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넓은 세상을 위한 책,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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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넓은 세상을 위한 책, 히말라야
  • 윤민 기자
  • 승인 2013.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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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그들에겐 미래, 우리에겐 희망

히말라야
그들에겐 미래, 우리에겐 희망
2009년 1월 23일 펴낸곳풀로엮은집 16,000원

▲ ⓒ 뉴스피크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세상 전체를 볼 수는 없다.”
- 텐징 노르가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히말라야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곳은 언제가 도달해야 하는 궁극의 자리이자, 넘어섬으로써 내가 꿈꾸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순수한 한계와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 히말라야는 언제난 가려지고, 좁혀진 시선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너무 멀고, 또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참으로 많은 사람이 그곳을 다녀오지만, 그 시선의 답답함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그 협소함은 단지 다녀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바라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그렇게만 보려고 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생각의 짧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높이 오르면 더 넓게 볼 수 있다지만, 텐징의 말처럼 세상 전체를 볼 수 없다. 오히려 좁은 지면 안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봄으로써 더 넓은 히말라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라는 책은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가장 높게 도달한 책일수도 있다. 

 

▲ ⓒ 뉴스피크

매혹적이고 경외로운 곳, 히말라야.
그래서 많은 모험가들과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히말라야는 문화와 환경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히말라야 재단이 편집하고 내셔널지오 그래픽이 발간한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게 빛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백여 명에 달하는 사진작가와 필자들의 사진과 글을 소개하면서 히말라야의 장엄함, 분투, 그리고 이 땅을 초월해 있는 모습을 생기 있게 전달한다. 그곳의 역사와 문화, 자연 생태와 기후 그리고 무엇보다 그 깊은 골짜기와 능선에서 수천 년 동안 삶을 유지해온 사람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다.

<출판사의 서평 중>

 

▲ ⓒ 뉴스피크

정상의 끝, 또 다른 도전과 시작 _ 에드먼드 힐러리

로프를 팽팽히 당겼다. 내 바로 옆에는 텐징이 있었다. 다음 순간, 우리는 경이로운 눈으로 주 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네팔 셰르파들과 끈끈한 인연을 유지해왔다.
나는 그들의 용기와 강인함,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감각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
1960년,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겠느냐고 셰르파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있을까? 교육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쿰중이라는 큰 마을에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쿰중 학교는 대성공이었고, 곧 다른 마을에서도 학교 건립 요청이 쇄도했다.
나는 아예 탐험과 이곳 사람들을 돕는 일을 본격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 이후 거의 해마다 히말라야에 와서 등산을 하고 학교를 지었다.
텐징이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셰르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만큼이나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 ⓒ 뉴스피크

 

 

산이 아니라 나를 정복하다 _ 짐 휘태커

1분당 2리터의 산소를 공급받으며, 한 시간에 정확히 수직으로 60미터를 올라가는 동안, 세 르파 곰부와 나는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대여섯 번씩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이 끊이지 않고 우리를 강타했다. 경사가 덜 가파를수록 더 몸을 가누지 못했기에 우리는 차라리 기어서 오르려고 했다.
터벅터먹 반쯤은 걷고 반쯤은 기어 올라가면서 힘겨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우리의 체력은 더욱 바닥을 쳤다. 시속 50킬로미터 강품에 갇힌 타란튤라 거미 같았다.
마침내 곰부와 나는 다시 일어서서 발길을 옮겼다. 거의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텅 빈 산소통을 빨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상을 15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나는 다시 로프를 감았고 곰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몸을 의지하며 바람 속에서 소리쳤다.

“자네가 먼저 가게!”
“먼저 가세요, 빅 짐!”

그는 되받아서 소리쳤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싱긋 웃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타협을 보았다. 나란히, 최후의 몇 걸음을 비틀거리며 걸어가 1963년 5월 1일 오후 1 시,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함께 섰다.
비산악인들은 대체로 산을 “정복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산을 정복하 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을 정복한다. 시도하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1990년 5월 1일, 지구의 날 국제 평화 등정 팀이 라사에 도착했고 로북 빙하의 기슭에 베이스캠프를 세웠다.
우리 팀 대원이자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소련 여자 에카테리나 이바노바가 정상에서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는 전 세계의 여성을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섰습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깨 끗한 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 ⓒ 뉴스피크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다 _ 텐징 노르부

1953년의 에베레스트 초등은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이룬 업적이 네팔과 인도의 민족적 자긍심을 그렇게까지 일깨워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버지를 그린 전기 <눈 속의 호랑이>에서 작가 램지 울먼은 이렇게 말한다.
“에베레스트 위의 텐징은 말 그대로, 또한 상징적인 의미에서 하늘을 거스른 사람이었다. 소박한 아시아인이 세계적인 위업을 달성하고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것은 역사상 거의 처음이었다. 다른 아시아인들에게도 그의 위업은 에베레스트 등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인 들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밝은 징조였다.”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아버지는 산에 오르다 죽은 셰르파 유가족을 돕는 재단을 설립했다. 또한 셰르파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네루 수상은 아버지에게 천 명의 텐징을 만들어내자고 했고, 이에 아버지는 다즐링에 히말라야등정협회를 세웠다.
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망가뜨리기는 쉽고, 욕심을 부리거나 종교를 포기하게 되면 나쁜 영향을 끼치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또 문화유산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지지만 단 몇 년 만에 사라질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변화의 성격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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