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작은 동네서점에서 찾은 1/4이 주는 추억과 감동

2012-03-04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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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을 다녀본 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대형서점이 많아지고, 단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문화와 체험의 공간으로 그곳들이 변해가면서 동네서점은 주로 참고서와 학용품을 파는 곳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별다른 아쉬움이 없이 대형서점이 주는 편리와 아늑함과 소비의 쾌락에 젖어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예전 대학가의 사회과학서점처럼 작지만 내가 원하는 책과 글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서점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커지고, 복잡해진 세상이 주는 피곤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마침 새로 생긴 서점을 만났다. 홍대와 합정의 중간 정도 위치에 마치 예술품 가게와 같이 잘 꾸며진 예쁜 서점이었다. 그곳이 서점이라는 것과 이름이 ‘땡스북스’라는 것 그리고 주인이 책을 발간하기도 했던 유명한 디자이너라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고서야 안 사실들이다.

한번 호기심으로 들어가 본 후 그곳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질 못하게 되었다.

작지만 예쁘고, 또 많지는 않지만 잘 만들어진 책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으니, 그곳을 아니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가깝다는 것도 많이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사실, 책을 보지 않는 한국인이라고들 말하지만, 책을 발간하는 종수는 남들 못지않은 한국이기도 보니, 어디에 어떤 좋은 책이 있느냐는 아주 일반적인 정보는 일개 개인이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은 대단한 정보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나름의 기준으로 잘 정돈된 책을 만나는 것은 가끔 책이 고픈 이들에게는 대단한 친절을 만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결코, 크기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그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이라는 단편소설집이다. 출판사는 생소하지만, 작가들은 익숙하다. 일본의 나오키상을 받은 일본 유명 여류작가 4인의 소설집이고, 그들의 책이 이미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일본소설이라고는 역사소설 외에는 좀처럼 읽으려 하지 않는 나 역시 친숙해진 이름들인 에쿠니 가오리, 가쿠타 미츠요, 이노우에 아레노, 모리 에토의 이름에 그 책의 표지에 새겨져 있었다.

물론 그 책을 산 것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작고 예쁜 책의 디자인 때문이었다. 요즘 젊고 감각적인 출판사들은 놀랍도록 예쁜 책들을 쉴새 없이 만들어낸다. 그들의 솜씨가 궁금했기에 덜컥 충동구매를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 유명한 작가들이 음식과 유럽의 작은 마을을 주제로 짧은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짧은 소설의 단호한 마침에 정을 못 붙여서 중편이나 장편을 좋아하기에 짧은 소설에 대한 기대는 적당히 접으면서 편하게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위에도 썼듯이 크기 또는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책을 마치고, 그 한 권의 감상을 도저히 한 편의 글로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빠르게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 1/4의 이야기를 담아, 내 추억과 작가의 이야기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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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잘 먹고 다니니?"

이 말을 듣지 않고 자란 이 땅의 자식이 있을까?

책의 시작을 맡은 가쿠타 미츠요는 ‘신의 정원’이라는 이야기에서 이 한 마디 말의 의미가 가진 시간과 추억을 풀어놓는다.

비록 스페인 바스크라는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시골 마을의 작은 가정에서 나누던 대화이지만, 우리에게도 이 말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대학과 직장을 다니다 보면 홀로 떠나있는 시간이 많을 테고, 그러면서 부모는 그 한마디 말로 걱정과 관심을 드러낸다. 물론 아직 덜 자란 자식들은 그저 귓등으로 흘리고 만다.

부모와 자식은 세상 어디나 같나 보다.

그렇지만 이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담기에 필요한 시간이 적지 않음을 작가는 담담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분노와 방황으로 흐르게 했던 추억의 저녁 식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행과 방황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한 인생으로 조금씩 흘러간다. 소설이 주는 느낌은 자주 그런 듯하다. 그 이야기의 상황이 공감되지 않으면서도 한편 공감이 되는 묘한 기분의 설렘과 반항을 따라 소설의 끝으로 몰입되어 쫓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무덤덤한 듯 펼쳐낸 이야기는 은근하지만 둔탁하게 가슴을 치고 올라오기에 과하지도 않는 감정을 떨림에 따라 빠른 시간의 흐름을 여유롭게 따라갈 수 있다.

은근히 감탄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오키상의 작가라더니 정말 단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건조하게 따뜻한 슬픔을 전해줄 수 있다니, 흘러가는 한 끼의 밥상에서 지구 한구석에서 배고픔과 슬픔에 떠는 한 생명을 말할 수 있다니. 결국, 이야기꾼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로 자신 안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감탄의 한 편에는 건조하게 던져지는 한마디의 말이 날카롭게 건져내는 아릿한 기억이 있다.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고 싶은 가족의 밥상이 아픈 추억으로 변한 시간에 대해 작가는 말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시절에 새겨진 행복한 저녁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다.

근대화라고 말하고, 가난했던 시절이라고 읽던 그때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화목하고, 행복했던 밥상을 가졌던 이가 몇이나 있을까? 산업역군이 횡행하던 시대의 아버지들은 삶의 노곤함을 술로서 풀었고, 가정은 그 아버지의 목표인 동시에 모든 것을 해소할 수 있던 수단이자 장소였다. 소통은 그때는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에 가족과 가끔 마주앉은 밥상은 불편함이었고, 술 취한 아버지를 기다리던 저녁 밥상은 피하고 싶었던 자리였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그런 아버지의 세대를 이해할 즈음 그 아버지들은 늙어가고, 이제 화장실을 찾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 아버지와의 행복한 밥상을 만들어도 결코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굶주린 난민에게 밥을 한 끼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했다가 다시 답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에 사람들은 한 끼의 밥이 없어 사라지고 있다고.

문득 깨닫는다.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오랜만에 직접 장을 보고, 가족과 함께 따뜻하고, 유쾌한 저녁 시간을 한번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가 너무도 소중한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어머니가 수화기 너머로 던지는 그 한마디 말에는 담긴 시간과 사랑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비록 1/4의 이야기만을 담았지만, 음식과 그 음식에 얽힌 시간과 추억 그리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나머지 ¾ 역시 자기만의 독특한 색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첫 이야기에 비해 과하거나, 뻔하거나 모호하다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기에 그저 즐겁게 읽기를 권할 뿐 특별한 감상을 남길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제목만큼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는 것만큼 맛깔스러운 맛을 가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작고 예쁜 책이다.

출판사 seedpaper /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