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생각 처벌하는 건 민주주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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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 처벌하는 건 민주주의 아니다”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6.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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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카로스의 감옥-‘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 문영심 작가

▲ 문영심 작가. ⓒ 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뉴스피크] 국민의 명령으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박근혜 정권 집권 4년간의 ‘적폐’ 청산 요구가 거세다. 헌정파괴·국정농단의 공범 새누리당 즉각 해체, 황교안 권한대행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이 광화문 거리에 가득 찼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세월호 참사 당시 진실 은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증거들이 공개되고 있고, ‘비선실세’ 최순실 모녀의 집사 노릇을 했던 삼성 재벌의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들끓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국정농단을 저지른 최순실이 국정원의 대선 댓글 조작을 비롯한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한창이던 박근혜 정권 초기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일으킨 뒷배경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의 진실을 외치는 소리는 아직 크지 않다. 사실 재판 과정에서 사실상 검찰과 국정원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였던 ‘녹취록’은 무려 450군데나 왜곡됐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마녀사냥을 일삼던 언론들은 조용했다.

검찰은 “전면전은 안 된다”는 말을 “전면전이야 전면전”으로,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 걸 “실탄이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김근래 자네 지금 오나?”를 “김근래 지휘원, 자네 지금 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왜곡해 언론에 흘려 이석기에게 ‘종북’과 ‘내란음모’의 올가미를 씌웠다.

그뿐 아니다. 검찰은 이석기의 강연 내용과 이후 진행된 분임토론에서 중구난방으로 나온 ‘국가기간 시설 타격’ 이니 하는 표현도 강연에서 한 발언으로 조작해 언론에 유포시켰다. 그 결과 이석기는 법정에 서기도 전에 ‘종북’으로 매도하는 여론몰이로 물어뜯기고 짓밟혀 만신창이가 됐다.

대법원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빌미가 됐던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라고 판결한 뒤에도 언론은 정정보도를 하지 않았다. 검찰 등 공안기관이 제공한 자료를 사실인양 퍼 나른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사죄도 없다. 그저 ‘닥치고 침묵’이다. 오히려 대법원이 RO(혁명조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일부 언론들은 여전히 ‘RO’가 존재한 것처럼 엉터리 보도를 계속했다.

민주노동당부터 시작해 15년간 이 땅에 존재했던 정당을 종북몰이로 없애버리는 데 동조했던 언론들이 이제는 분노한 촛불에 편승해서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비판의 펜을 휘두르며, 민주주의와 촛불혁명을 떠들어 댄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많은 언론 중에 ‘진실을 밝히는 등불’은 없었다.

그런데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장막 뒤에 숨겨진 ‘진짜 음모’를 속속들이 파헤쳐 한 권의 책을 들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카로스의 감옥-‘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을 쓴 문영심 작가다.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 이름이 반가웠다.

책 제목 <이카로스의 감옥>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가 새의 깃털을 실로 엮고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하다 태양의 열을 견디지 못해 날개를 잃고 바다로 추락해 죽은 것과 2012년 야권연대를 통해 권력(태양)에 도전했다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닮았다는 이석기 전 의원의 얘기에서 따 왔다.

내가 문영심이란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건, 대통령 박정희를 사살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의 생애를 다룬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김재규 평전>(2013년)을 통해서다. 놀라운 책이었다. 이어 2014년엔 국정원이 저지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간첩의 탄생-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을 출간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작가로 27년간 일했던 문 작가는 말 그대로 사실에 바탕을 둔 글쓰기로 잔뼈가 굵었다. 다큐 대표작은 SBS에서 방연된 <물은 생명이다>다.

▲ 지난 15일 수원에서 진행된 <이카로스의 감옥> 북콘서트 당시 저자 서명을 하고 있는 문명심 작가. 이날 처음 만났다. ⓒ 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지난 15일 문 작가가 수원에 온다기에 ‘이카로스의 감옥’ 북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에 대한 열정과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문 작가는 북콘서트에서 진보언론 조차도 <이카로스의 감옥> 책 소개를 안 한고, 자신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결심했다. <뉴스피크>는 그 잘난 진보언론 축에 들지도 못하며, 경기도 수원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듣보잡’ 인터넷신문이지만 문영심 작가를 인터뷰하겠다고. 북콘서트 일정으로 바쁘게 지내는 문 작가를 지난 18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조그만 찻집까지 출장 취재를 가서 만났다. 이미 북콘서트 기사에서 다룬 내용은 가능한 제외하고 질문을 준비했다.

