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와, 오랫동안 함께한 마법과 같은 인형극, 극단 로.기.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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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와, 오랫동안 함께한 마법과 같은 인형극, 극단 로.기.나래
  • 윤민 기자
  • 승인 2021.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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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형극의 멘토를 찾아서 5 - 극단 로.기.나래의 배근영 대표

[뉴스피크] 

맛깔스러운 내음이 가득한 성남의 한 음식골목 모퉁이에 작고 단정한 건물이 하나 있다. 평범한 입구 옆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함께 작고 예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극단 로.기.나래’

아래를 내려다보니, 익숙한 듯 환상적인 로.기.나래의 공연 포스터와 함께 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와 공구들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1997년에 창단,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극단 로.기.나래의 연습실이자 공방이다.

▲ 로.기.나래의 배근영 대표. ⓒ 뉴스피크
▲ 로.기.나래의 배근영 대표. ⓒ 뉴스피크

건물을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무척 다른 내부에, 상당히 넓은 공간이 먼저 들어온다. 입구와 그 옆으로 커다란 인형과 대형 소품들이 공간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뒤쪽으로 비닐로 포장된 각조 인형과 재료들이 빼곡하고, 그 너머로 작은 공방이 보인다. 그 사이에 작지만 충분한 빈 공간이 있고, 거기서 배근영 멘토와 새내기 멘티들이 오늘의 교육과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오늘의 멘토링과 멘티들의 작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배근영 대표. ⓒ 뉴스피크
▲ 오늘의 멘토링과 멘티들의 작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배근영 대표. ⓒ 뉴스피크

잠시 공방 구경을 계속하는데, 뒤편에 잘 진열되어 있는 인형과 소품은 오른편 벽을 넘어 계속 이어진다. 상당한 양이고, 대부분이 비닐로 잘 포장되어 있다. 벽 너머는 좁은 공간이 길게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인형과 함께 또 다른 작업을 위한 공방이 부엌 등 생활시설과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

▲ 모든 인형극단의 고민은 공간이다. 인형은 많고, 생명을 나눈 인형을 버릴 수는 없고, 거대한 인형이 뛰어놀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인형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마법이 항상 만들어진다. ⓒ 뉴스피크
▲ 모든 인형극단의 고민은 공간이다. 인형은 많고, 생명을 나눈 인형을 버릴 수는 없고, 거대한 인형이 뛰어놀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인형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마법이 항상 만들어진다. ⓒ 뉴스피크

의외로 공간은 넓고, 인형을 많았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작업의 종류에 따라 짜임새 있게 구획이 되어 있었다. 사실 로.기.나래의 역사가 그리 짧지는 않다. TV에서 넘어온 인형극이 공연으로 자리 잡고, 다양한 극단이 창단되던 90년대 초반의 열기에 이어서, 하지만 IMF가 한반도를 강타하던 97년에 만들어졌다. 사실 극단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배근영 대표는 말한다.

▲ 극단 최초의 공연이자, 각색되어 새롭게 무대에 올라가고 있는 '파란토기 룰루의 모험'의 포스터. ⓒ 뉴스피크
▲ 극단 최초의 공연이자, 각색되어 새롭게 무대에 올라가고 있는 '파란토기 룰루의 모험'의 포스터. ⓒ 뉴스피크

“철이 없어서 시작한 것 같아요. 극단에 있었는데 뭔가 다르게 표현하고 싶을 때 벽을 만나게 되었어요. 눈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싶은데 세상에 보라색 눈이 어디 있어? 하는 식이었죠. 내 마음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배 대표는 인형극과 딱히 인연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배 대표는 그저 우연히, 마법처럼 인형극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평범한 20대 초반, 어느 바닷가에 주저앉아서 낙서 같더라도 그렇게 혼자 조용히 글 쓰는 일만 하고 싶었던 때였다.

그리고 엉뚱하게 하늘 높이 홀로 작업을 하는 크레인을 동경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일을 찾아 가끔 스포츠신문의 광고를 뒤적거리던 어느 날, 문득 작디작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인형극단원 모집!”

처음에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고, 다시 돌아오는데 또 눈을 잡아 끌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와보라고 해서 갔고, 그날 바로 면접을 본 후에 “도시락 싸가지고 내일부터 출근하세요.”라는 답을 바로 들었다. 배 대표는 지금도 그 광고를 가지고 있다.

▲ 신소영 멘티가 자신의 공연을 위한 소품이자 인형을 만들고 있다. ⓒ 뉴스피크
▲ 신소영 멘티가 자신의 공연을 위한 소품이자 인형을 만들고 있다. ⓒ 뉴스피크

그렇게 시작된 인형극단 생활이었는데,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쁜 극단이었다.

1년 만에 일요일 하루 휴일을 써봤을 정도였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뭘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제작하는 걸 배웠고, 그 다음 달엔 아주 작은 역할을 맡아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달에 드디어 무대에 서게 되었다.

“내 손길이 가있는 인형이 살아나  무대에 함께 있는 시간은 상상도 해보지 못한 느낌을 주었어요. 인형극을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살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게... 너무나 바쁘고 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일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인형극을 만나고 일 년 정도는 정말 심각할 만큼 인형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인형극의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해요.”

