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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간풍경을 찾아 1중세 이슬람의 영광이 만든 도시, 카이로
윤민 기자  |  paper@newspea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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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4  14: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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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의 영광과 고대의 신비가 교차하는 카이로의 석양.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카이로의 도시 전경과 시내보다 자유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득한 시간, 인간은 자신의 영광과 지혜를 도시에 새겨놓았다. 그 풍경을 찾아 세계의 도시를 찾아나선다.

도시를 세운 이들은 과감한 용기를 지녔고, 그 도시와 도시를 찾아 나선 이들은 세심한 지혜를 지녔을 터이다. 그렇게 만난 도시의 시간은 인류가 만든 문명의 가치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이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여행이 될 것이다.

먼저 그 여행의 시작으로 아득한 시간과 또 그만큼의 신비로 가득한 이집트를 찾는다. 이집트가 아름다운 것은 옛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변화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불안이고, 그들에게는 분노이겠지만, 그 힘으로 인류가 발전해 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고대의 신비가 된 기자의 피라미드. 잊혀졌던 피라미드는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고대 이집트는 다시 현재의 역사에 편입되었다. 그때까지 기자는 아주 유용했던 채석장이었다.

중세의 도시, 카이로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파라오로 싱징되는 땅이다. 그렇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수도인 카이로는 중세의 도시이며, 이슬람의 땅이었다.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였고, 그 남편 알리Ali ibn Abu Talib는 무함마드의 첫 선교를 함께했던 동지이자 사촌이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랍에 평화를 가져온 후 세상을 떠나자 이슬람사회는 칼리프caliph 알라·신의 使者의 후계자에 의해 통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그렇듯 하늘의 가르침과 현세의 정치는 항상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신성은 핏줄을 타고 온다는 믿음을 가진 아랍의 전승을 믿는 부족에게 절대적인 추앙받던 알리와 알리의 아들 그리고 그의 갓난아이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 비극은 거대한 분열을 가져왔다고 한다.

알리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시아 알리, 즉 알리의 당이라고 부르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아파Shiah를 이루었고, 그와 다른 방향에 있는 이들은 수니파Sunni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10세기, 무함마드의 딸이자, 알리의 부인이었던 파티마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한 왕조가 동서 교류의 창구였던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슬람의 중심이 바그다드Baghdad, 이라크의 수도와 다마스쿠스Damascus, 시리아의 수도의 칼리프에게 있던 때, 황금의 물길 위에 새로운 왕성과 거대한 모스크 그리고 자신들의 신념을 퍼트릴 대학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도시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승리'-카이로가 되었다

 

   
▲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의 자취가 새겨진 무깜타 언덕의 요새를 오르면 카이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허물어진 성벽은 카이로의 시간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려준다.

칸 앤 칼릴리의 영광

실크로드Silk Road는 문명과 함께 당시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던 한계를 넘어선 부가 흐르던 길이었다. 그 부의 놀라움은 그저 길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풍요를 누리고, 사람과 산물이 모여들 정도였다. 그 길의 끝에는 동쪽에서 온 진귀한 물품과 유럽에서 건너온 상인들을 만나는 거대한 시장이 세워져 있었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나일 강은 그중 가장 풍요로운 길목이자 여정의 종착점이었다. 그렇게 사람과 부가 모이던 길목에 파티마 왕조는 가장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인 알 아즈하르, 모스크이자 대학을 만들었다.

그리고 뒤를 이은 맘루크 왕조의 시기, 이집트 술탄Sultan 이슬람 국가의 세습 군주의 아들인 알 칼릴리 왕자는 1382년 알 아즈하르의 앞에 거대한 바자Bazar를 세웠다. 1,500개가 넘는 점포가 미로와 같이 이어지던 시장이자 쇼핑단지가 만들어지면서, 종교와 경제가 이어지던 세상의 중심이 만들어졌다. 경건을 만난 자유로운 학문 탐구는, 세상과의 시끌벅적한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낸 셈이다

 

   
▲ 칸 앤 칼릴리 시장에서 낙천적인 젊은 포터들을 만난다. 아직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명성을 놓지 않은 이곳은 가장 많은 물건은 못만나더라도, 가장 다채로운 인종과 언어는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칸khan이라는 말은 낙타에 짐을 싣고 다니는 대상들의 집결지 겸 창고이자 시장을 뜻한다고 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시대, 먼 길을 지나온 대상들은 칸에 와서 낙타를 매어놓고, 짐들을 그곳 창고에 부려놓으면서 비로소 안심하고, 꿈이 현실이 되는 희열을 맛보았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그렇게 모여든 이들과 한담을 하고 거래를 하였을 것이고, 이 층의 숙소에서 소란스러움을 배경으로 잠이 들었을 것이다.

비록 세상에서 다시없는 진귀한 물품과 모래사막을 거쳐 온 대상들의 낙타 소리에 실려 오는 신기한 이야기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지만, 이 번잡한 거리가 간직한 그 시절의 추억을 쫓아 그때만큼 다채로운 색의 사람과 언어들이 이곳으로 여전히 몰려들고 있다

   
▲ 칸 앤 칼릴리 시장에서 만난 고양이. 작고 예쁜 고양이라 생각했는데, 한쪽 눈이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쥐떼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의 역설이 잊혀진 역사만큼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시원한 냉 음료를 판매하는 거리 좌판 사이로 히잡을 둘러쓴 아낙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푸줏간과 과일가게에서는 가격흥정이 한창이다. 젊은 포터Porter들은 사진기를 들이대는 이방인들에게 호의적이었고, 맛깔스러운 전통음식은 쉼 없이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놀랍던 부가 넘치던 세계의 시장은 서민들의 요란한 삶 터가 되었다. 영화는 사라졌지만 긍지와 자부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추억은 도시를 지금까지도 소란스러운 여유와 흥분으로 가득차게 만들고 있다.  

 

 

 

   
▲ 알 아즈하르 모스크에서는 공부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인다. 모든 종교는 존중해야 될 가치가 있음을 아는 것, 바로 시간을 여행하는 자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시간풍경 도시여행 _ 이집트/사진 이병호, 정리 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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