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신뢰의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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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신뢰의 물꼬
  • 양훈도(6.15경기본부 홍보위원)
  • 승인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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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훈도(6.15경기본부 홍보위원)
양훈도(6.15 경기본부 홍보위원)

경기도가 올해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쓰려고 했던 기금은 67억원 규모다. 지난해보다 7억원 늘려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64억여원이 고스란히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 올해 집행된 예산은 고작 4%(2억8천만원)이다. 출발도 못 해보고 동결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 그렇다 한다.

올해 편성된 예산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큰 한숨이 나온다. 결핵퇴치 사업 등 의료지원 사업 14억원, 말라리아 공동방제 10억원이 한 푼도 쓰이지 못했다. 긴급 식량지원 8억원, 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 6억원도 묶였다.

개성 등 농축산협력 사업 10억원, 개풍양묘장 지원 5억원, 산림병충해 방제 5억원이 못 나갔다. 개성한옥 보존사업 등 사회문화교류(5억원)와 학술교류(5억원)도 올 스톱됐다. 이 정도 사업도 제 맘대로 못하면서 ‘자치’라고 할 수 있나.

중앙정부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해야 이런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또 있을까. 자잘한 신뢰가 쌓이고 쌓이면서 돌아가는 게 ‘신뢰 프로세스’ 아닌가? 물이 먼저 흘러야 돌아갈 수 있는 물레방아를, 먼저 가동이 되면 물 흘리라고 고집을 부리는 격이다. 애들도 웃겠다.

통일 전 동서독이 교류협력 사업을 어떻게 벌여왔는가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사민당 출신 빌리 브란트가 1969년 동방정책을 시작한 이래 정권이 바뀌어도 교류협력은 20년간 꾸준히 지속되었다.

인적 왕래는 최대 700만 명까지 늘어났고, 서독의 대 동독 지원은 연평균 32억 달러 규모였다. 사민당 집권 13년이 지나 기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갔어도 그 기조가 바뀐 적이 없다. 결국 7년 후 기민당 정권 하에서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독일이라고 해서 ‘퍼주기’ 논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민당 시절 기민당은 시시때때로 ‘퍼주기’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후 기민당은 태도를 바꾸어 대 동독 지원과 교류협력 기조를 유지했다. 그게 서독과 독일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의 동방정책을 한반도의 상황과 수평 비교 할 수는 없다. 동방정책은 동서유럽의 긴장 완화를 결과한 ‘헬싱키 프로세스’라는 맥락 속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 냉전 해체 시도조차 번번이 좌절된 한반도와는 달랐다. 그러나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외부환경을 탓하고 앉아 있는 건 어리석다. 어떻게든 우리 스스로 흐름을 틀 물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어렵사리 확보한 남북교류 루트를 이명박 정부가 막아버린 건 실책 중의 실책이다. 설령 남북 당국 간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교류협력은 지속되도록 배려했어야 했다. 동서독도 80년대 들어서는 자치단체(도시) 간의 협력을 권장했다.

동서독 도시들은 자매결연 형식으로 왕래하고 협력의 범위를 넓혀갔다. 이러한 지방협력은 통일 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런 차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분단 한반도에서 가장 큰 자치단체인 경기도가 좀 더 자율적인 비전과 추진력을 갖추지 못한 점도 아쉽다. 김문수 지사 재임기간 동안 경기도는 해마다 60억 원 안팎의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세웠지만 평균 30%선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서 중앙정부의 방침과 정세를 정면으로 거스르기는 어렵다 해도 이미 확보한 ‘지렛대’를 유지하려는 노력만은 지속했어야 하지 않을까.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릴 기미가 보이던 지난 8월 경기도는 ‘남북협력 3+1 신전략’이라는 걸 내놓았다. 3대 핵심사업은 인도적 지원·사회문화 교류·호혜적 사업을 중앙정부와의 협의 하에 진행하되, 남남 자치단체 간 협력사업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9월 하순엔 제주도와 함께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된 현 시점에서 경기도가 스스로 내세운 ‘3+1 신전략’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수해를 입은 북한 영유아에게 긴급 식량을 지원하겠다던 인도적 사업은 그래도 벌여 나갈까? 소나무 공동방제와 같은 호혜적 사업이라도 해 보려고 노력할까? 이번에 틀렸으니 다음 도지사를 기다려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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