- 책을 써보라는 제안에 ‘종북’ 소릴 들을 까봐 두렵기도 했다고 하셨는데. 그런데도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제일 큰 거는 통합진보당 해산이었어요. 통합진보당 해산되고 나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우경화 됐거든요. 말하자면 다른 목소리가 완전히 무시되고, 배제되는 것이 심해졌죠. 이게 결심하게 된 제일 큰 동기예요.”

- 책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자료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자료 다루는 일이 제일 힘들었어요. 방송 다큐멘터리 일을 하면서 자료 다루는 게 다른 사람보다 훈련이 되긴 했지만, 재판 기록이 워낙 방대했죠. 또 자료를 쭉 보면서 그 모든 것이 쓸데없는 국가기관의 심각한 낭비라고 느끼게 됐을 때,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이건 물리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하며 이중으로 힘들었어요.”

- <이카로스의 감옥> 원고를 다 쓴 시점은 언제였죠?

“초고는 2015년 10월 경에 완성됐어요. 초고 완성 직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사실 연로 하셨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웠어요. 충격이 컸죠. 원고 쓰느라 지쳤고 아버님 상 치루고 힘들어 병원에 입원까지 했으니까요. 전 그 때 당시 너무 다급했어요. 다른 정치적 논란을 떠나 법적으로는 무죄인데 이 사람들이 감옥에 있다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책이 석방에 당장 도움이 될 수 없을 지라도 마음이 급했어요. 빨리 출간하고 싶어 서둘러서 10월 말에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 상당수의 출판사들이 원고조차 받아 보길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1년이나 지나서 책이 나왔는데요?

“제가 유명 작가가 아니고, 요즘 출판이 워낙 불황이고 잘 안 팔리는 걸 이해도 해요. 하지만 제가 완전 초보자도 아니고, ‘김재규 평전’ 같은 경우는 정치사회 분야 책 치고는 많이 팔렸거든요. 그런 커리어(career)가 있는데도 보통은 ‘내가 이러이러한 원고를 썼으니 한 번 읽어봐라’ 그러면 ‘한번 달라’는 게 상식인데, 읽어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아니 아무도 읽어 보겠다는 말 조차 않는 데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까지 경직돼 있나. 내가 ‘듣보잡’인 게 서러웠죠.”

- 출판사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원인과 무관하지 않아요. 자기 검열이 심해 진 거죠. 통진당 해산 이후에 종북 딱지에 대한 사람들의 위축이 심각해 졌잖아요. 팟캐스트 ‘새날’에 출연했을 때도 패널이 그런 말을 하는 데, ‘통진당 사건 이후에 예전 학생 시절 갖고 있었던 사소한 문건도 싹 다 없애 버렸다’고. 그만큼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게 그 분위거든요.

자기 검열과 사람들의 위축, 뭐 출판계라고 다르지 않고요. 거기에 상업적 계산도 있는 거고, 독자들이 이런 책을 선택하겠나 그런 것도 있겠죠. 집에 다 아무렇지도 않게 뒀던 책도 보관하기 찜찜한 분위기였잖아요.”

- 원고를 받았던 출판사가 책 내용을 ‘객관적이고 좀 더 거리를 두는 내용’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던데요?

“그런 요구가 한 번 있었어요. 저에게 유시민, 진중권이 쓴 책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쓴 책은 일반 독자들에게 안 먹힌다, 거리 두기를 하고 ‘통진당 억울하다’는 관점을 버리고, 서술하면 출판 가능성 있다는 거였어요. 흔히 하는 식의 양비론처럼 ‘니들도 잘못은 있다’고 하라는 거죠. 소위 논점을 흐리는 태도는 저한테 맞지 않아요.

