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업의 본질은 노조의 욕심이 아니다

* 글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사학명문 노민호아카데미 원장)

2026-05-01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

[노민호의 자치(自治)통찰=뉴스피크] 삼성전자 노조의 대규모 파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이 사태의 뿌리가 단순히 한 회사의 노사 갈등이 아니라 한국 노동체제의 구조적 한계에 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한국과 유럽,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노동시장은 흔히 "이중구조"로 불린다. 같은 일을 해도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 임금과 복지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대기업에 다니면 높은 연봉뿐 아니라 사내 기숙사, 통근버스, 사내 어린이집, 건강검진, 자녀 학자금, 휴양시설까지 두툼한 사내 복지를 누린다. 같은 산업의 중소기업이나 협력업체 노동자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 구조는 유럽과 비교할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흔히 "유럽에서는 사내 복지가 불법"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떠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독일의 BMW나 폭스바겐도 사내 식당, 통근버스, 직원 기숙사, 사내 어린이집, 그룹 전용 건강보험기금 등 풍부한 사내 복지를 운영한다. 유럽이 한국과 다른 지점은 사내 복지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위에 두텁게 깔린 사회적 임금과 산별교섭의 토대에 있다.

유럽 대륙 국가들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사용자가 부담하는 사회보장 분담금이 매우 높다. 독일·프랑스에서는 임금 외에 추가로 임금의 30~45%에 해당하는 사회보장 분담금을 사용자가 납부한다. 이 돈이 전 국민의 의료, 연금, 실업급여, 가족수당, 직업훈련의 재원이 된다. 둘째, 산별 단체협약이 산업 전체에 적용된다. 같은 산업이라면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임금 하한과 근로조건이 비슷하게 맞춰진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독일 약 50%, 프랑스 90% 이상, 북유럽 80~90% 수준에 이른다. 셋째, 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통해 기업 간 보상 격차를 좁히려는 사회적 합의가 작동해 왔다.

요컨대 유럽에서는 일자리의 사회적 성격이 뚜렷하다. 노동의 보상은 그 회사가 얼마나 잘나가느냐가 아니라, 그 직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따라 일정 부분 결정된다.

◆ 한국은 왜 이렇게 되었나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 평균(약 32%)에 한참 못 미치는 14~15%대다. 노동의 보호막이 그만큼 좁다는 뜻이다. 그 결과 임금과 복지의 격차는 거의 전적으로 "어느 기업에 들어갔느냐"로 결정된다.

이런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은 노동운동의 전국적 결집을 막기 위해 기업별 노조 체제를 사실상 강제했고, 1997년 이후에야 산별노조 결성이 합법화됐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간 굳어진 기업별 교섭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산별노조의 외형은 갖춰졌지만 실질적인 산별교섭은 일부 산업에 그치고 있다.

기업별 체제가 굳어지면서 노동운동의 시야도 좁아졌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자기 사업장의 처우 개선에 집중하고, 그 회사 밖 노동자들 —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 와의 연대는 약해졌다. 노동조합이 보호하는 대상이 "조합원"으로 좁혀지면, 노동운동은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워진다.

◆ 삼성전자 파업이 보여주는 것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 약 45조 원 규모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은 이 구조의 귀결이다. 노조는 자기 회사 안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출구를 갖고 있지 않다. 산별교섭이 없으니 협력업체와 함께 처우를 끌어올릴 통로가 없고, 사회연대임금의 전통이 없으니 자신들의 요구가 다른 노동자들의 처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할 언어도 약하다.

그래서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한쪽에서는 국내 최고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더 큰 보상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산업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그 장면을 구경하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이다. 정작 차별 시정을 요구하고 싶어도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이 둘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진 구조다.

◆ 무엇을 다시 짤 것인가

물론 유럽 모델을 그대로 옮겨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산업구조도, 노사관계의 역사도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과 같은 질문은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첫째,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 제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켜 같은 산업 내 격차를 줄일 방법은 없는가.

둘째, 원청-하청 구조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도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교섭 틀을 만들 수는 없는가.

셋째, 대기업 정규직 노조 스스로 자기 사업장 너머의 노동자와 연대할 의지와 책임을 가질 수는 없는가.

어떤 제도든 처음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기업별 노조 체제는 이제 노동 내부의 격차를 고착시키는 장치가 되어 있다. 삼성전자 파업의 본질은 한 회사 노조의 욕심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른 길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 놓은 우리 노동체제의 자화상이다. 노조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한꺼번에 풀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문제의식이 사회적 논의가 되도록 '판'을 깔아주는데는 매우 유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 글 : 노민호 (사)자치분권연구소 시민교육원장(사학명문 노민호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