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거목’ 이해찬 전 총리(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서거
민주당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시대를 견디고, 민주정부 수립과 민주정당의 성장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 애도
[뉴스피크] 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가 1월 25일 서거했다. 향년 73세.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25일 오후 현지시간 2시 48분 베트남 호치민 탐안병원에서 운명했다.
앞서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1월 23일(금)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긴급 귀국절차를 밟았으나, 베트남 공항 도착 후 호흡 곤란으로 호치민 탐안(Tam Anh)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 현지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서거했다.
고인의 시신은 1월 26일 밤 대한항공편으로 베트남 현지를 떠나 1월 27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인천공항에서 직접 운구 행렬을 맞이하기로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박수현 수석대변인 명의로 서면브리핑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반세기의 한 축을 이루어온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서거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해찬 전 총리는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시대를 견디고, 민주정부 수립과 민주정당의 성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이었다”며 “이해찬 전 총리께서 남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국민주권에 대한 확신, 그리고 민주정부의 책임에 대한 철학은 여전히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고 이해찬 전 총리는 1952년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면 벽천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청양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덕수중학교와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해에 스무 살의 청년 이해찬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한 친위쿠테타였던 10월 유신을 맞았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져 청양 고향 집으로 돌아간 이해찬은 “이렇게 학생들이 다 집으로 가면, 4·19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나라가 이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질책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던 중 1974년 ‘민청학력사건’으로 투옥돼 심한 고문을 받았다. 1980년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고초를 겪었다. 대학은 16년만이 1987년에야 마칠 수 있었다.
특히,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재판받을 때 “이 목숨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 나가겠다.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박정희가 18년 만에 비참한 종말을 고했듯이, 당신들 전두환 일당도 10년이 못 가 망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심판”이라고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검찰과 판사들을 꾸짖었다.
이해찬은 1983년 여름 김근태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창립해 전두학 독재에 맞서 ‘광주학살정권퇴진’ 운동을 전개하고, 민족통일과 부정부패특권정치 청산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지냈고,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1988년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참여한 이후 13대부터 17대, 19대, 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95년 서울시 정무 부시장,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장관,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과 정책을 맡았고 야당과 집권당 시절 세 차례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대표적인 전략 기획가로 통한다. 참여정부(노무현정부) 국무총리로서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고, 퇴임 이후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지원했다.
2008년 이해찬 전 총리는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찾아 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당이 되고자 한다”며 민주개혁 싱크탱크 재단법인 ‘광장’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18년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돼 2020년의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대표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으며,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2024년 말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12.3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에 대해 12월 12일 세종시에서 열린 민주당 집회에 참석해 “저렇게 무도한 놈은 제가 정치 오래 하면서 처음 봤다. 싸가지도 없고, 능력도 없고, 예의도 없다”고 힐난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저는 박정희 독재하고도 싸웠고, 전두환 독재하고도 싸웠는데, 이 같잖지도 않는 놈하고 싸우려니까 재미가 없다”며 “(내란을 엉성하게 해) 사람들 기분나쁘게 하고 놀라게 했다”고 질타했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는 “우리 국민은 굉장히 위대한 국민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군인들이 쳐들어오는데 맨손으로 가서 틀어막고 쿠데타를 좌절시켰다”고 12.3 내란 당시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이 전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25년 10월 28일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민주평통 상임부의장에 임명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길을 걸었다.
주요 저서로 『민주와 통일의 길목에서』, 『광주민중항쟁』(공저),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이해찬』,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공저), 『광장에서 길을 묻다 - 이해찬과 진보지성 23인의 대화』, 『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사회학적 상상력』(공역), 『세계환경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