‘통진당 편들었다’고 하는데, 말하지 않은 건 일을 수 있으나, 왜곡한 건 없어요. 사실만 썼을 뿐이거든요. 저 사람들(통합진보당)이 완벽하겠어요. 사람인데, 문제가 있다면 토론과 인간적 이해를 통해 해결할 문제지, 처벌 받아 마땅하다는 관점엔 동의할 수 없기에 그런 거지. 너무 심각한 마녀사냥을 당해 그 부분에 대해 심정적으로 안 됐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 문영심 작가.  ⓒ 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 시사인북에서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간첩의 탄생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을 펴냈잖아요. 그 쪽과는 접촉을 안 해 보셨나요?

“저는 사실 거기서 당연히 출간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믿고 있었죠. 어쨌든 책 내서 손해 보지 않도록 해 줬으니까. 그런데 시사인 쪽에서는 독자층이 아무래도 저쪽(통진당 탈당한 정의당)하고 가까운 성향이라, 간단히 얘기하면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얘기더라고요. 저로서도 뭐 그거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당황스러웠죠. 사실.”

- 자신 만의 글쓰기 원칙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다큐멘터리로서의 팩트,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실에 입각해 인간이 주인공인 이야기야 말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힘이 있어요. 제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영상적 기법, 장면이 떠오르게 써요. 장면은 이미지고 씬(Scene) 개념이잖아요. 영상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글이죠. 스스로 장면을 생각하면서 글 쓰는 것에 익숙해요.

꼭 논리적 서술이 필요한 부분은 그 것대로 쓰지만, 가능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 정보와 사실을 담는 태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봐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읽히지 않는다면 필요없다고 생각해요. 책은 출판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게 중요하죠.”

- 책에 보면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발언은 경솔했다는 식의 지적을 하기도 했는데요?

“네, 그 것은 말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봐요. 다른 때 같으면, 정상적 사회라면 그런 말이 문제가 돼서는 안 되는 게 맞잖아요. 그 당시 여러 가지 논란이 있던 시기에 책  잡힐 발언을 한 건데. 정치인은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발언 한 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이번에도 문재인이 혁명 발언 한 것 때문에 엄청나게 뜯기고 있는데, 불필요한 발언은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또 진보정치를 하려면 거부감을 주는 언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대중들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운동권 용어를 사용한다던가, 자기네들의 생각을 너무 거칠게 표현하는 부분, 이번 내란 조작 사건에서 돌팔매를 맞은 것도 여과되지 않은 표현들 때문이었잖아요.  그런 것들은 내부적으로 토론을 통해 정리를 해야 할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처벌받을 건 아니라는 거예요.”

- 북 콘서트 하면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언론도 ‘공범’이라고 하셨는데요. 왜 그들이 공범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동아일보 사태를 통해 1970년대에 박정희가 언론 길들이기를 확실히 해 뒀어요. 그 뒤로 언론은 알아서 긴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알아서 기다 보니까, 특별히 취재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길들여지고, 게을러지고, 던져주는 정보를 받아서 적당히 쓴다는 안이한 태도. 취재에 대한 치열함이 없어요. 언론에.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이런 왜곡 사태, 너무나 심각한 마녀사냥은 취재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라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그런 녹취록(국정원에서 돈 받는 협조자가 정당 모임 내용을 몰래 녹음했던)이 나오면, 그 녹취록의 진위 여부를 먼저 살피고, 녹취록이 어디서 나온 거냐는 경위를 취재하는 게 맞죠. 국정원이 왜 정당의 강연을 몰래 녹음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해야죠. 어떤 언론도 그런 지적하는 걸 못 봤어요. 우리사회는 불법 사찰에 너무 무감각한 거예요. 그만큼. 국민들은 무감각해지더라도 언론은 그걸 문제 삼아야 마땅한 거잖아요.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어떤 언론도 문제제기 않는 게 너무 놀라웠고, 이상했어요. 전 그래서 그들을 공범이라고 주저 없이 얘기할 수 있죠.”

