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풍경을 보여준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들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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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풍경을 보여준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들의 창’
  • 윤민 기자
  • 승인 2021.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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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다채로운 세계의 새로운 일상을 만나다_두 번째 이야기

[뉴스피크] 

 

코로나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적인 행사가 개최되었다. 개막 바로 며칠 전까지 일정 변경의 보도자료가 배포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던 영화제는 다행히 나름의 성과를 착실히 챙기며 마무리되었다. 더욱이 단지 하나의 행사가 아닌 새로운 일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풍경과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만남을 그려본다.

 

첫 번째 이야기_ 거리두기와 교류의 만남, 부산국제영화제

두 번째 이야기_ 속도의 풍경을 보여준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들이 창’

세 번째 이야기_ 위드코로나 속에 담긴 풍경, 아시아단편 ‘바다가 나를 부른다’

네 번째 이야기_ 격동의 세계, 고립 속에 싹튼 소통의 사랑 ‘디저티드’

다섯 번째 이야기_ 현대의 로빈슨 크로소우를 위한 애니메이션, ‘더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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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문학레지던스에서 시인들의 일상을 기록한 김전한 감독의 <시인들의 창 Poets′ Window>이 초청되었다. 거리를 두고, 소소한 일상을 조용하고 천천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게 조금 놀랍기도 하다. 그 선택의 이유를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통해 확인해본다.

▲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들의 창' 포스터. ⓒ 뉴스피크
▲ 장편 다큐멘터리 '시인들의 창' 포스터. ⓒ 뉴스피크

누군가의 말대로,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볼 만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그저 손가락을 움직일 뿐인데 그렇게 밤을 새우는 일을 누가 지켜보겠는가. <시인들의 창>은 그런 작업 과정을 인위적인 무엇도 더하지 않은 담백한 시선으로, 그러나 무언가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작가의 작업을 보지만 그가 지금 무얼 쓰고 있는지 어떤 위기에 봉착했는지 알지 못한다. 작업공간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온갖 궁리를 하는 작가들, 그들 곁으로 주천강변의 햇살과 그늘, 바람과 비, 낙엽과 풀벌레, 물빛과 그림자가 다정하게 스며든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김전한 감독이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입주 집필실 ‘예버덩 문학의 집’을 2년간 촬영했다. 잠들지 못한 시인의 창으로 희슴프레 새벽이 찾아오고, 그 나날이 쌓여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시를 닮은 힐링 시네마. _ 강소원

▲ 문학의 에버덩의 집에 있는 시인들의 창. ⓒ 뉴스피크
▲ 문학의 에버덩의 집에 있는 시인들의 창. ⓒ 뉴스피크

 

김전한 감독은 서른 살 경에 영화진흥공사에서 시나리오가, 문화일보에 시가 당선되어 작가로 등단하였다. 이후 <봉자>(2001), <녹색의자>(2005),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2006), <가을우체국>(2017), <이별식당>(2020)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으며, 장편소설, 웹툰, 서사이론서에 이어 최근에는 동화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번 <시인들의 창>은 2008년 <달의 궁전>에 이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품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됐으며, 영화제에서는 세 번의 상영과 함께 두 번의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되었다. 느리고 담백한 다큐멘터리이지만, 의외로 객석은 꽉 찼고, 관객과의 대화는 활발하였다. 그 대화를 쫓아가보면 이 영화가 나온 배경과 의미가 그대로 그려진다.

▲ 첫 번째 관객과의 대화 시간. ⓒ 뉴스피크
▲ 첫 번째 관객과의 대화 시간. ⓒ 뉴스피크

가장 먼저, 감독에 대한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첫 번째 질문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질문자는 어떤 작품이든 무에서 유에서 시점에서 그 출발점은 글이라면서, ‘시인의 감옥’이라는 영화 속 소제목처럼 자신의 틀을 벗어나고자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에서 그런 의문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김전한 감독은 “글이 다 끝나고 나면 나를 성장시켜 주는 글”이라는 답을 내놨다.

작가이기도 한 감독은 작가가 작품을 만나는 게 아니라, 글이 작가를 만들어 준다면서 이번 영화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시인들의 창’이 촬영은 1년이지만 실제 제작기간은 2년이었다면서, 그 기간은 글과 창작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많이 되물어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 동안의 성찰이 곧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김전한 감독. ⓒ 뉴스피크
▲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김전한 감독. ⓒ 뉴스피크

영화의 출발점을 묻는 또 다른 질문에서 감독은 그 과정을 좀 더 섬세하게 풀어놓았다.

