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지루함에 관한 짧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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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지루함에 관한 짧은 보고서
  • 이철호 기자
  • 승인 20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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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은 어떤 교육보다 중요합니다. ⓒ 뉴스피크

언제부터인가 문화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문화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과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꼭 만나는 게 ‘문화산업론’이라는 거창한 이론인데, 거기에서 가장 재미있게 다가오는 게 바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입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죠.
경제가 불황이어도 자녀를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으니, 특히 아이들을 위한 문화산업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뽀로로의 경우에서 보듯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산업 같은 분야가 규모가 커지니 이래저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그쪽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능력이자 지식이니까요.
근데 그 관심에 비해, 그 중요도에 비해 우리가 이해하는 정도나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는 정도는 아직 참으로 미숙하고도 미진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소위 문화산업론에서 꼭 짚고 넘어가는 부분인 ‘소비의 비반복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걸 무척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영화를 재방송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것에 비해, 아이들은 오히려 자기가 알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더 기대하고, 더 환호한다는 말이지요.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똑같은 영화나 만화를 수없이 봐야만 했던 부모들의 구토성 하소연이 적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윤지가 처음으로 시범수업을 받아봅니다. 수업이 아니라 신기한 놀이이겠지요. 색도 신기하고, 그렇게 자기가 도화지에 찍어서 새겨보는 것도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 뉴스피크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어른 중에서도 본 영화를 또 보는 걸 좋아하는 이도 있고, 한번 본 만화는 다시 안보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성향은 문화의 소비를 반복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생활과 어린이의 성장과 교육이라는 문제와 맞닿으면 참으로 어렵고도 모호한 문제로 변합니다. 특히 교육에서는 그런 잘못을 다시 조정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교육철학 중 아주 오래되고 질긴 것 중의 하나가 ‘반복학습’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교육과 문화의 소비는 다른 것일까요?

아직 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의 학원과 프로그램을 단지 하나의 놀이나 체험으로 생각하지 결코 수업이나 교육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좋아했던 것이라면, 또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좋은 것이라고 알려진 것이라면 자주 반복을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요.
문제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겠죠. 

▲ 다시 한 번 물감놀이를 합니다. 이제 나름대로 형태를 그려봅니다. 아직까지는 놀이가 재미있나 봅니다. ⓒ 뉴스피크

그 한 가지를 예를 따라가 봅니다.
처음 엄마들이 미술로 생각하기를 고민하는 시기는 대략 만 24개월 전후일 것입니다. 물론 아주 빠른 아이도 있겠지만, 이 시기가 지나야 고민을 시작하는 게 보다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대략 그 정도 개월 수의 아이들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의 공개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윤지도 만 24개월 때 처음으로 ‘미술로 생각하기’ 공개수업에 참여를 합니다. 물감놀이 수업인데, 물감을 푼 물에 휴지를 넣고 뭉개서 흰 벽에 던지기도 하고 물감 섞은 물을 분무기에 넣고 도화지에 뿌리기도 하고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도화지에 찍어도 보는 수업이었습니다.

당연히 윤지는 좋아했겠죠. 처음으로 다양한 색의 물감을 만져보고, 그것을 마음껏 여기저기에 묻혀보니 어떤 아이가 싫어하겠습니까. 몇몇 특별한 아이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조금 더 자라 깔끔함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처럼 꺼리는 감정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이런 놀이를 즐기기 마련입니다.
윤지는 자연스럽게 ‘미술로 생각하기’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미술로 생각하기’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음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가끔 그 개발과정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보며 놀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수업을 여러 번 하는 경우는 드믑니다. 한 번은 앉아서 하면 다음번에는 활달하게 움직이도록 수업을 다채롭게 구성을 하고, 또 어린 아이들일수록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놀이를 적극 도입을 한다는 게 그들의 자랑이고, 또 수업시간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공개수업 때 받았던 물감놀이를 다시 한 번 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역시 자기가 처음 해봤던 놀이를 다시 하니까 더욱 좋아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놀이의 ‘반복’은 어쩌면 아이들을 처음보다 더욱 신나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놀 수 있게 했겠지요.