- 우리사회에서는 국가권력의 폭력과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오히려 죄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통합진보당 쪽 사람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식의 따가운 시선이 있다고 하던데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 문영심 작가. ⓒ 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끊임없이 그런 논란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두 번의 내홍이 있었잖아요. 2007년 사태를 겪은 사람들이 2012년 진보통합을 논할 때 반대해서 떠난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금도 과욕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걸 빌미로 ‘이석기, 이정희의 과욕이 진보를 말아먹었다’는 게 떠난 사람들의 논리죠. 이건 논점 흐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그건 그것대로 따로 얘기하고, 경선 부정 때 뒤집워 씌운 건 따로 논의해 할 사안이지, 그걸 한 데 몰아가지고, 통합을 서둘러 했기 때문에 경선 부정 때 잘못을 안 저질렀는데도 저지른 것처럼 매도당한 것도 ‘니네 잘못이다’ 이건 맞지 않죠.

이석기 더러 실세라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정치컨설팅 회사를 운영했기에 컨설팅을 한 거예요. 컨설팅은 선거의 한 방향 틀을 제시하는 일을 하는 거고, 그 과정에서 야권연대로 뭔가를 바꿔보자는 게 이석기의 일관된 생각인데, 그걸 개인 영웅주의라고 얘기하면서 헐뜯는 건 옳지 않죠. 이석기가 개인적 야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전 몰라요. 모르지만 한편으로 보면,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대권을 원했다 하더라도 정치가가 대권을 원하는 게 무슨 잘못이죠? 예전에 끊임없이 DJ(김대중)더러 대통령병 환자라고 물어뜯는 것도 참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치가는 대권을 잡아 나라의 전체 시스템을 바꿔 보려는 게 당연한 꿈이죠.

설사 대통령이 꿈이라 해도 욕먹을 일은 아닌 거예요 다만, 통합진보당을 결성할 때 반대한 사람들 중에는 ‘특히 유시민 계는 진보도 아니다’, ‘심상정 쪽은 이미 배신했던 사람들 아니냐, 저쪽에서 진보신당을 배신하고 오는 사람들인 데, 뭘 믿고 하느냐’ 이런 얘기는 귀담아 들었어야 되는 얘기라고 보고요. 패착이 있었다면 그 부분에 있었던 거지, 진보대통합이나 야권연대 자체가 문제였다고는 생각 안합니다.”

- 책을 읽어 보면 진보운동의 속사정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던데요. 그런데 북콘서트에서는 ‘운동권 근처에도 가 본적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정말 운동권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어요. 그 이전엔 진보정당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다만 상식적으로 우리나라엔 진보정당이 꼭 있어야 된다.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고 통일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당은 있어야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심정적으로 지지해 정당 투표 땐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어요. 이번에 이 책을 쓰면서 그들의 역사, 그들이 해 온 일을 나름대로 성의 있게 이해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공부를 통해 알게 됐죠. 이 시절에 이렇게 됐구나 하는 걸 이해하게 됐어요.”

- ‘내란음모 사건’으로 정권이 노린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사회 전반이 우경화 되는 거죠. 간단히 말하면 찍소리 못하게 만드는 효과, 예를 들어 10%의 지분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들은. 누구 하나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건 박정희식 사고죠. 박정희는 국회가 필요없다며 해산시키기도 했잖아요.”

-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들은 대법원에서 내란음모는 무죄였고, 이른바 RO(혁명조직)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무죄였는데, 대부분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가 적용돼 실형을 살았거나 살고 있습니다. 또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렬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에게만 ‘내란 선동’이라며 유죄를 선고했어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하나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돼야 해요. 그건 헌법 위에 존재하는 법이거든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기에 당연히 없어져야 돼요.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제7조 찬양고무죄인데, 지금 박근혜가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가 언론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내가 보니까 엄청난 찬양고무더라고요. 하지만 박근혜를 국가보안법 7조로 처벌하지 않잖아요. 그러한 고무줄 잣대, 처벌하고 싶으면 하고, 처벌하기 싫으면 안 할 수 있는 이런 건 법도 아니죠. 쓰레기 법은 없어져야죠.

