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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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본 적이 있나요?
  • 김희만(헌책장서가)
  • 승인 2014.04.1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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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만 - ‘헌책방의 인문학’(4)

남문서점이라는 헌책방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수원의 남문, 즉 팔달문 안에 위치한 곳이다.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책들은 그 종류가 가지각색이라,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는 나그네가 그득하다. 주인장의 손이 워낙 크다보니 책을 한 번 구입하면 트럭으로 옮겨오는 괴력(?)을 발휘한다. 고로 그 속에 담긴 책들의 기나긴 사연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수많은 헌책마니아들이 수시로 찾아드니 그 유명세는 익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책방이다. 이곳에 널려 있는 책들을 바라보노라면 시간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 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법 상자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그만큼 효용성과 경제성이 담보될 뿐 아니라 가끔 보물을 만나는 행운도 찾아온다. 감탄사는 저절로 나온다. 숨길 수 없기 때문에 그 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 만나볼 책은 이 서점에서 빼곡하게 여기저기 들어찬 책장들 사이로 나란히 꽂혀 있던 외국어 서적 가운데서 우연하게 만난 『경제지리학』이라는 고서(?)이다. 우리가 흔히 고서라 하면 그 분류가 매우 다양한데 1910년을 전후로 구분하거나, 1945년을 기준으로 하거나 또는 현재를 기점으로 먼 옛날이면 편의상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의 책인 경우 이러한 편년에는 또 다른 잣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역사라는 분야는 동서양을 망라하는 관계로 그 폭이 대단히 넓다. 나는 우리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나마 동양의 역사에 대해서도 중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가끔 못 읽는 책이지만, 손에 넣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물론 그것은 우리 역사의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책은 영어로 된 책이라 왠지 나의 정서와는 거리가 좀 먼 듯한 감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존 맥파레인(JOHN McFARLANE)이 저자로 되어 있는 『ECONOMIC GEOGRAPHY』라는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유도한다. 하나는,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이 1923년 영국에서 발간된 재판본으로 초판의 원고를 개정하고 또 판형을 키운 것이며, 그 책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종이의 질과 촉감이 아주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면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고, 바로 그 발행연도 때문이었다. 1923년 하면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있던 그 시점인지라, 과연 그 때 저 먼 이국땅인 영국에서 발행한 이 책에 ‘KOREA’라는 나라는 어떻게 기재되어 있을까 하는 점이 우선 관심사였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목차를 아무리 훑어보아도 우리나라의 국호는 없었다. 중국과 일본은 있었다. 다시 뒤의 색인을 찾아보았다. 여기에도 ‘KOREA’는 없었다. 다만 ‘SEOUL’이 있을 뿐이었다. 찾아간 그 곳은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었다. 이것이 당시 우리의 실정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먹먹한 기분이 느껴졌다. 단 2쪽에 걸쳐 언급되어 있는 ‘KOREA’의 현실을 살펴보노라니 그야말로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속 시끄러움이 아련히 작용하였다.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이 나라의 통신은 좋지 않다. 주요 철도는 부산에서 (만주의) 안동으로 달리고 있으며 서울과 제물포는 지선이었다. 수출품은 쌀, 콩, (짐승의) 가죽 그리고 인삼이었으며, 반면에 면, 비단물품, 기름(oil) 그리고 철은 주요 수입품이다. 부산과 제물포는 중요한 항구이다.
한국인들은 나약한 힘으로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를 표현하였으며, 종종 이웃의 한두 나라에 의존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는 1910년 일본에 병합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섬 제국(Island Empire)의 일원으로서 간주되었다.”

이 책이 영국에서 간행되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며, 특히 섬 제국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영연방(英聯邦)을 생각나게 하는 서술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씁쓸하였다. 어쨌든 짤막한 내용 가운데 우리의 통신이나 국력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사실에 대해서는 빠뜨리지 않고 나열한 것을 보니, 이 또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초판본에는 어떤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상상력은 날개를 접는 것으로 하였다.

흥미를 유도하는 그 둘째는, 이 책의 내지에 들어 있는 책의 소장자 표기였다. 흔히 책을 구입하면 그 책이 내 책이라는 표시를 하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 분 또한 어김없이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 책의 소유자는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경제학을 하는 분이었을까 아니면 지리학을 하는 분이었을까, 아니면 유사 학문을 하는 분이었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 당시 영국으로 유학을 하였다면, 이 분을 수소문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으나, 허공에 되뇌어본다.
 
만약 이 분이 1923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 책을 구입하였더라면, 그 분은 현재 고령으로 생존해 계시거나, 아니면 편안한 세상으로 가셨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분이 남긴 검은색 잉크의 뚜렷한 만년필 서명은 앞부분에 ‘In London. Kim’으로 표기 하였으며, 뒷부분에는 ‘S. W. Kim.’이라 하여 영어의 이니셜만을 표기하고 있다. 런던에서 김 아무개가 책을 구입하였으며, 다시 뒷장에 김 아무개를 좀 더 분명하게 ‘S’와 ‘W’를 표시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냈던 것이다. 당시 유학하였던 이 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다시 여쭤보고 싶다. 김 아무개 선생이 생존해 계신다면, 또는 그와 친분이 있는 관계자가 혹시 이 내용을 접한다면, 이 책을 그 분의 유가족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을 구입한 남문서점에 또 가고 싶다. 그곳은 보물창고다. 단,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니, 보는 만큼 안다! 라고 했던가? 각자의 소중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곳에 가면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바쁜 일상이다. 그러나 시간은 쓰는 자의 것이다. 시간을 만들어 무한정의 공간 속으로 헌책방 답사(?)를 떠나보라고 강추하고 싶다. 분명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이 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필자 소개
김희만 : 한국사를 전공하였으며, 특히 정치사회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헌책을 좋아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을 뒤지고 다니는 헌책장서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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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서점 2014-04-15 09:10:29
글이 입에 짝짝 붙습니다. 글이 좋아서 그런지 어떤 특정 단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감칠맛 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김진영 2014-04-16 17:42:16
남문서점 저도 알아요. 반갑네요

안기현 2014-04-19 16:40:25
가슴 아픔 역사의 단면이 담겨 있네요.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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