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요즘 최고의 관심은 통합진보당 문제다. 그닥 정치에 관심 없었던 사람들도 연일 생중계로, 혹은 뉴스의 중심이슈로 보도되는 통합진보당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보정당이 뭔지도 모르는 일반 노동자들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노조 관계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바람에 노조 간부들이 매우 곤혹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적지 않은 세월을 학생운동, 청년운동, 통일운동 등을 했던 나 또한 최근의 일이 매우 곤혹스럽다. 자세한 당 내부의 문제는 모르지만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민주주의적 원칙에서 본다면 최근 일어난 여러 문제는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해 어느 쪽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번 일에서 보여진 우리 안의 비합리적인 ‘분단의식’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문제는 발단이 당내 투표의 부정, 부실문제였다. 그러나 조사결과에 반발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 비판이 시작되면서 서로 상대방을 무조건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무조건 인정하지 않고 귀를 막았다. 갈등이 증폭되면서 더욱 그런 현상은 심해졌으며 결국에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에 대해 ‘종북’ ‘빨갱이’라는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공격만 남은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부에서 제기하는 조사위의 보고서의 문제점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았고, 또한 다른 일부 사람들은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혁신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해진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 지를 떠나 이런 과정은 남과 북이 서로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다. 분단 이후 독재정권은 북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했고 수십 년 그런 현실에 익숙해진 우리는 익숙해진 이야기가 아닌 낯선 주장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다.
일부에서는 그런 현상을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분단이 강요한 정치적 사회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중세시대 합리적 의심을 하는 철학자, 과학자들을 처벌했던 암흑의 시대처럼.
이런 분단의식은 비단 남과 북의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공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적어도 진보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타인이 아닌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내 안에 남아있는 보수과 비합리의 모순도 치유하는 과정이 되어 보기를 희망한다.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기본부(대표 윤기석 목사)에서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