내란선동이라 하는 데,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이석기 의원의 강연을 듣고 토론만 했을 뿐이거든요. 사실 그 강연도 내란을 선동한다고 볼 만한 게 없고, 강연 이후 내란을 일으키려 하거나 음모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이 의원은 내란선동 죄로 9년형을 선고받았고, 3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말과 생각을 처벌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 부친의 고향이 북한땅 평안남도 신의주인데, 공산당이 싫어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하시던데요. 가정적 영향도 받고, 1980년대 까지는 반공주의 영향이 많았을 텐데, 언제부터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나요?

“비판적 태도는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거 같아요. 제가 원래 좀 비딱합니다. 어른들의 일방적 가르침 잘 따르지 않고요. 학교 다닐 때도 성적을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선생님이 가르치거나 교과서에 실린 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많이 품었어요. 그런 건 기질이라고 봐요. 물론 아버지는 어느 시점까지는 강고한 반공주의자이셨지만, 대학 교수를 지내셨고, 합리적 사고를 하시던 분이셨죠. 1980년대 이후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셨죠.

나중에 제가 김재규 평전을 쓸 무렵에는 ‘김재규가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를 쐈다’는 데 동의해 주셨죠. 또 소위 말하는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또 박정희의 군국주의적 사고가 우리나라 전체를 큰 병영처럼 만들어, 원래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장점을 많이 훼손시켰다는 점을 강조하셨어요. 제가 김대중 평전을 쓸 무렵엔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특히 이 책(이카로스의 감옥)을 쓸 때 아버지는 ‘책이 언제 나오느냐’며 많이 기다리셨죠. ‘용기 있는 작업이다. 역사에 남을 작업이다’고 격려해 주셨고요. 아버지가 못 보고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팠었는데, 아버지가 지금은 많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

- 요즘 사회 현안 관련된 질문인데요. 박근혜 정권이 강하게 밀어붙인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근혜는 국회의원 시절이나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도 아버지의 시대에 대해서 얘기할 때  5.16쿠데타를 계속 혁명을 표현하곤 했잖아요. 내심으로 진심이었겠지만, 대외적으로 실수라고 하고. 사실 공직적으로 5.16은 쿠데타라고 역사책에 기술돼 있는 게 박근혜는 못 마땅했겠죠. 그런 것을 반동적으로 회귀시키려는 거죠.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정부 10년을 거쳐 미흡하지만 바로 잡았던 역사를 후퇴시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봐요. 더 바로 잡아도 시원찮을 텐데, 후퇴 시키려는 건 그들의 오랜 염원이었겠죠. 하지만, 그런 정도의 국정교과서를 수용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미개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 <이카로스의 감옥> 표지. ⓒ 뉴스피크 이민우 기자
- 책 저자 소개에 보면 “강원도 양구로 귀촌 후에는 야생화 탐사에 재미를 붙이며 살고 있는데,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연이어 예민한 주제의 책을 쓰게 됐다”고 돼 있던데요. 좋아하는 야생화는 뭔가요?

“제가 노루귀를 참 좋아해요. 봄에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았을 때 눈 속에서 먼저 피는 꽃이에요. 그 무렵에 피는 꽃, 꽁의바람꽃, 복수초 같은 꽃들을 좋아해요. 이런 꽃들은 처연해요. 아직 숲에 파란 기운이 없을 땐 흰 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고, 생명이란 엄청난 거구나’ 하는 걸 느껴요. 자연은 치열하게 살아요. 인간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우죠. 예쁘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강한 열정을 느끼게 하거든요.

돌단풍도 좋아요. 돌단풍은 바위틈에서 피어나거든요. 산에 가면 유난히 바위를 뚫고 나오는 그런 꽃들이 있어요.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하고는 다른 느낌을 주죠. 산다는 건 참 뼈아픈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건 밑바닥에서 뚫고 올라오는 거다, 정말 힘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힘을 보게 되는 거 같아요. 전 촛불을 보면서도 정말 촛불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먹고 사는 데 힘들어서 못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바로 돌단풍 같은 사람들이죠.”

노루귀의 꽃말을 인내, 행운이다. 돌단풍은 꽃말이 생명력, 희망이다. 격동의 세월을 굴하지 않고 견뎌내며 살아가는 ‘땅의 사람들’과 진실을 알리는 일에 용기 있게 나선 문영심 작가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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