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도’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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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도’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 승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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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뉴스피크] 지난 7월 14-15일,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제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라는 슬로건 아래, 비가 오는 가운데도 주최측 추산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공식적으로 참여하여 홍보부스를 운영했습니다. 2000년 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된 이래 국가기관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광화문에 있는 주한미대사관에도 이번 행사를 지지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렸습니다. 미대사관은 자국의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합법화한 2015년부터 한국의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칼럼을 고민했던 계기는, 엊그제 ‘퀴어문화축제’가 아니라 7월 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석방문화제’ 때문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에 양심수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부끄러울뿐더러, 무엇보다 우선하여 해결해야 할 현안이라는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번 문화제에서는 다양한 영역의 양심수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한상균 위원장과 노동자 양심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과 내란조작사건 구속자’, ‘동성애자 양심수1호 A대위’, ‘헌법보다 힘센 법 국가보안법’ 등이 그 세부 주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소수자의 인권’을 얘기하는 셋째 마당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한 시민들 내에서조차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을 표현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야 아직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양심수 석방’이라는 주제에 동의하여 모였던 사람들 내에서도 ‘동성애 혐오’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불쾌한 것’을 어떻게 하느냐구요?

그 ‘불편함’과 ‘불쾌함’이 바로 ‘혐오’입니다.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불편해 하는 자들’이 민주노총을 ‘빨갱이’로 몰고 한상균 위원장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진보정치를 불쾌해 하는 독재세력들’이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몰고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여 결국 정당해산까지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끔찍한 폭력’을 낳은 ‘지독한 혐오’입니다.

저 또한 ‘강제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대변인’으로서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바라거나 요구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의 진보정치’를 동의하거나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진보정치를 꿈꾼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탄압받고 차별받는 현실, 바로 ‘이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 관련한 기사들에 여러 의견들이 잇따르는데, 대부분 앞머리에는 ‘동성애는 이해할 수 없으나’라는 말들이 붙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소수자들은 ‘동성애를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소수자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받고 탄압받고 있는 이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에 공감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살아라’는 댓글도 많이 달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성소수자들의 소박한 바램’이라는 것을 알고는 계십니까?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어도 끔찍하게 ‘차별하고 탄압하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없어 거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권’과 ‘연대’의 출발은 사실 간단합니다.

‘내가 아픈 만큼 남도 아프다는 것’, ‘내가 절박한 만큼 남도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입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라는 이번 공식 슬로건에 대해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퀴어문화축제가 처음 시작된 2000년부터 열여덟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성소수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되돌아오는 말은 ‘나중에’라는 말이었습니다. 정치적 전략과 비뚤어진 당위가 내미는 순서대기표를 쥔 채 인권이 호명되기만을 기약없이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 ‘성소수자’내에는 ‘동성애자’만 있는 것은 아니나, 편의상 혼용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글 : 홍성규 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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