▲ 이륜관 멘티가 자신의 공연을 위해 천과 스폰지로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고 있다. ⓒ 뉴스피크
▲ 이륜관 멘티가 자신의 공연을 위해 천과 스폰지로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고 있다. ⓒ 뉴스피크

고되지만 행복한 여정은 자기만의 표현을 꿈꾸면서 전환을 맞게 되었다. 배 대표는 1년 정도 객원이자 스토리텔러를 하면서 대본을 완성한 것이다. 그때는 공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고,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17평 작업실을 얻어 사람들을 모았고, 공연을 홍보해야 해서 극단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렇게 첫 공연인 ‘파란토끼 룰루’가 성남시민회관에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계획은 3일간 단 한 번의 공연이었다. 그런데 소품과 무대를 위해 1톤 트럭 3대가 움직여야 했다. 그 고생이 눈에 선한데, 배 대표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극단을 꾸리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배 대표의 연습실로 사람들이 계속 출근하기 시작했다. 배 대표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극단의 대표가 되었고, 로.기.나래의 역사와 레퍼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되었다.

“인형극과 극단 운영과 다른 것이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인형극인데, 극단 운영은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팀들이 같이 하모니 만들어낼 때, 그 풍경, 그 상황이 발생하면 너무 아름답고, 그 순간순간이 너무 좋아요.

약간, ‘웬수’라는 말, 자식과 남편에게 하는 딱 그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버리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그렇게 출근하던 이들이 10년이 넘게 여전히 연습실을 나오고 있다. 귀엽고 예쁠 때 와서 이제 엄마가 되어서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배 대표는 그런 사람들이 주는 힘에 기대고, 그들에게 느끼는 책임감과 무게감으로 극단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로.기.나래에 새로운 인형극인을 꿈꾸는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창의인재사업의 인형극학교 멘토링이 여기 극단 로.기.나래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워크숍은 짧게 해봤지만, 긴 기간 누군가를 안내를 해본적은 없어서 사실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재미있겠다 생각을 했어요. 조금 어려울 듯해서요. 하하.

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인형극을 알고 배우려고 온 사람들, 어떻게 안내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함께 만들어갈 그 시간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인형극에 대한 내 안의 생각을 객관화 시켜볼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인형극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전해주기 위해 내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갈 테니 참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관객은 단지 2명이고, 인형은 스폰지와 천 조각이지만 한 판 마법과 같은 공연이 극단의 연습실에서 펼쳐진다. ⓒ 뉴스피크
▲ 관객은 단지 2명이고, 인형은 스폰지와 천 조각이지만 한 판 마법과 같은 공연이 극단의 연습실에서 펼쳐진다. ⓒ 뉴스피크

마지막 한 마디로 배 대표는 자신의 바람을 정리해준다. 인형극이 마법이라는 생각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마법과 같은 교육시간이 곧바로 시작된다.

각자 자신이 고른 가장 단순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시선과 움직임을 만드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거친 여자가 나와 옆 인형을 겁박하기도 하고, 다소곳한 인형이 대답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선을 갖는 것, 생명을 갖는 것에서부터 인형극이 시작됨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것이다.

멘티들이 처음 접한 것은 인형을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호기심 자극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잘 만들지는 못했다. 스펀지를 다듬고, 관절을 만드는 등 가장 단순한 작업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더 잘 만들지를 고민하면서 호기심이 의욕으로 이어지게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 대표는 인형극에서 기능적인 부분은 50%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형극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알려주고,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건 손끝으로 전달되는 연기를 하고, 인형극에 생명을 넣는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특히, 배우 출신들이 본인의 에너지를 인형에 넣어서 표현하는 걸 같이 고민해야 된다고 말한다. 배우의 경험은 인형이 아니라 본인이 연기를 하려고 한다고 것이다.

▲ 입구의 작은 간판. ⓒ 뉴스피크
▲ 입구의 작은 간판. ⓒ 뉴스피크

“어느 외국 인형극인이 준 명함에 ‘인형극은 가장 순수한 마법이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너무 좋아서 자주 쓰고 있죠. 어떤 장치나 속임수 없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죽어있는 걸 살려내고, 생명을 불어넣으니 마법이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인형극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인형극에 대해서 애들이 보는 것이라고, 연극하는 사람들조차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을 못해요. 예전에 춘천에서 해외강사의 워크숍이 열렸죠. 아무래도 이론적으로 훨씬 발전하고 정립된 그들의 교육과 체험을 통해 다른 장르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인형극을 아주 어렵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게 배우 출신 멘티들과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우리, 별을 보며가다.’

이것이 극단 로.기.나래의 모토라 한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고, 또 판타지를 꿈꾸게 하는 별처럼 땅에 발을 딛고 별을 보며 걸어가듯 그들만의 판타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 대표에게 가장 소중하며 또 큰 힘을 주는 존재가 같이 하는 극단원들이라 말한다. 어쩌면 로.기.나래의 멘토링은 인형극의 마법과 함께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만드는 과정을 알려주는 여정이기도 할 듯하다.

그건 로.기.나래의 목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지 하고 싶은 인형극, 만들고 싶은 인형, 같이하는 사람들과 관객과 만나는 시간이 주는 행복에 집중할 뿐이다. 장르, 경계도 없다.  작품을 시작했을 때, 가장 어울리는 인형, 오브제, 방식 등을 선택하고, 만들고 풀어놓는다.

그저  무대에서 그 판타지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꿈꿀 수 있고 조금 다른 생각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 대표는 이를, 일상 속 소풍처럼, 소소하지만 잔잔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작업이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마법처럼 시작한 인형극과 함께 별을 찾아온 걸어온 로.기.나래의 지난 시간이 참으로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들이 앞으로도 여전히 환상적인 여정을 만들어 갈 것임을 작은 공간에서의 공연과 같은 교육에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 참여했던 멘티들이 만드는 새로운 ‘웬수’와 로.기.나래가 만드는 화려한 또 하나의 무대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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