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변호사가 직업인 친구마저 그런다. “제수씨가 공무원이어서 넌 노후 걱정 없겠다.” 비아냥조가 살짝 깔렸다. 노후만? 지금까지 아내 덕에 살았는걸. 아이들이 한창 클 때도 집에 봉급을 거의 갖다 주지 않는 반건달이었으니까. 공무원 연금에서 아들 둘 등록금도 무이자로 빌려 대학공부 시켰다. 짐짓 눙쳐보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다.
나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거덜 난 기금을 언제까지 국고로 채워줘야 하느냐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1993년 적자로 돌아섰으니까 20년이 넘었다. 올해 메워줘야 할 보전금만 2조5천억 원이란다. 우리 부부 노후만 보장되면 그만이라고 외면할 문제가 분명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논의 방식에 못마땅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 내고 덜 받게’밖에 없다고?
보도를 종합하면, 공무원연금도 ‘더 내고 덜 받게’ 해서 국민연금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게 정부여당의 기본방향이다. 국고를 앞세우면 ‘더 내고 덜 받게’가 정답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복잡한 설계와 예측이 어려운 변수와 정책의 실패가 얽히고설킨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해도 되나?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 수준으로’에 있다. 왜 국민연금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시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두 연금이 어째서 같은 수준으로 맞춰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도 있지 않나? 심지어 연금을 하나로 통합하면 모든 연금 가입자가 ‘더 내고 적절하게 받는’ 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왜 외면하나? 개혁은 모름지기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를 지향해야 한다.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 당사지인 공무원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도 형평에 어긋난다. 공무원연금은 일종의 후불임금이다. 그렇다면 연금을 개혁하는 과정에 공무원 대표가 들어가는 게 정상이다. 경영상태가 나쁘다고 경영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깎았다 치자. 노조가 어찌 가만있을 수 있나. ‘애국심’ 운운하며 공무원노조를 압박하려는 발상 자체가 비합리, 비정상이다. 비정상은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게 현 대통령의 철학 아니던가.
국가재정 누가 거덜냈는데?
공무원연금개혁이 국가재정의 문제라고 치자. 그래도 이런 반문이 치밀어 올라온다. 애먼 곳에 펑펑 쓰이는 지출 때문에 국가재정이 펑크 나는 건 왜 생각하지 않나. 4대강에 쏟아 붓고, 무기 사는 데 퍼주고, 국가기능 제대로 못해 낭비되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공적연금의 본질은 무시하는 태도라니. 나는 심히 못마땅하다. 정말 알뜰살뜰히 살림을 하다가 너무 쪼들려서 개혁을 해야겠다고 읍소하는데도 공무원들이 저리 반발할까?
내가 볼 때 현재의 공무원 연금개혁은 정치적 책략이다. 정부여당은 9월부터 민간 보험업자의 대리인이라 의심받는 학회를 내세워 개혁안을 제시하고, 보수 언론을 동원해 하루에도 몇 건씩 공무원과 공무원노조를 때리는 여론전을 펼쳤다. 그들의 반발을 일부러 자극한 게 틀림없다. 국가를 위하는 정부여당 대 제 밥그릇만 챙기는 공무원(노조)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 정치적 실익을 챙기자는 속셈이다. (<시사인> 370호(10월18일자) 커버스토리 참조)
친구들은 내 논리엔 관심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공무원에 대한 편견-철밥통을 끌어안고 복지부동하는 무사안일주의자들-을 그들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제멋대로 놀기 좋은 토양이다. 콧구멍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잘 따져보고 대처하지 않으면, 다음은 늬들 차례야. 공무원연금 개혁 다음엔 국민연금 개혁 아냐?
*필자 양훈도는 전직 기레기로, 현재는 대안미디어 너머의 대표를 맡아 과거를 조금이라도 속죄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글이 대안미디어 너머의 공식 입장인 것은 결단코 아니다. 이 글은 출처만 밝히면 얼마든지 퍼가실 수 있다. 아래 무단전재 금지 운운은 개무시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