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따지면 일본 사람 1인당 빚은 9천7백만원이다
* 글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사학명문 노민호아카데미 원장)
[노민호의 자치(自治)통찰=뉴스피크] 2027년 예산안의 국가채무가 1,519조 8천억원이다. 인구로 나누면 1인당 3천만원쯤 된다. 언론이 이 나눗셈을 좋아한다. 갓난아기까지 빚쟁이로 만들어야 기사가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산에는 빠진 것이 둘 있다. 누구에게 진 빚인지, 그리고 그 빚이 누구의 자산인지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6월말 1,346조엔이다. 국민 1인당 약 1,095만엔, 우리 돈으로 9,731만원, 약 1억원에 달한다. 우리의 세 배가 넘는다.
그러면 일본은 이자를 훨씬 비싸게 물어야 맞다. 9월 7일 기준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2.94%였다. 같은 무렵 우리 국고채 10년물은 4.40%였다.
빚이 세 배 많은 나라가 우리보다 1.5%포인트 싸게 빌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도 보자. 신용등급은 무디스 기준 미국이 Aa1, 우리가 Aa2로 미국이 한 단계 위다. 그런데 9월 9일 미국 국채 10년물은 4.83%, 우리는 4.40%였다. 등급이 높은 쪽이 이자를 더 주고 있다.
신용도가 낮으니 이자가 비싸다는 공식은, 적어도 이 세 나라 사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 국채 금리를 정하나. 물가와 성장률과 통화정책이 정한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나라 안에서 그 채권을 사줄 사람이 얼마나 두터우냐가 정한다. 일본 국채가 싼 이유가 여기 있다. 일본 국채는 압도적으로 일본 안에서 소화된다. 급하게 내다 팔 사람이 없으니 값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국채의 발행은 국채시장을 형성한다. 이게 중요한 관점이다.
내국인이 가진 국채는 은행 빚과 무엇이 다를까?
내가 은행에 1억원을 갚으면 그 돈은 내 손을 떠난다. 국가가 국채를 갚으면 그 돈은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갈 뿐이다. 국부는 줄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국채 몫뿐이다. 지난 5월말 외국인이 가진 우리 상장채권은 333조 6천억원, 전체 상장잔액의 11.9%였다. "1인당 부채"라는 말을 굳이 쓰겠다면, 정직하게는 이 몫만 세야 한다. 그게 정직한 얘기다. 내국인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다 합쳐서 겁주기 방식으로 국채를 말하면 곤란하다.
이 비중은 오르는 중이다. 우리 국채가 4월부터 11월까지 단계적으로 세계국채지수에 편입되고 있고, 그 뒤로 외국인이 국고채를 37조원 넘게 사들였다. 이걸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가 우리에게 진 빚"이 줄어들고 남에게 진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6월말 국내채권 287조 8천억원을 굴리는데, 그중 41.2%가 국채다. 대략 118조원이다. 국가의 채권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가장 큰 채권자 하나가 우리 노후자금이라는 말이다.
"1인당 빚 3천만원"이라고 쓰는 기사는 이 숫자를 나란히 적지 않는다. 부채는 세고 자산은 안 센다. 그래야 공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총액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그 국채를 국민연금이 쥐고 있으면 이자는 국민의 노후로 간다. 자산가가 쥐고 있으면 자산가에게 간다. 같은 1,500조인데 결과가 정반대다.
"신이 인간에게 눈을 두 개 준 것은 하나는 공급을 보고 하나는 수요를 보라는 말이다"
경제학자들의 농담이다. 대한민국 기자들도 한 눈은 '부채'를 보고 다른 한 눈은 '자산'을 봐야 하는데 한 쪽 눈을 감고 기사를 쓴다. 얼마전 국민연금 외국인 가입자가 마치 1개월만 내고 평생 연금을 받는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 저질 기자의 전형이다. 모르고 쓰면 좋겠는데 의도적으로 쓴다. 그래서 더 나쁘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국채 보유자 구성을 분기마다 공표하자. 내국인과 외국인이 각각 얼마인지, 내국인 몫에서 국민연금과 보험사와 은행과 개인이 각각 얼마인지 자료만 모아서 한 장으로 내면 된다.
그 표가 나오면 '1인당 빚 3천만원'이라는 기사는 쓰기가 어려워진다. 옆 칸에 '1인당 채권 얼마인지'가 같이 적혀 있을 테니 말이다.
빚을 세려거든 채권도 같이 세시라. 한쪽만 세는 것을 우리는 계산이라 부르지 않고 조작이라 부른다.
* 글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사학명문 노민호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