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 인천 미추홀의 도원역은 축구전용경기장과 홈플러스가 연결되어 있다. 그 거대한 건물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위이잉~하는 아련한 소리와 함께 낡고 색이 바랜 셔터문의 공구상가와 공업사가 이어진다. 만들고 깎고 수리하는 그 건물들 사이 2층에 ‘극단 나무’가 있다.
다양함이 모인 인형극단을 꿈꾸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넓은 공간이 먼저 반긴다. 각종 소품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은 극단 나무의 연습실이다. 거기에는 재료와 공구상을 돌면서 장비와 재료를 견학 겸 탐색을 하고 온 멘티들이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될 거예요. 두 명의 캐릭터를 만들어주세요.”
오늘은 신문지와 종이를 활용한 인형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이다. 춘천에서 온 멘티와 예술학을 전공한 멘티가 신문지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극단원도 같이 작업을 시작한다.
연습실 옆 검은 커튼 너머로는 다시 넓은 공간이 열리고 정돈 잘 된 작업실을 만나게 된다. 여기를 중견의 숙달된 공업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딱 그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기계와 조금 익숙한 공구, 그리고 친근한 재료들이 잘 정돈된 채 ㄱ자 모양의 작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작업실은 극단 나무의 역사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계를 전공한 기태인 대표가 극단 나무를 창단한 게 2006년이니 벌써 14년의 시간이 여기를 거쳐 갔다.
원래 기 대표는 성인극을 하던 연극인이었다. 그러다 극단 사다리에서 마임과 어린이 연극을 하면서 인형극을 만나게 되었고,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형극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재료와 무대 준비부터 배우들까지 모든 걸 직접 준비해야 하는 인형극은 손 가는 게 정말 많은 공연이었다. 하나둘씩 준비하고 또 방법을 찾다보니 이렇게 커다란 작업실 겸 공방을 갖추게 된 것이다.
“디자인과 제작 등이 외주로 나가면 비용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또 전문 업체도 없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 수밖에 없죠. 그러다보니 짐이 너무 많아지고, 정리가 안 되면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작업실은 항상 정리정돈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각종 공구와 재료들 사이로 작은 문이 나오고 거기에서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기 대표를 따라 올라가니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옥상과 함께 또 다른 공간이 열린다.
한쪽에 주인처럼 자리한 빨간색의 천막이 인상적이다. 그 안에는 최근 공연 중인 그림자극을 위한 각종 장비들이 보관되어 있다.
“최근 그림자공연을 하면서 높이가 안 나오니까, 해가 지면 여기서 공연연습을 해요. 수시로 펼쳐놓고 연습하는데, 타워를 올려서 5미터 천을 걸고 하죠. 우리끼리는 오픈스튜디오라고 이야기해요.”
넓고 시원하고 주변에 한눈에 보인다. 거리공연만큼 야간의 그 준비 모습도 인상적일 듯하다. 대부분의 인형극단이 그렇듯 극단 나무 역시 대본과 창작 그리고 공연 준비까지 모든 것을 직접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 작가 선생님이 합류하면서 대본 작업은 이전보다 조금 차별화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극단 나무의 공연과 작업을 들어보면 극장 공연, 거리 공연, 오브제공연 등 어떤 특정 장르와 분야의 공연이 아니라 그때의 상황과 테마에 따라 선택을 하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림자 공연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창작자들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공연과 방법을 찾고 만드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극단이 운영되어 온 것이다.
“극단들은 다 비슷하리라 생각해요. 인형극단의 차별점은 작품을 만드는 성향과 다루는 주제들, 만드는 감성적인 부분들에서 만들어지는 듯해요. 인형, 오브제의 디자인 부분들, 그걸 다루는 방식 등에서 차별점 정도죠. 다만 극단 나무만의 특징이라 한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다 다룬다는 것이 아닐까요? 하하! 테이블 인형극, 손 인형, 장대인형극 등 거의 모든 공연을 하는데, 요즘은 거리공연 위주로 많이 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다양한 방법과 테마로 다채롭게 관객을 만나는 게 첫 번째 목표이며,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각각의 장르에서 전문가 되는 것도 나무만의 목표가 된 것 같아요.”
인형극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다시 창고를 거치고, 사무실을 둘러본 다음 연습실로 내려온다. 원래 이곳은 창고로만 활용되던 곳이었는데 최근 사무실과 연습실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극단원들도 최소 인원만 남기고 각자도생 중이라는데,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기 대표는 인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거리공연 수요는 많이 늘어났음을 이야기하면서 인형극의 전망이 어둡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만약 콘텐츠 제작을 위한 환경과 전문가들이 많아진다면 거리축제와 공연은 더욱 풍성해질 거라면서 한참 작업 중인 멘티들을 자극한다.
그렇게 진지한 작업지시와 농담처럼 건네지는 경험담과 전망들이 테이블 위를 오가는 사이 두 멘티의 손에서 구겨지고, 뭉쳐졌던 종이들이 어느덧 인형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멘티들은 귀로 기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으로는 종이를 자르고, 눈으로 그 인형의 손과 발을 쳐다보고 있다. 문득 기 대표가 옆에 걸린 한복을 보여준다. 한지로 만든 옷이라는 이야기에 멘티들이 놀라며 잠시 만져보며 우와 하고 놀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감과 시각적인 친근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형극은 인형과 관절 등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에요. 되어 있는 걸 찾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레퍼런스는 무척 많아요. 하지만 모두가 정답은 아니며, 중요한 건 나에게 필요한 걸 찾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멘티가 만들고 있던 종이인형을 들어올리며, 관절이 없는 인형도 있다면서, 그것 역시 의도한 것임을 말한다.
“(인형이) 다 사람 같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우리는 종이인형을 거쳐 최종적으로 하이브리드 인형까지 가는 게 목표예요.”
기 대표는 두 멘티의 주위를 오가며 쉴 새 없이 이야기와 토론을 이어간다.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조명이 갖춰진 극장과 야외에서 공연하는 것의 차이 그리고 야외에서 사용해야 하는 장치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에요. 배우가 이걸 어떻게 운영하고, 이끌어 가는가? 관객들을 흥미롭게 끌고 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에요.”
이제 어느 정도 완성된 인형으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해보던 멘티들도 이제 제법 여유가 생겼는지 그에 호응한다.
“제가 여기서 하는 것이랑 관객들이 보는 것이랑 너무 다른 거 같아요.”
“다를 수밖에 없죠. 그 거리감을 좁혀 가는 게 우리의 훈련이에요. 어느 정도 거리감을 좁히면 내 의도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죠.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것이죠. 내가 나를 믿고 가는 것이죠.”
마치 친한 친구네 공방에 놀러와 진한 수다를 나누는 것처럼 친근하고 즐겁게 종이인형이 완성되고, 경험이 공유되고 있었다.
기 대표가 극단 이름을 ‘나무’로 정한 것은 공연으로 찾은 초등학교에서 본 풍경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묘하게 푹 파인 나무에 앉아 함께 놀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감싸고 있던 나무의 모습이 인상 깊어 예술단체를 만들면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즐거운 오후를 보내는 극단 나무를 보니 그 이름처럼 인형극인을 위한 포근한 나무놀이터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더 다양한 인형극인과 풍성하고 즐거운 공연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