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마라!” ‘20세기 소년’이 보여준 2025년의 대한민국
[뉴스피크]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된다.
“이게 만화냐?”
그리고 만화 스토리를 말할 때 진지하게 덧붙인다.
“스토리에서 중요한 건 현실성이야!”
너무 막장 같은 황당무계한 설정과 상황은 이제 웹툰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사족처럼 뒤따르기 마련이다.
어이없게도 현실은 만화를 뛰어넘는다.
누가 그걸 믿어 하는, 농담과 괴담으로 치부되던 이야기가 그대로 현실이 될 때 어이없음보다 공포가 먼저 찾아오는 걸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그건 현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최근 예전에 보던 만화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었다. 처음 이 만화를 보았을 때 감탄한 것은 놀라운 흡입력이었다. 아이들의 정말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하나씩 현실이 나타나는 과정에 웃음과 공포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1970년 켄지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던 미래를 '예언의 서'로 만들었다. 자기들이 주인공이 되기 위한 유치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유치한 상상과 즐거움을 너무나 부러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세상이 자신을 찾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는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다가 부셔버린다.
‘만화’보다 더 유치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만화 속에서도 말도 안 되는 콤플렉스를 가진 소년의 집요한 욕망과 그를 믿고 따르는 말도 안 되는 대중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일탈과 욕망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다. 그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는 데, 자기 입장만을 이야기한다는 데 비난과 비판을 할지언정 그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와 대중 속 존재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진실성 여부 보다 믿음 자체가 중요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다른 이들이 행복과 일상과 상식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실제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현실보다 자신의 믿음이 중요하고, 그 믿음에 맞춰 오히려 현실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그러면서 마치 제비를 치료하기 위해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 비뚤어진 소년의 욕망은, 바이러스를 치료함으로써 인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트리고, 불확실한 백신에 관한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과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그때부터 개인의 욕망은 사회의 폭력이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생명체는 그런 붕괴와 고백과 균열을 인정하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일탈을 할까 새로운 관리자로의 역할을 자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사회는 사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개인은 전체에 의해 움직이는 타자가 되어 버린다.
어릴 때 소리만 나는 총으로 전쟁놀이를 하는 것처럼, 우주방위군이 꾸려지고, 만화 속 우주군처럼 차려입은 병사들이 입으로 발사소리를 내며 훈련을 한다. 소름이 돋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장난도 어른이 하면, 웃기는 풍경도 진지하면 그만큼 무섭고, 그로테스크한 게 없는 법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유치하고도, 믿기 어려운 현실을 연출했던 지도자이자 악동이자 ‘친구’는, 결국 모두가 자신이 만든 장난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렇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따르고 싶은 것만 따르던 이들은 자신들이 믿음이 허구였음을 용납하지 않는다.
또 그 욕망을 그대로 수용하고, 믿고, 따르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몇몇 이들은 그 욕망을 군중심리로 만들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든다. 그때부터 개인이 아닌 하나의 군집생명체처럼 움직이며 별도의 생명을 얻게 되는 법이다.
지휘자를 잃은 군대만큼 무서운 게 없다던가. 무서운 병기의 집합체이며, 예측불가능하나 다중 생명체가 되기 때문이다. 별도의 생명체는 전체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오직 그 길만이 사회적 가치와 사회의 조직이 함께 만날 수 있게 된다. 최근 대한민국은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만드는 사회라는 조직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득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들이 바로 영웅이다.”
.부끄럽지만 예언의 서처럼 만화가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만화 같은 대한민국을 보며, 다시 한 번 만화 같은 결말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