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걷힌 현실 속 삼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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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걷힌 현실 속 삼성 이야기”
  • 이민우 기자
  • 승인 2013.0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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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그 불편한 진실 <환상·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 이야기>

 

23년간 삼성전자에서 겪은 불편한 진실

수원시 영통구청 옆에 위치한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한 남자가 1인시위를 한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린 뒤 해고된 박종태 대리다.

그가 든 손 팻말에는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이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라는 글귀가 담겼다. 그는 23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한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뒤 3년 가까이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환상-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 이야기>는 환상이 걷힌 현실 속 삼성 이야기다. 또 박종태 씨가 1987년에 취직해 2010년에 해고되기까지 23년 동안 삼성에서 겪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삼성’을 가장 좋은 기업, 꼭 취직하고 싶은 기업, 직원들에게 대우를 잘해주는 기업, 대한민국을 세계에 빛낸 초일류기업 등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3년 동안 삼성전자에 몸담았던 박종태 씨는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갓 스물에 입사해 지각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충실한 사원이었다. 그러나 IMF 이후 삼성이 상시 구조조정 체계로 바뀌고 일터가 아수라장이 되면서 그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강도 높은 노동 때문에 임신 중이던 여사원들이 유산하는 일이 잦았다. 일상적인 폭력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여사원들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다. 본래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어지간한 일은 참고 넘어가는 그였지만 더 이상 그냥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2007년 한가족협의회 사원 측 협의위원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에 따라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가족협의회는 그런 삼성이 노조 대신 사원들의 이해관계와 권익을 보호하겠다며 20여 년 전에 자체적으로 만든 노사기구다. 일종의 노사협의회라 할 수 있는데, ‘노사협의회’라는 명칭은 이미지상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여 ‘노사’ 대신 ‘한가족’이라는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그가 협의위원 선거에 나가게 된 것은 자신이 봐왔던 모든 문제의 단 1퍼센트라도 고쳐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삼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초일류기업인데 사원들의 이런 고통을 안다면 변화가 가능하겠지’ 하는 순진한 믿음이 당시 그에게 있었다.

그는 협의위원이 된 뒤 제일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낮은 자세로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을 시킬 때 사전에 협의위원이나 사업부대표에게 공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사업부대표로 있을 때는 공식적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 유산이 잦은 여사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노동조건 등을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가 사업부대표로 있을 때는 유산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듯 그는 1년 넘게 회사와 부딪치며 사원들 입장에 서서 협의위원 활동을 했다. 회사 측에서는 그를 다양한 방법으로 견제하기 시작했고, 한가족 스쿨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징계 2개월 정직 판정을 받았다.

“한가족 스쿨은 협의위원으로 당선된 사원들에게 제공하는 해외여행이었다. 회사에서는 이것을 ‘벤치마킹하러 간다’는 근사한 말로 포장했지만, 딱 하루 인도 현지의 공장을 방문하고 나머지 일정은 관광으로 채워졌으니 실상은 외유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는 곧 협의위원 직에서도 면직을 당했다. 2개월 정직 판정을 받았을 때는 한가족 스쿨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협의위원 직에서 면직되었을 때는 정확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박종태 씨는 그 이유가 ‘사라진 3,000억 원’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회사에서는 11월 회사가 1조170억 원의 매출 달성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 갑자기 12월에는 매출이 7,170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어떤 제품도 생산되거나 팔리지 않았다 해도 11월에 1조 170억 원이라던 순이익이 한 달 만에 갑자기 7,170억 원으로 내려앉을 수는 없었다. 겨우 한 달 사이에 3,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사라진 것이다.”

박종태 씨는 이 ‘사라진 3,000억 원’에 대해 회사에 문제제기했으나 어떤 답도 듣지 못했고, 협의위원 직에서 면직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러시아 출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6개월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연봉 체결 시 최하 등급을 받았다. 이어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뒤 빈 책상에서 자리만 지키고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내게는 동료들과의 대화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함께해온 동료들이 커피 한잔 하고 싶어 내 자리로 찾아와도 부서장의 제지를 당했다. 나와 이야기하거나 내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회사가 불이익을 내리겠다고 했는지,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자연히 드물어졌다. 나는 하루 종일 무료하게 파티션만 쳐다보다가 퇴근하곤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두 차례 유서를 쓰기도 했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삼성전자 사내 전산망 ‘싱글’에 노조 건설에 관한 글을 올렸고, 이내 해고되었다.

삼성에서 해고, 끝나지 않은 기나긴 복직투쟁

박종태 씨는 협의위원 활동을 통해 그동안 동료들을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던, 삼성의 그 거대한 뿌리와 맞닿아버렸다. 삼성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아버린 것이다. 사실 삼성은 이미 사회적인 기업이자 국민의 기업이 되었다. 정부의 많은 R&D투자 지원,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율, 도로와 통신 등 간접 투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한 인재 지원, 생산된 다양한 제품 소비 등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삼성은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삼성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기업이 된 삼성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건희 한 사람이었고, 그런 상황이 사원들의 모든 고통을 배태하고 있었다. 삼성을 사랑한 것은 이건희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일한 노동자들도 삼성을 사랑했다. 박종태 씨는 물론 그의 동료들에게 삼성은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이루고 가꾸어온 회사였다. 그랬기에 이제까지 삼성이 잘될 수 있었다. 그런 회사를 국민들에게 돌려주지는 못할망정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삼성을 위해 이건희가 공헌한 부분이 있다면 이미 주식으로 다 보상받았다는 것이 박종태 씨의 생각이다. 201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장사 배당금이 1,200억 원대로 예상된다. 10대 그룹 총수의 예상 배당금 2,599억원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그 정도의 큰돈이라면 이건희의 노력에 대해 충분한, 아니 그 이상의 보상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건희 일가는 거기서 만족하고, 경영권에서 손을 떼고 직원들에게 그것을 돌려줘야 함이 마땅했다.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고 하니 차명 계좌와 차명 주식이 등장하고, 그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와 법, 언론은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삼성의 문제는 단지 삼성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그가 해고된 지 800일이 넘었다. 그동안 사회의 많은 이들이 함께 연대해준 덕분에 박종태 씨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그의 이야기를 해외에 알려주기도 했다.

그동안 삼성노조(에버랜드)도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박 선생이 가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원들의 열망을 봤다. 그들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길고긴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사원들의 눈빛.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눈빛. 어쩌면 그 응원이 박 선생을 지금까지 버티게 해주는 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말한다.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이기 때문에 이긴다는 것을 이건희 일가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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