 불러오고, 다시 공고한 자기 변명을 불러오게 된다. 그때부터 한없이 불편해지고,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데, 연극은 가장 비극적이고 통속적인 결말과 함께 가장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다.

반장이자, 사실상 극을 주도했던 정윤재는 “아, 이러다 대학 못 가는 게 아닌가?”하고 걱정을 하면서 극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또 다른 극은 판을 달리 하면서 새롭게 시작은 한다. 

▲ 민경이 어떻하지 고민하는 동안, 현주는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2학년이 알고 있는 선택은 의외로 많지가 않다. ⓒ 뉴스피크

1차 합격은 하지만, 면접에서 안 될걸요!

이제 무대는 6개월 후로 넘어가고 주인공은 교실에서 연극을 관람한 학생과 시민들이 되었다. 다시 앞으로 나온 엄 센터장은 관객에서 주인공이 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6개월 후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냐고?

여러가지 대답이 나온다.
주저하면서 나온 대답은 하나둘씩 더해지면서 탄력이 붙더니 의외로 많아지기 시작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현주는 살아나더라도 우울증으로 결코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반성하지 않았던 윤재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앞으로도 똑같이 살 것 같다.

아니다. 윤재도 결국 죄책감을 느끼고 봉사활동을 아주 많이 할 것 같다.
전화를 끊어버린 민경은 죄책감으로 같이 자살하지 않을까?

▲ 6개월 뒤의 연극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따온 에피소드로 탄생한 인물로 구성된 연극이기에 그들의 미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뉴스피크
그런데, 이런 비극적이고 가학적인 모습이 아이들은 불편하지 않았을까?
중대부속고 2학년생인 이재창 군은 의외로 괜찮았다고 말한다.
사실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보니 연극과 같은 상황이나 이야기는 없지만, 중학교 때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고, 그래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한다.

그럼 중학교 때는 저런 연극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많았다고?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뉴스에서나 들었지만, 그래도 가능은 하겠구나 생각은 들었다.
만약 친구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지금이라면 신고를 했겠지만, 중학교 2학년 때라면 나도 민경이처럼 도망가고 모른 척하지 않았을까요?
참 현실적이다.
그렇게 재창 군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제 학생과 배우 그리고 관람객들은 무리를 형성해서 다양한 주인공들의 뒷이야기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토론하고 있었다.

역시 가장 인기는 악역은 맡은 윤재였다.
돈으로 무마하면서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반성하는 척 하면서 그렇게 포장하면서 넘어가지 않을까?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결말은, 전학가서 잘 살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지원해서 1차는 합격하겠지만, 면접 때가서 전학간 이유가 밝혀져서 결국 불합격할 것이다 라는 5년 뒤의 이야기이다. 놀랍고도 순수한 상상력이다.
역시 미래는 청소년들의 것이다.

▲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아니야, 이렇게 되었을거야! 그들의 상상력과 순수한 열정에 희망을 본다. ⓒ 뉴스피크
연극은 계속된다. 교육은 결국 한판의 연극이고, 현실 또한 연극의 무대인 셈이다. 10년 전 모스키토라는 연극이 생각난다.

단지 폭력의 예방 뿐만이 아니라, 정치의 미래 역시 청소년의 힘, 한 판의 연극에 기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밤이다.

좋은 연극에 기울인 배우의 노력과 연극을 빛낸 청소년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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