그렇게 다시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한참 신나고, 재미가 붙을 시기에 윤지네 반 선생님이 바뀌었습니다.
사교육의 가장 큰 어려움은 안정성입니다. 아니 사교육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선생님과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교육 시스템은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그게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사회가 우선순위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술로 생각하기’의 교사들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선생님들이지만, 많지 않은 수입으로 쉽지 않은 아이들과의 수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아들과의 예술수업을 원만히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선생님에 대한 재교육과 관리가 또한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액 과외와 엄청난 수입의 사교육, 불평등의 사교육은 사실 일부의 문제가 워낙 크고, 거대해져서 나타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 아이들의 참다운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은 사실 경제적인 이유로 시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게 더욱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곳은 아무래도 이런 ‘안정성’이라는 부분에서 다른 곳보다 낫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근무환경이 특별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고, 이는 지역마다 학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부분적으로 선생님이 자주 바뀌고, 교육과 놀이의 연속성이 깨지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연속성이 깨지는 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왜냐하면 항상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니까요, 이때 부모와 선생님이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이에 관한 관찰이 부족하거나 욕심이 개입하면 아이의 놀이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입니다.

당시 윤지는 갑자기 혼자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와 선생님은 이미 했던 수업이라도 다른 친구와 함께 몇 주간만 하는 게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워낙 미술로 수업을 좋아했던 윤지라 엄마로서는 별무리 없이 수업이 진행되리라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이렇게 생각을 했겠죠. 

▲ 아이들은 재미있으면 호기심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집중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게 무척 아름답습니다. ⓒ 뉴스피크

물론 틀린 생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항상 칭찬만 받던 아이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윤지를 맡게 된 선생님은 윤지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이나 다른 행동을 한다고 몇 주 내내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엄마의 마음은 여러모로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수업할 때 창문으로 들여다보면 선생님과 다른 아이가 수업을 하고 있는 옆에서 윤지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한 두주가 지나다 다시  선생님이 바뀌고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윤지는 항상 칭찬 받는 집중력이 좋은 아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윤지는 미술로 생각하기를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우등생이자, 가장 즐겁고 편한 놀이터이자 교실로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아이는 똑같았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좋아하고, 똑같은 놀이라도 한두 번 정도 더하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누구라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가 다릅니다.

너무 무심히 다가갔을 때 문제는 치명적일수도 있었습니다. 뭔가 변화가 없었다면 윤지는 미술로 하는 놀이와 이런 프로그램 자체를 평생 싫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어른들은 대부분은 자신이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젓가락을 세계에서 가장 잘 놀리는 민족의 대다수가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일찍부터 미술에 흥미를 잃고, 재능이 없다고 낙인을 스스로와 학교에서 찍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동화 중에 ‘점’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점을 하나 찍은 아이의 그림을 선생님이 멋진 액자로 만들어주면서 그 아이가 화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동화작가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어른들의 미술 실력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전이 없는 것이라 누군가 말한 것은 바로 그때이겠지요.

어쩌면 윤지는 미술에 대한 흥미가 4, 5세 때 상실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현재 어른세대보다 영어실력이 더욱 낮다고 합니다. 이는 영어조기교육이 시작되면서 일찍부터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렇다더군요.

반복이 지루할 수도 있고, 효과적일 수도 있고, 더욱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그런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반응을 이끌어줄 적극적이고, 순수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아이들은 그런 조력자와 함께 있을까요?
어떤 부모와 어떤 선생님이 필요한지가 어떤 프로그램과 수업을 듣는 지보다 중요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또한 무척 익숙해져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더욱 찬찬히 살펴보는 게 필요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론의 이해를 위해 우리 생활과 아이의 일상을 더욱 찬찬히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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