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 일제고사 평가, 표집조사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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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일제고사 평가, 표집조사로 바꿔야
  • 김석권 오산고 교사
  • 승인 2012.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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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석권 오산고 교사/전국교직원노동조합 오산화성지회장
일제고사 반대 홍보물. ⓒ 전교조 오산화성지회

1. 경쟁이냐, 협력과 소통이냐

최근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된 상황이 존재한다. 가정도 학교도 문화적 심리적으로 황폐화되어 학생들이 고민과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도, 시간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친구들을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바라보는 입시교육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순위를 매기고 정보를 공개하여 경쟁만 시키면 최선의 교육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은 전혀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이 26일, 걱정과 반대의 목소리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강행하려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가 그 실례이다.

2. 일제고사, 변질된 학업성취도 평가

흔히 ‘일제고사’라 부르는 이 시험의 공식 명칭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다. 일제고사는, 1998년에 학교 줄세우기, 사교육 유발 등의 이유로 폐지되고 표본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평가로 전환됐다가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전수평가로 다시 전환되었다.

전수평가가 되면서 원래 이 시험의 취지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 및 변화 추이를 파악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학습 결손 보충 및 교수학습 강화 기초 정보 마련을 목적으로 했던 이 평가는, 오히려 지역간, 학교 간, 교사 간, 학생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 교육과정의 심각한 파행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3. 성적에 결부된 교부금, 성과금이 교육과정을 파행시켜

전국의 학교들이 일제고사를 앞두고 모의고사, 파행수업, 강제 자습, 보충 수업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설 업체에 돈을 주고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초등학교가 있는가 하면 중고생이나 할 법한 0교시, 7교시를 만들어 문제풀이식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통에 6학년이 4시 30분이 넘어야 귀가하는 초등학교도 있다.

심지어 상위권 학생에게 놀이동산 자유 이용권이나 문화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하고 성적우수 학급에는 현금 보상을 약속하는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위해 배부한 지원금을 문제풀이식 보충수업 형식으로 하위권 학생들에게 교묘하게 강요하는가 하면, 일선 고등학교는 이미 입시 경쟁교육이 자리잡은지 오래라 새삼스럽게 이 시험을 위한 파행적 보충수업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학교 관리자나 교사가 파행적인 방식을 쓰면서까지 시험의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교과부가 시험 결과를 시도교육청 평가와 학교 성과금 지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이 특별교부금을 더 받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항목보다 일제고사 항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도록 성적경쟁에 더 매달려야 한다. 그럴수록 학교는 창의적인 교육, 전인 교육과는 거리가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 학교 폭력 문제나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이와 어찌 무관하다 하겠는가?

4. 거꾸로 가고 있는 한국, 다른 나라들은 일제고사를 폐지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보수 진영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색깔론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보다 협력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해 ‘종북세력의 기만전술’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것이야말로 맹목적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2009년 청와대가 펴낸 정책홍보 소식지 <학업성취도 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에서 일제고사 모범 사례국으로 내세운 나라들이 일제고사에 사망 선고를 줄줄이 내리고 있는 상황을 보라.

프랑스는 2009년 도입한 일제고사(국가 학업성취도평가)를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전격 결정했고, 앞서 영국과 일본도 각각 2009년과 2010년부터 일제고사를 폐지했다. 미국도 올해 워싱턴 주 학생 500여 명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학부모전국연합이 일제고사 축소를 의회에 청원하는 등 폐지여론에 휩싸여 있는 상태다.

일제고사를 시도교육청 평가와 학교 성과금 지표로 활용하고, 중학생까지 평가향상도 공개를 확대하며 일제고사를 강화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5. 표집조사로 전환하고 시도교육청 평가에 반영하지 말아야

26일, 전국의 초6, 중3, 고2 학생 180만명은 일제고사를 치룰 것이다. 그 성적은 공개되고 비교되어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시도교육청은 교육청대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룰 것이다.

학교와 수업을 혁신하려는 최근 교육 현장의 분위기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일제고사. 우리의 교육 현장은 지금 ‘경쟁만능 입시 위주의 교육이냐’, ‘협력과 소통을 목적으로 한 혁신적 교육 모델이냐’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적어도 후자가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바람직한 길이라고 보는 사람에게는 일제고사 형식의 이 평가를 표본 집단에만 실시하는 표집 조사로 전환하고 시도교육청 특별교부금 평가에 일제고사의 성적을 연계시키지 않는 것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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