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프로세스? 불신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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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프로세스? 불신 프로세스?
  • [칼럼] 양훈도(6.15 경기본부 교육위원장)
  • 승인 201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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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훈도(6.15 경기본부 교육위원장)
양훈도(6.15 경기본부 교육위원장)

열릴 듯 열릴 듯 하던 남북 대화국면이 격 문제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갔다. 남과 북 당국은 상대방을 비난하기 바쁘다. 1980년대까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었던 이른바 위장평화공세 시대에도 남과 북은 그랬다. 마음에도 없는 제안을 하고, 받은 쪽은 어떻게든 꼬투리부터 잡고, 서로 상대방이 생억지를 부린다고 비난하고, 잠시 잠잠해졌다가 같은 사이클을 반복하고…. 퇴행이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다. 당시 북쪽 인민은 말할 것도 없고, 남쪽 국민도 정부에서 하는 일에 언감생심 토를 달 수 없었다. 의아해도, 궁금해도 그냥 삼켜야 했다. 그나마 지금은 장삼이사가 이렇게 발언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고급정보는 없으나마 꿈속의 일을 복기나 한 번 해 보자.

북쪽은 왜 대화를 제의 했을까? 1) 북미대화로 바로 넘어가기는 그러니까 그냥 한 번 던져봤다. 2) 개성공단 수입이 끊겨 경제적으로 절실해져서. 3) 이제는 정말 평화체제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1)이 정답처럼 보인다. 3)이라고 믿는 남쪽 국민은 소수일 듯하다.

그런데, 일이 틀어져 버리기 전까지 남쪽 정부는 2)라고 본 게 아닐까 싶다. 아쉬운 건 너희니까 우리가 원하는 형식에 맞춰라! 만약 1)이라고 확신했다면, 아예 대화 제의를 일축했어야 앞뒤가 맞는다. 1)인줄 뻔히 알았는데도 그 소동을 벌인 거라면, 국민들을 감쪽같이 기만한 셈이다.

부언하자면 1)인줄 몰랐다고 해도, 상대에 대해 무지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 3)이라고 보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현 정부의 대북관에 부합하는 견해는 아니다. 남쪽 정부도 정말 평화체제를 원했다면 실무회담에 더 유연하게 임했어야 한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은 북의 진짜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정부의 추측대로 2)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통일부 차관 대표 통지에 발끈한 북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쉽기는 하지만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겠다? 좋다. 그러면 통일부는 북이 발끈하리라는 걸 알았나, 몰랐나?

어느 쪽이라도 문제가 있다. 북이 발끈해서 대화 자체를 무산시킬 걸 알았다면, 남이 일부러 파토를 유도했다는 얘기가 된다. 몰랐다면 통일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분단 68년은 차치하고 1969년 통일부(국토통일원) 설립부터만 따져도 40여년이 흐를 동안 상대의 체제, 사고방식, 대화 태도에 대해 뭘 연구한 건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쓴 책 <정세현의 통일토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가 보니, 우리말 정식 명칭은 국토통일원인데, 영문명은 National Unification Board여서 매우 의아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해마다 통일원 연두순시를 할 때면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이 국론통일이었단다. 국문명은 국토통일이요, 영문명은 민족통일이고, 해야 하는 일은 국론통일이니, 통일원에 통일 개념의 통일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그 무렵에 대화 상대방과 격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면 얼마든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두 차례나 정상회담이 열리고, 수십차례 총리회담, 장관급 회담 경험이 쌓여 있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격을 운운하는 건 유치하다. 그 점에서 북도 마찬가지다. 북이 진정으로 대화할 마음이었다면 북 역시 실무회담에서 더 유연한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대화의 판을 새로 짜고야 말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원칙은 알겠다.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는 법이고, 역사엔 비약이 없는 법이다. 상대방이 엄존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회담의 역사가 엄연한데 이를 새로고침 하겠다는 건 오만이고, 오기다. 축적된 경험을 통째로 내다버리겠다는 발상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나저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제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야 하나.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더구나 힘겹게 쌓았던 알량한 신뢰마저 털어먹은 형국이다. 이대로라면 위장평화가 남북관계를 규율하던 한반도 불신의 시대로 완벽하게 퇴행해 가는 수밖에 없을 터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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