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시집전』과 담헌 홍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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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의 『시집전』과 담헌 홍대용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5.03.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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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12)

[뉴스피크] 헌책방에 가면 다양한 방식의 책값 계산법이 있다. 책값이 스티커로 이곳저곳에 붙어 있거나, 연필이나 볼펜으로 매겨져 있는 가격표가 있는가 하면, 어떤 책에는 아예 표시가 없는 경우도 종종 찾아진다. 그걸 합산하는 방식이다. 내게 꼭 필요한 책일 경우 그 값이 얼마든 구입을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최종 낙점이 필요할 경우 그 책값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몇 권의 책을 사면서 가격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책 한 권을 계산대에 올려놨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서 가끔 살펴보면 도움이 될 듯해서 고른 것이다. 여러 책이 함께 계산이 되어서 그 책의 정확한 값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저렴하게 치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그렇게 수중에 들어온 책이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 1130∼1200), 즉 주자가 집주(集註)한 『시집전(詩集傳)』이다.

▲ 중화서국에서 발행(1987년)한 시집전의 표지.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평소 주희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였다. 사실 주희하면 주자(朱子)라 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 중 하나이다. 특히, 고려 후기에 등장하는 성리학, 곧 주자학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그 영향이 조선의 건국과 사림(士林)으로 이어져 소중화(小中華)의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희가 미친 영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 책을 구입한 후 잠깐 가까이 하였다. 책의 목차와 서문을 대충 살펴보고, 그 내용도 뒤적여보면서, 이에 대한 다른 자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실제 이 책은 『시경』에 보이는 내용을 주희가 나름대로 주석을 한 책이라 전문지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용은 좋아 보였지만, 이를 가까이 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한쪽으로 밀친 후 그럭저럭 잊혀져가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도서관에서 최근에 간행된 『홍대용과 1766년』 -조선 지성계를 흔든 연행록을 읽다-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나서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서 소개하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담헌 홍대용(1731∼1783)은 북학파의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등과 친분이 있었다. 그가 연행사(燕行使) 서장관의 수행군관으로 60여 일 동안 북경에 머물 때 중국학자들과 교분을 쌓고, 서양 선교사들과 접속한 것은 이후 조선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북경에서 호형호제하던 엄성·반정균·육비 등과는 귀국 후에도 편지를 통한 교유가 계속되었고, 그러한 내용이 「항전척독(抗傳尺牘)」에 남아 있다. 담헌과 엄성, 그리고 육비의 대화 내용 가운데 엄성이 관리시험에서 경서(經書)는 대부분 주자의 해석을 채택하지만, 『시경』만은 그렇지 않다는 말에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조선에서 아직도 유일한 정통 주석으로 채택하고 있는 『시집전』의 주자 주해(註解)에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며, 엄성은 주자가 시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대표적인 경우로 지적하였기 때문이었다.

홍대용의 『담헌서』에 수록되어 있는 「항전척독」에 이들의 대화 내용이 보이는데, 잠깐만 귀 기울여서 들어보자.

   내가 “『역(易)을 읽는데 무슨 주(註)를 주로 하는가?”
   역암이 “과장(科場)에서는 정자의 주를 주로 따른다.” 또 “경서(經書)는 주자를 좇지 않는 것이 없지만, 다만 『시경』 한 책에 있어서는 고관(考官)의 명제와 발책에 많이 미묘한 말 이 있다. 또 주자가 소서(小序)를 반대하는데 지금 소서를 보면 매우 좇을 만하다. 그러므로 학자가 능히 주자를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담헌이며, 역암은 엄성의 자이다. 이 짧은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당시 청나라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경』의 해석에서 조선은 아직도 주자의 『시집전』의 주석만을 믿었고, 그 외 다른 해석의 가능성 여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이후 대화 내용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경우에도 명대에는 역시 『시집전』만을 믿었지만, 청대에 들어서서는 주자의 『시집전』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주자와 달리 『시경』의 소서(小序)를 믿어야 한다는 설은 담헌이 북경을 방문하였을 때 이미 중국학계에 주류적 견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주희는 『시집전』에서

   정소아는 잔치하고 즐길 때의 음악이요, 정대아는 회조에 쓰이던 음악이며 제육(祭肉)을 받고 훈계를 늘어놓을 때의 가사이다. 그러므로 혹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신하로서의 정을 다하기도 하고, 혹은 공경스럽고 엄숙하게 주왕의 덕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사기(詞氣)도 같지 않고 음절도 다르다.

고 하였다. 여기서 대아와 소아는 “아(雅)”에 해당되는데, 이 “아” 속에 “풍(風)”에 가까운 성질의 노래들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생긴 것이다. 즉, 소아와 대아만 보면 주희의 설이 수긍이 가지만, 다른 형태의 노래를 같이 놓고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을 담헌이 북경을 방문한 1760년대, 정확히 1765년부터 1766년의 조선학계는 청대 이래 중국학계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이 『시집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담헌의 주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곧, 담헌은 주자의 경전 해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때의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인정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어서 확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자의 『시경』 해석이 중국에서 비판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담헌이 귀국한 후 그의 벗인 박지원, 이덕무 등에게 전해졌으며, 이들이 청나라 학자인 모기령(毛奇齡)의 학설을 검토하고, 그 결과 경화사족 내부에서 모기령의 경학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담헌의 주자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이 이후 조선사회에서 실학사상이 확대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이러한 단초를 연 것이 바로 담헌 홍대용이었으며, 그 대상이 된 책이 『시집전』이었으니, 곁에 누워 있는 이 책이 어찌 의미심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시집전』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책이 있으니, 바로 서계 박세당(1629∼1703)의 『사변록』이다. 홍대용보다 약 100년 앞선 박세당은 백호 윤휴와 더불어 당시 실학파·반주자학파의 2대 거벽(巨擘)이었으며, 주자의 경의(經義)에 반기를 들고 자기의 주설(註說)을 통하여 경전을 해석하였기 때문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낙인을 찍히게 된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박세당의 『사변록』은 주자의 주관적인 형이상학적 해석에서 초탈하여 경전에 입각한, 실증적인 공맹학의 본지(本旨)를 밝히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이채로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론(黨論)이 흉흉한 당시 사회에서 그런 대담함과 학문적 양심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다가, 담헌에 의해서 새로이 촉발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들의 사변이 당시 사회에서 인식할 수 있는 토양이 일찍 마련되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주희의 『시집전』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왕 『홍대용과 1766년』에 소개된 이상 이를 좀 더 확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홍대용의 『담헌서』에 보이는 「연기(燕記)」 부분은 좋은 참고가 되리라 본다. 또한 박세당의 『사변록』은 경서 부분만 번역이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에 보이는 『시경』의 주해는 언젠가 훌륭한 번역이 가능해서 이것저것 함께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재미로 충만했으면 한다. 『시집전』이나 『사변록』은 일독을 권하기는 어려워도, 기억은 해야 하지 않을까. 책의 묘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도 헌책방 순례를 떠나고 싶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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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간중강사 2015-03-31 12:05:58
글이 아주 깔끔하고 좋습니다.....다음번은 윤휴와 박세당에 관한책 붙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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