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판다는 댓잎을 먹기에, 송충이는 솔숲에 살고 판다는 대숲에 산다. 소나무가 사라지면 송충이도 사라지고, 대나무가 사라지면 판다도 사라진다. 소를 들판에 놓아기르지 않자 소똥이 사라졌고 덩달아 쇠똥구리도 사라졌다. 먹이는 바로 생존이다.
사자 이빨이 날카로운 것은 영양을 물어뜯기 위함이고, 소 위가 네 개인 것은 틈날 때 풀을 얼른 뜯었다가 짬짬이 풀을 되새김해 소화하기 위함이다. 코알라는 알코올 성분이 있는 유칼립투스를 먹기에 하루 중 스무 시간을 취해서 자고, 암컷 모기는 악착같이 피를 빨다가 제 목숨을 잃기도 한다. 먹을거리에 목숨이 달렸고 목숨을 거는 것이다.
파리는 악취를 좋아해서 동물의 사체나 썩은 과일 주변을 떠돌고, 꿀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기 위해 꽃 주변을 맴돈다. 진딧물은 식물 즙을 빨기 위해 새순 줄기와 잎에 달라붙어 살고, 개미는 진딧물의 감로를 얻기 위해 그 주변에 집을 짓는다. 먹을거리에 생활방식과 생활터전이 달린 것이다.
그가 먹는 것이 바로 그다.
그를 알고 싶으면 그가 먹는 것을 살피면 된다. 그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한 민족이기도 하다. 한 사람으로서는 아침식사에 밥 또는 빵을 먹고, 신념으로는 채식주의자 또는 육식주의자다. 한 민족으로서는 김치, 똠얌꿍, 스시, 카레, 케밥, 토르티야를 먹는다.
어느 민족이 끼니로 먹는 주식(主食)은 그 민족의 유물과도 같다. 유물은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실마리다. 유적지에서 발굴한 그릇, 장신구, 벽화 등을 통해 그 당시의 식생활뿐만 아니라 주거양식, 정치형태, 기후, 문화 등 역사의 실타래를 풀 수 있듯이 주식을 통해 그 민족의 정치, 사회, 역사, 문화도 엿볼 수 있다.
몽골의 주식은 ‘하얀 음식’인 유제품과 ‘붉은 음식’인 육류다. 이를 통해 몽골은 황량하고 너른 고원지대이며 양을 방목하는 유목민임을 알 수 있으며, 몽골인의 집이 쉽게 설치 및 해체가 가능한 ‘게르’ 임을 이해할 수 있다. 바다와 접하지 않기 때문에 수산물을 꺼리며, 채소와 과일을 찾아보기 어렵다. 몽골의 격언 중에는 ‘식물 등 야채는 짐승이나 먹는 것이고, 사람은 고기를 먹는다.’라는 말도 있다.
아일랜드의 주식은 감자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감자가 유럽에 들어온 후에 감자는 아일랜드의 주식이 되었다. 감자는 열량이 높고 비타민도 풍부하여 약간의 고기와 우유만 보충하면 식사로서 훌륭했고 저장도 잘 되고 다른 작물과 섞여서도 잘 자랐다. 그러나 1845년 이후 여러 해에 발생한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는 대기근을 겪었고, 이로 인해 인구의 8분의 1인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한 100만 명이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미국 등으로 갔다.
이 대기근은 아일랜드만의 사건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이 이주한 미국 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미쳤으며, 그 당시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한 영국에 대한 서운함은 지금까지도 정치적인 갈등이 남아있다. 아일랜드의 주식인 감자를 알지 않고서는 아일랜드의 근현대사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즐겨 먹는 식사를 통해 그 개인의 성향을 알 수 있듯이, 한 민족의 주식을 통해 그 민족의 역사와 특징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를, 그 민족을 알고 싶거든 그 먹는 것을 살피면 된다.
우리의 주식은 밥이다. 물론 현대는 식생활이 개방되고 개인 취향이 각양각색이라서 식사로 밥뿐만 아니라 빵, 고기, 샐러드 등 다양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당연 밥이다. 예전 삼국시대에도 그랬고, 지금 대한민국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주식은 개인이 취향 따라 금방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과 작물은 전통과 문화가 있으며, 지리적인 특성과 기후적인 조건에 따른다. 아무리 페루의 마카가 약성이 좋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는 으뜸 보약은 인삼이고, 지중해의 루꼴라가 고소하고 쌉싸래하여 인기 있더라도 들깻잎을 대신할 수 없다.
한국인의 주식이 빵이 아닌 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한반도에서는 밀은 잘 못 자라고 벼는 잘 자라기 때문이다. 밀은 차고 마른 기후인 유럽이 적합지고, 벼는 덥고 습한 기후인 아시아가 적합지다.
요즘엔 한국인들도 빵을 즐겨 먹는다지만 그 빵을 만드는 밀가루는 한국에서 나는 게 아니다. 99%는 바다 너머 다른 나라에서 재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탁에서 먹는 밥쌀은 99%가 한국에서 생산한다. 한반도는 밀이 아닌 벼 재배지인 것이다. 이것은 기호가 아니라 풍토이며,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인이 사과보다 바나나를 더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바나나가 사과보다 더 잘 자랄 순 없는 것이다.
다시 일컫는데 우리의 주식은 밥이다. 이 밥은 쌀로 짓는다. 이 쌀은 벼를 방아 찧은 것이다. 그러므로 벼는 밥이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민족으로서 벼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벼를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매일 먹는 밥을 모르고서 어찌 자신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커피를 즐겨 먹는 사람은 그 커피의 생산지, 품종, 볶는 방법, 추출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끼리 자신의 커피 노하우를 자랑하듯 설명한다. 기호식품인 커피를 그렇게 잘 알듯이 주식인 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좋겠다. 벼는 언제 심고 어디서 자라며, 밥은 무엇으로 지으며 어떻게 짓는지는 전문 지식이라기보다는 일반 상식이다.
밥은 까마득한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먹여 살린 생명의 양식이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벼를 '쌀나무'로 잘못 알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밥을 잘 모른다면, 이는 그것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어른의 잘못이다.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커피보다 쌀을 더 모른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카페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곤 한다.
“음, 커피 향 좋다.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향이야. 마실 때 부드럽고 목 넘김도 좋아. 이 집 원두는 주로 아라비카종을 사용하고, 로스팅이 적절하여 향을 잘 살려 내.”
한식당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이 식당은 우리 지역에서 재배한 해들과 알찬미로 밥을 해. 해들과 알찬미는 쌀 모양이 좋고 밥맛도 좋아서 최고품질 벼로 선정된 품종이지. 이 식당은 인근 RPC와 계약을 해서 매주 쌀을 주문하므로 늘 햅쌀을 먹는 느낌이지. 이 집 사장님은 밥 지을 때 불과 물 조절을 기막히게 해서 밥알이 탱탱하고 고슬고슬하여 식감이 뛰어나지. 바로 지은 밥을 올리기에 구수한 밥내에 절로 기분이 좋아져.”
자신은 도시에 살며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벼를 알 필요가 없다고 우긴다면, 이는 자기 인감을 스스럼없이 남에게 맡긴 꼴이다. 매일 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먹는다는 것은 제 몸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쌀을 생각함은 생산자인 농부만 위하는 게 아니고 소비자인 도시민도 위하는 것이며, 밥을 아는 것은 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몸도 아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다. 밥과 쌀 그리고 벼는 바로 우리다.
[기고] 이천시 농업진흥과 인력육성팀 박종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