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봄, 대형 인형의 꿈이 자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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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봄, 대형 인형의 꿈이 자라는 곳
  • 윤민 기자
  • 승인 2021.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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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형극의 멘토를 찾아서’ 1 _ 극단 봄과 이수정 대표

[뉴스피크] '한국 인형극의 멘토를 찾아서' 

국어사전을 보면 인형극은 배우 대신 인형을 등장시켜 벌이는 연극으로 무대 뒤에서 인형을 손가락이나 실로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특한 인형극이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인형극의 전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꼭두각시놀음이 유일한 민속인형극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인형극단은 상당히 다양해졌고, 현대 인형극 역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다채로운 시도와 융합을 통해 이전의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영세한 수준의 극단이 많지만 현재 한국의 인형극단은 120여 개가 활동 중이다. 특히 몇몇 극단의 경우 글로벌 공연계에서도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독특한 공연 스타일과 그 완성도를 인정받고 있다.

그 중 열 두 극단이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에 참여해 새로운 극단과 인형극인들을 육성하고 있다. 그들이 걸어온 길, 그리고 진행 중인 교육과 멘토링은 바로 한국 인형극의 현재와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극단 봄의 대형인형  ⓒ 뉴스피크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극단 봄의 대형인형 ⓒ 뉴스피크

 

극단 봄이 준비한 힐링

 

▲극단 봄 이수정 대표.  ⓒ 뉴스피크
▲극단 봄 이수정 대표. ⓒ 뉴스피크

부천의 한 골목이다. 그곳에는 당연하다는 듯 부동산중개사 사무소가 있고, 그 작은 상가 건물 2층에 오르면 번잡한 계단과 다르게 작고, 예쁜 간판이 걸려 있다. ‘극단 봄’.

안으로 들어서자 벽을 가득 채운 공연사진이 먼저 반기고, 좁은 복도 끝 작업실에서 이수정 대표와 이병창 감독이 대형 인형들을 뒤에 줄을 세운 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마침 오늘은 꿈나무 인형극인을 위한 조소 특강이 있는 날이다. 양동이에는 진흙덩어리가, 책상 위에는 조각상과 끈이 감겨진 심봉대(소조를 할 때 흙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받침대)가 그 사이를 채우고 있다.

▲작업실과 사무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극단 봄의 공연 사진들.  ⓒ 뉴스피크
▲작업실과 사무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극단 봄의 공연 사진들. ⓒ 뉴스피크

“재홍이 안와?”

자리를 잡고 편히 앉자마자 먼저 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멘티에게 문득 질문이 건네진다.

“지금 거의 다 왔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쟤는 맨날 저래. 똑! 똑! 안 해도 돼! 그냥 들어와!”

 

한바탕 웃음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자리가 정리되고, 그날 작업할 진흙과 조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진흙으로 볼테르 두상을 만들어 볼 예정이다. 양동이에 담긴 진흙 덩어리들이 수업을 위해 전날 이 대표와 이 감독이 열심히 발로 다져서 만들어놓은 재료들이었다는 소개와 함께 멘티들 앞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심봉대와 볼테르 조각상이 올려진 책상이 앞으로 옮겨졌다.

▲심봉대와 볼테르 상이 위치를 잡았다.  ⓒ 뉴스피크
▲심봉대와 볼테르 상이 위치를 잡았다. ⓒ 뉴스피크

그런데 책상을 옮기는 그 단순한 과정이 의외로 복잡하다.

이 감독이 “좋은 불빛에서 공부해야” 한다면서 빛의 높이, 세기, 각도 등을 보면서 조각상과 탁자를 계속 이리저리 옮겨보는 것이었다.

마침내 “명암이 딱 나온다”면서 이 대표와 이 감독이 만족해하는 적당한 포인트를 찾은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 진흙을 주무르는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힐링인 듯. ⓒ 뉴스피크
▲ 진흙을 주무르는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힐링인 듯. ⓒ 뉴스피크

작업의 시작은 두 명의 멘티가 양동이의 진흙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주물러서 적당한 점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해보는 진흙놀이가 아닐까 싶은데, 처음 어색하게 덩어리를 조몰락거리던 두 명의 멘티는 이내 즐거워하면서 신나게 진흙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준비된 진흙 덩어리를 심봉대에 붙이면서 이병창 감독의 특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진흙을 붙이는 찰싹하는 찰진 소리에 어디부터 진흙을 붙이고, 부위별로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조단조단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 작업과 특강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 뉴스피크
▲ 작업과 특강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 뉴스피크

거기에 왜 진흙작업을 하는지, 실물 크기의 작업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에는 어떤 작업과 교육이 진행될지 이 대표의 세심한 부연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렇게 찰진 교육이 진행되면서 점차 진흙덩어리는 사람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 감독의 설명이 조금 더 디테일해지기 시작했다. 조각상을 만들 때 어느 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특히 귀와 얼굴의 광대뼈 부분을 어떻게 보고 살려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그에 따라 두 멘티들의 눈은 깊어지고, 손은 꼼꼼해진다.

▲ 진흙의 덩어리들은 점차 사람의 머리를 닮아간다.  ⓒ 뉴스피크
▲ 진흙의 덩어리들은 점차 사람의 머리를 닮아간다. ⓒ 뉴스피크

사실 요즘은 예술이라고 해도 힘들고, 기본이 되는 지루한 작업들을 피하는 게 분위기라고 한다. 대학에서도 그렇지만 일반 학원이나 개인 작업실에서도 진흙소조 만드는 체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직접 손으로 진흙을 만지면, 힐링과 함께 대상의 관찰과 조형의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이 대표와 이 감독은 지난 주 스펀지 인형 만들기에 이어 진흙 소조 만들기를 준비한 것이다.

