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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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그건 아니다
  • 양훈도
  • 승인 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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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훈도(대안미디어 너머 대표)

지난 2월 이사 간 아파트의 이름은 현대아이파크다. 20여 년 전, 그러니까 이 아파트가 지어지던 1990년대 초에는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명이 없었다. 그냥 현대아파트로 불렸다. ‘현대’는 잘 지어진 아파트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파트에 브랜드명을 붙이는 게 유행이 되더니, 아이파크라는 브랜드가 이 아파트 원래 이름에 슬그머니 끼어든 모양이다.

며칠 전 화성행궁 앞을 지나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신풍루에서 광장쪽으로 왼편 건설현장에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신축현장’이라고 떡 하니 써 붙여놓은 게 아닌가. 아니, 아이파크라니, 언제 아이파크 미술관이 된 거야? 수원 현대미술관 아니었어?

수원에 근사한 현대 미술관을 짓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접근성 좋은 도심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 속상했던 시 관계자의 고충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원의 역사적 근원이요, 심볼 중의 심볼 화성행궁 앞에 현대 미술관을 짓는다? 이건 아니다. 여기까지가 미술관 입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던 시기 나의 생각이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수원시는 행궁 앞 현대미술관을 밀어붙였다. 마침내 문화재 관련 심의에서도 허가가 떨어졌다. 나야 뭐,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멋진 공간을 상상하기엔 지식도 실력도 미감도 떨어지지만, 심의를 맡았던 전문가들에겐 그 비전이 명확히 보였나 보다.

수원의 역사 상징과 첨단 미술관이 조화 이룰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 자리에 왜 현대식 미술관이 들어서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세계적인 역사 문화유산과 첨단 현대 건축물이 도대체 어떻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건축의 측면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행궁 옆 학교는 문화유산 복원을 위해 헐어야 한다면서, 그 앞엔 아방가르 미술관을 짓는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다.

하여튼 시의 관계자들과 전문가들께서 충분히 알려주셨는데, 내가 사느라고 무심해서 못 들었다고 해 두자. 지난 4월 착공 소식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지 않았던가. 그냥 2015년 10월에 미술관이 완공된 후에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도 늦지 않으리. 요건 ‘아이파크 미술관 신축 공사장’이라는 알림판을 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다. 아이파크? 왜 아이파크인가? 어디까지나 수원 현대미술관 아니었나? ‘현대’가 시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와 기업의 고유명사를 슬쩍 겹쳐놓은 네이밍이라 해도, 현대는 현대여야 한다. 아이파크로 둔갑해선 결코 안 된다. 가칭일 뿐이라고? 그건 더 속보이는 수작처럼 들린다. 왜 그렇게 흥분하느냐고?

▲ 화성행궁 광장에 지어지고 있는 미술관 현장.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다.
모두의 공간에 자본의 빨대를 꽂지 마라

행궁과 행궁광장을 포함한 전체 공간은 일차적으로 행궁동 주민의 것이요, 수원시민의 것이요,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며,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 전체의 것이다. 그 역사, 그 정신, 그 분위기는 어느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독점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그 땅이 공공의 것이라면 거기에 누가 얼마의 돈을 대 건물을 지었건 그 공간 역시 주민의 것, 시민의 것, 국민의 것이다. 주민의 미술관, 시민의 미술관, 국민의 미술관에 기업 브랜드가 길이 이름을 남기게 하는 게 과연 정당하냔 말이다.

기부채납한 현대산업개발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냐고? 그러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기부채납이 정말 순수한 거였나? 반대급부가 하나도 없었나? 좋다. 반대급부를 하나도 바라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순수한 기업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더더욱 주민의, 시민의, 국민의 공간에 자신의 이름이나 남기려는 얄팍한 계산을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선경도서관, SK아트리움을 예로 들어, 아이파크 좀 썼다고 웬 게거품이냐 핀잔을 주실 독자도 있겠다. 그러나 자기들 땅에 공공시설 지어 기부채납하고 이름 남기는 것 하고, 최고 수준의 역사 유산의 그늘을 차지하고 앉아 이름을 남기는 행위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건 특정 기업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로 늦게 행궁과 미술관의 입지에 시비를 걸자는 것도 아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 모두의 공간은 모두의 공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상식 때문이다. 나는 자본의 빨대가 꽂힌 수많은 공공의 공간들, 공유의 공간들 역시 시민의 공간으로 원상회복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필자 양훈도는 전직 기레기로, 현재는 대안미디어 너머의 대표를 맡아 과거를 조금이라도 속죄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글이 대안미디어 너머의 공식 입장인 것은 결단코 아니다. 이 글은 출처만 밝히면 얼마든지 퍼가실 수 있다. 아래 무단전재 금지 운운은 개무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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