김 감독은 2019년 문학의 집에 입주한 후에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이번 영화에 조연출로 참여한 구지원 작가와 새벽 산행을 거의 매일 나섰다고 한다. 어두운 새벽의 도로를 지나 산을 오르면 날이 점점 밝아지는데, 그 풍경 속에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그때가 “가장 심도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눴던 시절”이라며, 어쩌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여기로 올 수 있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의 기억은, 문학의 집 대표이자 시인인 조명 시인의 답으로 다시 이어진다. 조명 시인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명현 작가가 글을 다 지울 때, 절간에서 엎드려 기원을 할 때, 이제는 사라져버린 향나무가 다시 나올 때 세 번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학이 할 수 없는 문학의 이야기를 영화, 영상을 통해서 해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말한다. 시와 문학이 영화를 만나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 두 번째 관객과의 대화 시간. ⓒ 뉴스피크
▲ 두 번째 관객과의 대화 시간. ⓒ 뉴스피크

다음 질문은 영화의 형식에 대한 것이었다. 인터뷰나 내레이션 또는 자막 등을 통해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다른 다큐멘터리와 달리, ‘시인들의 창’은 설명 또는 자막이나 해설이 거의 없는데, 그렇게 선택한 이유나 의도가 좋으면서도 궁금하다는 것이다. 사실 관객들이 가장 좋았다는 대목도 어쩌면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인기와 성공을 거둔 ‘오징어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런 잔잔하고, 담백한 영화가 묘한 중독성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김 감독은 “새로운 방식을 찾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것은 모든 창작자의 욕망”이라면서도, 이번 영화에서는 “불타는 장면 외에는 카메라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방식, 즉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싶었다.”고 답한다.

영화에서 시인인 구체적인 누군가가 계속 나오지만, 그들 모두가 특정인이 아니고 그와 그녀들과 같은, 구분이 되지 않는 인물로 보이도록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거리를 두고, 익명성을 통해 저기 걸어가는 시인의 모습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치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글과 창작하는 이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있었다. 역시 감독의 말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받을만한 작품은 아닌 듯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거리두기가 단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닌 심리적인, 사회적인 이야기임을 확인하게 된다. 코로나가 주는 불편은 바쁘고 정신없는 사회와 우리의 마음에 잠시 거리두기를 실현해주는 하나의 장치일수도 있음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질문을 하는 관객과 듣고 있는 김전한 감독. ⓒ 뉴스피크
▲ 질문을 하는 관객과 듣고 있는 김전한 감독. ⓒ 뉴스피크

그렇지만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듯한 이 잔잔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적막을 깨는 듯한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보는 이들이 가장 공감하는, 자리와 위치를 수없이 옮기는 작가의 모습, 바람소리만 가득한 곳에서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그리고 갑자기 음주가무를 즐기는 시인들의 모습 등이 바로 그런 장면들이었다.

한 관객은 그 벨소리에 자신의 핸드폰이 울리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면서 연출된 것인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김 감독은 그게 “문학관의 일상”이라고 답을 해준다. 항상 심각하고 진지해보이지만, 시인들도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벨소리는 촬영 중 갑자기 실제 울린 것인데, 재미있는 건 촬영이 끝난 후 물어보니 작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김 감독은 그걸 직업적 특성이라고 말한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 '시인들의 창' 스틸. ⓒ 뉴스피크
▲ '시인들의 창' 스틸. ⓒ 뉴스피크

그렇게 관객과의 대화는 문학과 영화라는 두 개의 영역을 계속 넘나들었다. 막 스무 살이 된, 영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시를 좋아한다는 학생은 글이 안 써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이에 김 감독은 “인류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었는데, 그중 가장 기본이 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훈련이 된 사람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파워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기에 덧붙여주었다.

“시의 역할이 그런 거라고 봅니다. 시라는 것은, 우리일상에서 실효성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시인들도 시집들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대상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봤으면,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라고 영화와 시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마무리하였다.

▲ '시인들의 창'의 또 다른 포스터.  ⓒ 뉴스피크
▲ '시인들의 창'의 또 다른 포스터. ⓒ 뉴스피크

 

시인들의 창 / 2021 / 70min / DCP 컬러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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