 

극단 봄의 시작과 꿈

 

진흙 다듬기와 덩어리 만들기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건물의 지하를 내려가 본다. 거기에는 지난 시간 극단 봄이 걸어온 흔적들이 모여 있었다.

▲ 각종 소품과 공연의 흔적, 그리고 역사가 가득한 극단 봄의 지하 창고. ⓒ 뉴스피크
▲ 각종 소품과 공연의 흔적, 그리고 역사가 가득한 극단 봄의 지하 창고. ⓒ 뉴스피크

지하의 문을 열자마자 어디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재료와 소품이 가득한 공간이 보인다. 휠체어부터 시계 등과 같은 다양한 소품부터 극단에서 올렸던 공연의 주역들이 그곳에 있었다.

“여기 지하는 세트 위주로 모아놓은 곳이에요. 대형인형들을 모아 놓은 창고는 다른 곳에 있어요. 때가 되면 한 번씩 치우고, 또 치우고 하는데, 금세 또 이렇게 돼버리네요.”

여기서 인형극과 일반 공연의 차이가 제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스토리부터 그 배경과 주연배우까지 직접 구하고, 만들고, 더 나아가 연기까지 해야 하는 인형극은 그야말로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인 셈이다.

▲ 점차 진흙 얼굴에 이목구비와 함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뉴스피크
▲ 점차 진흙 얼굴에 이목구비와 함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뉴스피크

이 험난한, 하지만 왠지 재미있을 듯한 인형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극단 봄은 2003년 이 대표에 의해 창단된 인형극단이다. 미술을 전공했던 이 대표는 어느 날 한 방송사의 연락을 받고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피디의 책상 위에는 이 대표의 전시 리플렛이 놓여 있었다. 방송사에서 인형극을 담당하던 그 피디가 이 대표의 작업이 인형극과 어울릴 듯해서 만나기를 청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방송사에서 요청하는 대로 깎고, 만들기를 정신없이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이게 제 성향과 너무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어느 분이 인형극을 해보고 싶으면 독일에 한번 가봐라 권하시더군요.”

무작정 독일로 건너간 이 대표는 그곳에서 다채롭고 화려한 독일 인형과 인형극을 만났고,  그때부터 인형극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2층의 작업실로 무작정 들어와서 극단을 창단하였다. 당시 2층은 조소를 전공한 이 감독님의 작업실이었다. 그때부터 극단 봄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 이 대표와 이 감독은 서로 의논하고, 도와주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극단 봄의 역사는 2015년 이 대표가 대형인형을 보게 되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거대 인형의 붐이 일어났는데, 로얄디럭스라는 팀이 거대한 소녀를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걸어 다니게 만드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만들기를 좋아하던 이 대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그때부터 대형인형 만들기와 그 공연이 극단 봄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물론 의정부에 있는 예술무대 산에서 가장 먼저 대형인형 공연을 선보였지만, 이 대표와 극단 봄은 꾸준히 대형인형과 함께 거리공연을 진행하는 대표적인 극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크고 압도적인 인형이 거리를 누비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물론 아직 부족하지만, 앞으로 단순한 대형인형에서 좀 더 섬세하고 완성도 높게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대형인형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일단 작업실이 대형인형이 들어서기에는 너무 작다. 그래서 조종대는 지하에서 만들고, 머리를 제외한 몸과 손발은 작업실에서 만든 후 밖에서 최종 조립과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이 대표에게 대형인형은 새로운 도전이며 매력인 것이다.

 

섬세한 노동, 집요한 노력이 필요한 인형극

 

작업실로 돌아오자 어느 덧 이제 진흙으로 만들어진 얼굴이 조금씩 표정을 갖추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어리들은 뒤통수가 되고, 둥근 이마가 되고, 표정을 만들어주는 볼이 되었다.

마침 다양한 재료의 조각이 가지는 차이와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해운대의 모래조각의 놀라움, 대관령의 얼음조각과 추위에 약해 고생했던 이 대표, 눈 조각을 위해 새로운 장비를 직접 만들었던 고단한 경험이 쏟아졌다. 그 과정을 통해 재료의 특성과 만들고자 하는 형태와 방법에 대한 경험이 깊어지는 듯했다.

▲ 작업실 내에는 다양한 인형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 뉴스피크
▲ 작업실 내에는 다양한 인형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 뉴스피크

그러다 이 감독이 흙칼을 들고 조각상의 여기저기에 선을 그으면서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세부 설명이 시작된다.

“중심을 잡는 것을 주의해야 해요. 웬만큼 채워 놓고, 눈알, 눈꺼풀 등을 채워 놓는 게 일반적인 순서에요. 그리고 근육을 중요해요. 안근, 비근, 눈과 코 그리고 입 주변의 근육, 그 모양과 움직임을 잘 봐야 해요.”

 

바로 진흙소조수업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심한 관찰과 구현! 그렇지만 그 구현이 또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특징이자 이 작업의 재미이기도 하다.

▲ 즐겁고, 신기했던 이병창 감독의 작업, 특강. ⓒ 뉴스피크
▲ 즐겁고, 신기했던 이병창 감독의 작업, 특강. ⓒ 뉴스피크

똑같은 볼테르인데, 어떤 이는 거칠게, 또 어떤 이들은 우울하거나 귀엽게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건 사람의 해석에 따라, 또 그 사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성정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그게 거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게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여준다. 인형을 깎더라도 다 다르게, 자신에게 익숙한 대로 작업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 극단 봄이 새로운 인형극인에게 건네주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인형극은 마치 거울에 비추듯이 나타나는 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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